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친구에게
“요새 드라마를 못 보겠어.”
아마 밤 열 시가 넘었을 때지, 네 목소리가 추운 겨울 길거리 어묵 국물처럼 허옇게 피어나다 이내 사라지듯 들렸어. 다시 물어보니, 너는 쭈뼛쭈뼛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더라. 자꾸 눈물이 나와서 드라마를 못 보겠다는 거야. 아이가 아프거나 누가 죽거나 주인공이 울고 있는 것보다 실패한 남자가 이를 악물고 있으면 그게 보기가 안쓰럽다면서.
회사에서도 주목받고 강남 한복판에 아파트도 있고 아이들도 쑥쑥 크고 연봉의 반만큼이나 보너스를 받았는데 마흔 살 너는 눈물이 날 것 같아 금요일 밤 혼자 드라마를 못 보겠다니. 그렇지만 나는 너의 고민이 무엇인지 솔직히 알 수 없었어. 가질 만큼 가졌고 남들만큼 살고 싶다던 네가 무엇에 슬퍼하고 있었는지. 잡을 수 없었던 내 오래된 꿈같기도 했고 더 이상 나에겐 오지 않을 미래이기도 했으니까. 말없이 밤 열 시에 맞게 이제는 집에 가자는 의미로 조용히 반쯤 담긴 소주잔을 들었어. 꿀꺽꿀꺽 투명한 액체는 서로의 목구멍을 타고 흘렀어. 어묵 국물 한 숟가락으로 입 가득한 쓴 맛을 없앴네.
“십 년 뒤에 무엇을 먹고살지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시 뛰자.”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수 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느 날 아침에 회사 인트라넷 메인 화면을 이 문구를 보고 소름 돋은 기억이 회사를 그만둔 만 가지 이유 중에 하나이긴 해. 지금은 화면상으로 혹은 서류상으로만 이 세상 사람인 회장의 이야기지. 인트라넷 메인화면 왼 편에 그의 팔팔했던 사진이 위엄 있게 흑백 컬러로 배치되어 있었고 오른편에 노란색의 힘을 내야 할 글씨체로 저 문구가 쓰여있었어. 그해 회사는 전자 업계 세계 1위에 올랐고 세계 5위의 브랜드 가치를 달성했을 때였지.
나는 그 사람 나이에 등골이 오싹해지면 병원에 가야지 않나 생각했어. 이제 몸 생각도 하셔야 할 텐데. 뭐 그 사람 걱정은 다른 사람도 많이 하고 있으니 그만하고. 끝없이 달리는 회사에서 십 년 뒤에는 지금 팔리던 물건들이 다 사라지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니. 이제 내가 회사 다닌 지 십 년이 다되어 겨우 과장이 되었는데 십 년 뒤에 땀 흘린 기술과 경력이 시나브로 사라져 버린다고? 침 섞인 말 말고는 그가 어떤 땀과 눈물을 흘렸기에 그런 말을 쉽게 하지? 자기가 뭔데? 그 고민은 회장이 충분히 하시길 바랬고 나는 고민을 거두고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는 이제 말없는 몸뚱이만 남아있네.
한 상담가에게 이름을 들어봤던 회사 사장 이야기를 들었어. 회장님 말씀이라면서 벌벌 떨다가도 부하 사원에게 송곳 같은 지적을 하는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절에 들어가서 심신 수양을 한데. 이십사 시간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이 갑자기 회사를 나와서 이십사 시간 할 일이 하나도 없어졌을 때 그는 허망한 기분이 들었나 봐. 분 단위로 시간 계획을 다루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득했던 때가 있었겠지. 아는 것 말고는 모르는 게 없어야 하는 그였고 하는 일이 없으면 등골이 오싹해졌을 그에게 빈 시간,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은 자기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겠지. 회사 신입사원 연수 때가 가끔 떠올라. 연수 맨 마지막 날 아직도 회사에서 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을 들라고 회사 인사담당자가 신입사원들에게 물어봤지. 나는 번쩍 손 들었었지. 언젠가는 나도 사장이 되길 바랬었는데 그 기억은 시나브로 사라져 버렸네. 게다가 나도 회장이나 사장이나 그들의 삶은 어찌 사는지 알 수 없으니 더 얘기는 하지 않을게.
“너는 예전보다 책임감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
백 년 만에 가장 덥다는 여름날 나는 너한테 “내가 예전보다 뭐가 달라졌냐고” 물었지. 너는 차갑게 말문을 열었어. 공대 도서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밤을 새우던 나였었다고. 시험 시간에 밤을 새우다가도 술 한 잔 하러 가자며 궁둥이를 들썩거리면 몇몇은 꼭 나왔는데, 나는 궁둥이를 바짝 의자 등받이에 붙이며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면서 말이야. 무언가를 꼭 해야 하면 술도 안 먹고 계획을 세워 지키려고 했었다고. 그런데 지금 나는 책임감 없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어. 남들만큼 잘살려고도 하지 않고 돈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번다고 하고 거짓말이겠지 싶었는데 그러고 사는 거 보니 안쓰럽기도 하다면서. 나도 번듯한 집도 있어야 되고 차도 끌고 다니면서 살아야 되는데 보기 그렇다고 말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한다고 했어. 말하자면 경제적 여유, 사회적 성공, 가족의 행복 같은 것들. 그게 이상해 보인다고도 했어.
내가 무책임해진 것을 인정해. 부동산이나 주식투자에도 관심 없고, 월급을 모아서 재산을 불릴 생각도 않고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도 않고 부모에게 효도하려 태어난 건 아니라고 말하고 그렇다고 이름난 프리랜서가 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고, 왜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하며, 왜 인맥을 쌓아야 하고, 왜 평판에 신경 써야 하는지 궁금해. 그리고 왜 남들만큼 사는 걸 왜 포기했는지 궁금해. 그렇지만 무책임한 것이 안하무인이 되겠다는 건 아니야. 사람들과 연을 끊겠다는 것도 아니야. 굳이 변명하자면 혹은 내 입장을 얘기하자면 나는 책임이라는 말속에 있는 강요가 부담스러워.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하란대로만 해” “내가 책임질 테니까 해봐.” 등등의 말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싫거든. 도움받기 싫다는데 왜 굳이 책임을 진다고 손을 내밀지, 무거운 짐을 들 수 있다는데 왜 들어주겠다고 친절을 가장한 우월함을 가지는지.
“넌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더라.”
그래, 내가 몇 달 전 너의 말을 듣고 반성했어. 네가 봤을 때 내가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은 알겠는데 모든 삶이 한 두 단어로 포개지는 것처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투의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는다고 말이야. 한동안 유명한 스님이 중생들의 인생 큰 고민을 어렵게 말하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해결책을 내놓는 방송과 책이 꽤나 유행했지. 스님의 논리는 간단해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건 나니까, 나부터 잘해야지”인 것 같아. 나도 처음에는 그 유튜브 영상을 들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는데 점점 영상을 보다가 빨리 넘기기 버튼을 누르고 있더라고. 지루하고 재미없고 불쾌할 때가 많은 거야. 내 마음먹기 달렸다는 한 마디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면 수많은 시와 소설은 왜 나왔나 싶어,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어쩔 수 없는 사회 문화적 위치와 편견 때문에 나로 바로 설 수 없는 사람들은 세상은 원래 그러니 감내하라는 건가? 그 감내는 기존의 편견을 놔두게 만들지 않나? 네가 보기에 그 스님하고 비슷하게 내가 공부한답시고 뭘 다 아는 것처럼 얘기했었나 봐. 그러면 절대로 안되지, 아마도 내 등골이 오싹한 건 네가 그 말을 했을 때인 것 같아.
“쓸데없는 얘기 말고 인생 얘기나 해보슈”
회사를 그만두고 첫 강의를 구치소에서 했는데 강의 쉬는 시간에 교육생이 나에게 건넨 말이야. 네가 말한 것처럼 내가 한창 철학책에 빠져있을 때 구치소 강의를 나가게 됐고 소크라테스니 언어 표현의 은유이니 타자 이해의 불가능성이니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남의 말들로 강의 자료를 만들었어. 한 시간 강의를 마쳤는데 난방도 안 되는 겨울날 등에서 땀이 났어. 안쓰러웠는지 짜증이 났는지 교육생이 나에게 어려운 얘기하지 말고 살아온 경험이나 얘기하라면서 건넨 말이었지. 나는 노트북을 끄고 이야기를 시작했어. 왜 나는 돈 벌 수 있는 자기 계발, 리더십 강의를 하지 못하고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게 됐는지, 여행하고 책을 보며 생각이 머무는 곳에서 부유했던 의문들과 경험들을 얘기했어. 사람들은 그제야 귀를 열더라. 철학의 고매한 말들이 삶의 정수일 수는 있지만 삶이라는 끈적한 늪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을 알게 됐어. 책은 끝났지만 삶은 계속되고, 별 수 없는 인간관계 속에 내 삶은 유지되고 포섭당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을.
이 책에서 그 장면을 조심스레 보여주고 싶어. 책임지겠다거나 당당히 살겠다는 혹은 삶에 답이 있다거나 무엇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바라보되 판단하지 않고, 생각을 멈추고 잠시 함께 있을 수 있는 장면을 그려보고 싶었어. 삶에 드라마는 없고 드라마보다 더한 것이 삶인 것을 등골이 오싹한 그도, 책임감 없는 나도, 책임지려는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 중요한 사람이건 아니건 책임을 지던 말던 삶은 외롭지만 누군가 함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게 고맙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고 있으니. 이 글을 읽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나려나, 가슴을 쓸어내릴 추억이 생각이 나려나. 더운 피가 흐르는 몸 밖으로 삶의 온기가 피어오르려나. 그렇지만 나는 너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어. “네 맘을 다 이해한다, 네 걱정이 무엇인지 내가 해결책을 주마,” 이런 말들은 몸의 무게보다 너무 버겁다고 생각하거든. 무엇도 기대하지 않지만 너 옆에 외로운 몸뚱이 하나가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거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