일상의 자국
밤새 넷플릭스 DP2를 봤다. 군대 다녀온 지 20년이 지났고, 이제는 동원훈련마저 끝난 마흔의 자락에도 국방색 무늬에는 여전히 눈길이 머문다. 의무 복무라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은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물론 그 연관된 사람들까지 군대에 일정 부분 감정을 가지게 된다. 드라마 대사에서 말하듯, 왜 젊은 사람들이 여기 모여서 다치고 아프고 서로를 못살게 구느냐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간 '나라'는 아무런 말이 없고, '나라'를 참칭하는 개별 인간과 세력들이 군대를 병들게 했다.
물론 단순히 군대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비판받지 않았던 세력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DP2에 나오는 수많은 사고사례가 단순히 개인의 실수, 질환이라고 풀면서 조직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원인을 '사회적 파장 우려' 등으로 숨기기 급급하다. 한국사회의 양적발전 이면이 가지고 있는 권력 중심, 강자 중심, 발전 사관에 의거한 단순한 가치 중심 사고는 사회 전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다. 근대성의 기반에는 합리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 중심이 여전히 전근대적으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결과는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주기 충분하다.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안타깝고 울컥한 순간과 아울러, 나도 아주 오래 전인 2001년 3월부터 2003년 5월까지의 군생활이 작은 물줄기처럼 지나간다. 운전을 하고 한 두 번 찾아갔던 산정호수 근처 내가 군생활했던 야미리 통신대대는 20년 전과는 건물의 모습이 달라졌다. 그곳을 가는데 울퉁불퉁한 43번 국도가 아닌 쭉 뻗은 도로가 생겼으나, 그 안에 작은 차들의 운전습관 변화가 없으면 도로는 금세 망가진다. 마찬가지로 그곳이 여전히 존중보다 복종이 앞서고, 배려보다 무시가 앞설 때는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다.
나는 대대 인사과 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통상 소위 더 상위부서에 남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동기 중에 두툼한 '백'이 있는 친구들이 있어 상위부서 행정병에서 밀렸다. 부조리 혹은 나로서는 자유로움일 수 있다. 나는 자대배치를 받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처음으로 맞았는데, 그것만 해도 수많은 구타를 이겨내고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었던 왕고참 병장의 힘이었다. 그런데 그는 유난히 나를 싫어했었다. 중대 행정병이기 때문에 대대 인사과인 나와 전화를 자주 했었는데, 처음 맞은 날도 전화 똑바로 안 받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는 점호 끝나고 나를 불러 베개로 내 머리를 몇 번 때렸는데, 정신이 멍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 틈에 다행히 보이지 않았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이후로 몇몇 사람들이 때리기도 했지만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내 속옷이 없어졌는데 찾아오라고 몇 월 군번 이후로 모이라던지, 경계근무복을 부사수가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면서 또 몇 월 이후로 모이라던지 등의 집합 때 맞은 기억이 있다.
나는 한 번도 구타를 한 적이 없다. 내 마음 가짐이라기보다는 나보다 한 두 달 아래 후임들이 너무 애들을 잘 때렸다. 병장이 되면 성에 뱀을 붙이는 게 통상 별칭이었으니 '박뱀이라도 천사로 있어요.'라고 했었다. 그렇더라도, 저녁 청소시간 때 체육복을 입고 얼굴이 벌게 오는 후임병 가슴에 군화발자국이 있었다. 나도 대대 지휘통제실에서 밤근무를 서며 소위 '천사'인 나를 알고 무례하게 구는 후임병의 따귀를 때릴까 말까 고민도 했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여전히 기억에 강력히 남아있는 것은 '소원수리'였다. 병장 때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소원수리를 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시절 병영생활지도지침서라는 것이 나올 예정이었고, 군생활이 3개월 남짓 남았던 나는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야 할 시기였다. 소원수리 때 구타가 잦았던 혹은 심하게 말로 언어폭력을 하던 후임들이 제법 걸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점호시간에 '아무리 그래도 간부한테 그걸 올리면 어떡하냐, 우리끼리 해결을 했어야지'라고 말했었다. 여전히 가슴이 쓰린 말인데, 잘못한 것이 잘못이지, 잘못을 신고했다고 왜 그랬냐고 나무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후임병들은 정말 실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두 해가 지나서야 그때 시절이 생각났고, 문득 떠올려도 그 장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소원수리를 했던 검은테 안경 꼈던 MJ는 다른 부서로 전출을 갔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조치도 적절치 않다.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했을 것인데도. 다들 쉬쉬할 뿐이었다. 더욱 안타깝고 울먹이게 되는 순간이다. 이후에 몇 년간 군대 식구들을 많이 만나왔지만 지금까지 연락이 이어지지 않는다. 짧았다면 1달, 길었다면 약 2년을 함께 했던 그들, 그 시기에 서로의 고충을 같이 말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풍요로웠겠지, 그 시기 별 수 없었다, 다들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유효하지 않다. 나부터 하지 않으면 그 눈물과 회환은 빙산의 숨겨진 뿌리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