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산후조리원의 마지막 날 아침

결혼12년 차육아0년 차

아이가 태어난 지 19일째 되는 오늘, 5일의 제왕절개 수술 후 병실과 14일의 산후조리원이 끝난다. 19일은 아이가 19년이 지나 성인이 될 때까지 이전과는 한없이 달라질지도 모르는 시간의 시작 혹은 이전 삶의 끝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병실에 입원했던 2월 15일 아침에 집에서 기내용 캐리어에 짐을 챙기면서 "여행 가는 것 같다"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여행이 아닐 수도 있다. 여행은 다른 곳을 깊이 경험하다가 결국에 다시금 집으로 돌아온다. 이번 19일은 여행과 달리 아이라는 다른 존재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집의 형태는 남아있지만 집은 상당히 많이 달라질 것이다. 아내와 함께 쓰던 큰 사이즈 침대의 용도가 바뀐다. 거실에 놓여 있던 긴 테이블도 아이를 위한 공간으로 바뀌고 테이블 옆에 맨바닥에도 아이가 다칠까 매트리스가 깔리게 된다. 반면에 어떤 면에서 19일은 여행일 수도 있다. 긴 여행을 다녀온 후 나의 변화는 당장 느낄 수 없다. 여행에서 먹었던 마음 가짐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지되지 않는 것도 같다가, 어느 순간 삶의 큰 원칙으로 스며들게 된다. 인간이 말보다 행동을 믿을 수밖에 없다. 가장 먼 여행이 마음과 발 사이다. 여행의 감흥과 마음의 지속은 여행이 끝난 뒤에 시작되는 삶에서 추적해볼 수밖에 없다. 아이로 인해 달라질 삶의 변화는 이제 처음을 맞았다.


인간이 유목 생활 혹은 방랑 생활을 하다가 정주를 결정하면서 큰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처럼 무기가 없었을 때 인간 몸의 나약한 자기 방어 수단으로는 동물의 습격을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오래 머무르면 질병에도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동굴에서 거주하거나 불을 사용하면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채집을 많이 했을 것이다. 아마도 정주는 농경의 시작과 맞물려 있고, 채집에서 시작한 농경으로 변했다. 그리고 정주는 일정 정도의 규칙을 가진 정주한 장소에서의 자연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동을 하며 명확한 계획을 세울 수 없고 미래를 예견할 수 없었을 때보다 예상되는 어려움은 있지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주를 생활화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행을 하면 어려운 점은 의식주의 문제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 가면 음식이 어떨까 고민한다. 그곳의 날씨는 어떨까 걱정한다. 그리고 숙소 침대의 매트리스는 괜찮을까, 샤워기에 녹물이 나오지는 않을까, 깨끗할까를 생각한다. 나는 1년의 여행을 계획했다가 백 일이 되었을 무렵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가 두 달간 쉬고 나서 다시 아내와 여행을 떠났었다. 집에 혼자 있는 아내가 걱정되었고 내 몸의 피곤함도 있었다. 다음 숙소는 어떨지 고민해야 하고 그곳은 안전한지 전전긍긍하면서 내 몸이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때가 없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포르투갈 포르투로 다시 길을 떠났다. 순례자들이 하루 정도 편하게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캄포스텔라에 머무는데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목적지까지 왔더니 겨우 성당 하나가 있다. 잠시 무언가를 이루었다 생각이 들었다가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 내가 싫었다. 급히 쓸쓸해지는 마음을 움켜잡지 못해 순례자들과 점심을 먹고 맥주를 나눈 뒤에 수소문해서 포르투행 표를 끊었다.


순례 중에 신부와 대화를 나눴다. 무신론자가 된 나에게 신을 증명해달라며 이틀간 무슨 이야기를 떠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가 포르투갈 신트라가 '에덴동산'으로 불린다며 여행지로 추천했던 장면만 남아있었다. 포르투에서 신트라로 이동하면서 나는 일이 되어버린 여행을 수행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신트라는 아름답고 따뜻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다가기기 전 신트라의 바다는 세계의 끝이었다. 세계의 끝이라는 절망과 땅을 딛고 있다는 안락이 섞여있는 곳이다. 바닷가 절벽은 상당히 아름다운 경치였다. 나는 낮에 해변의 맥주 바를 갔다가 해가 질 때까지 바다를 보고 있었다. 눈이 부시던 햇빛이 점점 사그라들고 비경이던 바닷가 절벽이 검게 변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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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조각상 앞에 정신이 멍해졌다. 괴로움인지 탄성인지 경탄인지 외로움인지 알 수 없는 형체가 있었다. 몇 분을 그 조각상 앞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집에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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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긴 여행을 한 지 6년지 넘어가는 지금도 그때를 추억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도 나의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을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조각 앞에서 내가 무너지며 태어났었다.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은 그러한 존재와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누구와 관계를 맺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그 관계는 자주 존재를 갉아먹거나 괴롭힌다.


19일 전 아이의 탄생이 어느 만큼 인상적이었는지 지금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존재의 등장보다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뭇사람들의 이야기도 지금은 몸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산후조리원에서의 며칠은 그 변화 앞에 나를 조금씩 보호해주던 시간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는 항상 내 곁에 있다. 그것은 어떠한 괴로움과 기쁨을 줄까. 삶의 허무가 희망의 시작인 것을 여행에서 배웠고 그 허무의 그물을 당신과 내가 짜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엮인 삶, 그리고 더 촘촘하게 할 실을 잣는 아이는 또 다른 여행의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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