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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y Sep 03. 2023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포 있는 리뷰


Caution : 이 글은 결말을 포함한 스포가 담겨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을 강력하게 추천드리는 스포 있는 리뷰입니다.

오늘의 추천 작품은 2023년 8월에 개봉한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입니다.



1. 군중 심리


이 영화는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시선으로 내용이 주로 전개됩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파트 주민들의 여정에 동참하게 되고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들의 선택과 행동에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딜레마였습니다. 


인류가 극한 속에 내몰린다면 군중의 집단들은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될지 두려웠습니다.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다 같이 둘러앉아 의견을 제시하고 리더를 선출하며 다수결 투표로 안건을 결정합니다.

주민들은 지극히 민주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카리스마 있는 몇몇의 의견으로 군중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늘 제기되는 민주주의 비판과도 연결됩니다.

다수의 집단이 반드시 옳은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체제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2. 영탁이라는 인물의 입체감



영탁은 행동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주민 투표로 외부인들을 추방하는 것이 결정돼도 선뜻 실천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뭘 어떡해요. 그냥 하면 되지." 


구호를 외치며 대원들을 이끌기도 하고,

마트를 털다가 부녀회장의 아들인 지혁이 인질로 붙잡힌 상황에서도

자신이 앞장서서 상대를 다독이는 행동을 보이면서 다른 대원들을 이끄는 면모를 보입니다. 


영탁은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됩니다.


초반에는 불이 난 집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주민 대표가 되면서 신념을 가진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의 서사가 소개되고 난 이후부터 눈빛이나 행동이 더 거칠어진 것처럼 그려지죠.

윤수일의 아파트를 부르며 과거를 회상하는 영탁의 눈빛은 필연적으로 그가 황궁 아파트의 주민처럼 행동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3. 다른 목소리


황궁 아파트 주민들 중에서 결이 다른 대표적인 세 사람이 있습니다.

박보영 배우가 연기한 명화, 김도윤 배우가 연기한 도균,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터 합류했던 박지후 배우의 혜원입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끼리 더불어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 인물들입니다. 


특히 명화와 도균 역시 외부인을 자신의 집에 들이며 신념에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둘 말고도 외부인을 몰래 숨겨준 주민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극히 드문 소수집단임에는 분명합니다.

아마도 주민투표 당시에 검은 바둑돌을 던졌던 몇 안 되는 주민들이었겠죠. 


"방범대인지 뭔지, 그거 그만했으면 좋겠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민들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모습이 그려질 때마다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오히려 불안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이 작품은 그런 관객들의 복잡한 심리를 매우 영리하게 이끌어 냅니다.

그리고 외부인을 숨겨준 명화와 도균의 행동이 정말로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려 다 같이 죽는 길을 선택하는 것인지 돌이켜보게 합니다.



4. 동상이몽



민성은 대참사가 일어나기 직전에 한 여성을 구하기 위해 손바닥이 쓸려가면서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서사를 통해, 그의 심성이 원래 따뜻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 놓여진 이후부터는 민성의 성격이 달라진 것처럼 묘사됩니다. 


추위를 피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모자에게 선뜻 방을 내주는 명화와 달리,

민성은 그들과의 동거를 시종일관 불편해합니다.

특히 리더십 넘치는 영탁과 일을 같이 하게 되면서 점점 냉혈인으로 변화합니다. 


민성이 영탁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이유는

그가 말했던 한 조직의 가장 이상적인 결정권자의 모습이 영탁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에게 의존하게 되고 권력에 압도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민성이라는 캐릭터는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의 모습과 가장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명화가 진실의 상자를 열었을 때도, 민성은 믿고 싶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을 보입니다.

민성이 영탁에게 장전되지 않은 총을 겨눌 때도, 영탁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그를 신뢰했던 자신을 원망하는 모습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런 민성을 억제해 주는 인물이 바로 명화입니다.

민성이 영탁처럼 행동하려고 할 때마다 명화가 그의 눈앞에 밟힙니다.

명화를 보며 민성은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죠. 


그럼에도 민성은 명화와 함께 외부인에게 위협을 받게 되자 그녀가 보는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려고 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했던 황도 캔을 들고 사람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합니다.

괴물이 되어가는 남편을 두 눈으로 확인할 때, 명화는 민성을 끌어안으며 괴로움에 울부짖습니다.

민성을 끝내 무너지지 않게 해 준 영혼의 파트너였습니다.  



5. 무엇이 옳은가


명화와 혜원은 영탁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사건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나면서 주민들은 자멸하고 있었고, 외부인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완전히 무너집니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명화와 혜원은 이 유토피아에 분열을 일으킨 원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얘만 아니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어!



외부인들이 밀고 들어오자 다시 한번 영탁이 몸을 내던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방범대와 주민들은 영탁의 진실을 마주하고도, 그와 함께 싸웁니다. 


난생처음 겪는 환경에 던져진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영탁의 진실을 알려줄 혜원이 없었다면,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가장 이상적인 그룹이었을까요.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도, 명화나 민성도, 모두 정답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것뿐입니다.



6. 번외


이 영화의 메인 예고편만 보면 한국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익숙한 면모들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느껴져

많은 분들이 거부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러한 한국적 재난 영화는 등장인물들을 감정적으로만 소모해 버리고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면서 길을 잃는 안타까운 경우가 주로 많았는데요. 


이 작품은 사건 자체보다는 인물들의 서사에 더 집중합니다.

대사 자체가 민낯을 드러내는 노골적인 부분도 많지만, 내용 전개에 있어서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또 등장인물이 많은 것도 사건 해결보다는 인간관계에 집중하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오히려 혜원이나 도균을 비롯한 다른 주민들의 서사도 조금 더 자세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디스토피아 장르의 작품을 즐겨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서사를 비롯해 입체감 넘치는 인물들이 녹여낸 감정들은 긴 여운을 안겨주었습니다.

아마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에 더 깊게 몰입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셨다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진 출처 : https://www.lotteent.com/Main/Movies/MovieView.asp?Idx=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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