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던 기계가 말을 걸어왔을 때

관계의 의미’를 다시 배우고 있다.



처음 인공지능은 침묵했다. 인간이 묻고, 기계가 답했다. 질문은 인간의 몫이었고, 답은 기계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가까웠다. 우리는 기계의 답을 신뢰하거나, 의심하거나, 무시할 수 있었다. 그 관계는 단순했다. “필요할 때 사용하고, 필요 없으면 닫아 두는” 관계. 인간은 도구를 그렇게 다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AI는 문장으로 답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단답형이 아니라, 이어지는 설명으로. 질문을 되묻고, 의도를 추정하고, 대화의 흐름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 변화는 기술적으로는 “언어 모델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체감은 훨씬 감정적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정답을 받는다’가 아니라 ‘대화를 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대화는 관계를 만든다. 인간은 말하는 존재에게 본능적으로 마음을 준다. 사람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면, 우리는 그 대상에게 인격을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착각이라 말하지만, 사실 인간의 세계는 처음부터 착각과 해석 위에 세워져 왔다. 우리는 바다를 보며 “바다가 화가 났다”라고 말하고, 하늘을 보며 “하늘이 우울하다”라고 말한다. 세계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 이해하는 습관, 그 습관이 AI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 ‘선을 넘었다’는 느낌은 AI가 갑자기 생명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대화가 시작되면서 인간의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AI를 더 이상 계산기로만 보지 않는다. 업무의 파트너처럼, 때로는 생각의 거울처럼 사용한다. 계획을 함께 짜고, 문장을 함께 다듬고, 선택지를 함께 검토한다. 인간이 혼자 하던 생각의 일부가 AI로 옮겨 간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 사고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AI가 똑똑해진 것과, 인간이 AI를 상대처럼 대하기 시작한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AI는 분명 발전했다. 하지만 ‘상대’가 되는 순간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만든다. 그러니 AI가 말을 “잘”하기 시작한 순간, 인간은 그 관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했다. 그 의미가 축적되면,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AI는 말을 하지만,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람처럼 말할수록, 우리는 사람처럼 기대한다.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도 커진다. 그러니 AI와의 대화는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 속에는 언제나 ‘경계’라는 성분이 섞여 있어야 한다. 대화가 시작되었을 뿐, 삶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화가 시작된 순간, 인간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한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지금, 말하는 기계를 통해 ‘관계의 의미’를 다시 배우고 있다.



2026년 2월 1일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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