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 아이 키우기
몇 달 후면 곧 5살이 될 아이가 있다. 몇 달 전 프리스쿨(preschool) 선생님으로부터 킨더가든(kindergarten) 진학상담 일정을 잡자는 연락이 왔다. 아이 교육은 엄마들만의 의무가 아니니 아이 아빠에게 하루 반나절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을 하여 함께 약속을 잡았다.
진학상담이라고 해서 크게 무겁거나 심각한 내용은 없다. 아이의 발달상황을 다각도에서 살펴보고 앞으로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함께 대화를 나눈다. 현재 아이는 정신적, 신체적, 지적 측면 모두 고루 발달하고 있으며 지금 이대로라면 충분히 공교육을 시작해도 된다고 했다. 단, 우려스러운 점은 아이가 간혹 지루해하며 피곤하다고 하기 싫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원인이 무엇인지 조금 긴 대화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중 언어 환경 때문에 아이가 영어로 말문을 늦게 열어서 그럴까요?
혹시 선생님이 하는 영어를 못 알아듣거나 이해하지 못하나요?
친구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아이가 힘들어하나요?
책 읽기나 글쓰기를 하기 싫어하나요?
한국어 책과 영어 책 어떤 것을 위주로 읽어주어야 할까요?
수학 셈하기를 어려워하나요?
미술놀이나 음악에 관심이 없나요?
몸으로 노는 것만 좋아하나요?
아이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힘들어하나요?
혹시 선생님이나 부모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거나 불만이 있어서 그럴까요?
아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나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떻게 도와주는 게 좋을까요?
일 하느라 바빠서 아이와 자주 못 놀아주고 있어 고민인데 그것 때문일까요?
이렇게 질문을 던지다 보니 문득 다른 엄마들은 어떤 고민들을 안고 육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때마침 이 칼럼을 제안받고 앞으로 글을 어떻게 써나갈지 구상해 보기로 하고, 일단 가까운 친구들이나 아이들 놀이 그룹(playdate group) 엄마들에게 몇 가지 물어보기로 했다.
우선 나는 단체 문자 대화, 일명 단톡을 통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고충 토로하기, 공감해주기, 궁금한 거 물어보기, 뭐든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달라고 조르기 등 다양한 공작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그러던 중 워킹 맘의 고민이자 속풀이가 하나 올라왔다.
저는 이중 언어가 가장 고민이에요. 아이가 일찍 말문이 트였으면 한국어를 가르치고 나서 영어를 가르쳤을 텐데, 여러 언어(영어, 한국어, 중국어)를 어릴 때 접해서 그런지 말이 많이 느리게 터져서 지금은 영어도 부족하고 한국말도 부족한 상태로 킨더에 보내야 하는 게 가장 걱정이에요.
가족들(어른들) 때문에 집에서 자꾸 아빠가 한국어를 강요하는데 학교 가서 친구들과 의사소통하려면 영어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고 뭐가 맞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에요. 워킹 맘이라 집에 데리고 앉아서 한국어 교육을 할 수도 없고 최대한 놀아주면서 대화하는 정도라 큰 도움이 될는지도 모르겠고요. 저는 정말 아이를 한국말 못 하는 2세는 만들기 싫거든요.
그렇다고 일 안 하고 집에 있는 것도 너무 힘들 거 같아서 엄두가 안 나요. 육아 스트레스가 일 스트레스보다 더 클 거 같거든요. 아무리 내 아이라도 분명 힘들 텐데 어디 맘 편히 쉬지도 못하고, 쌓이는 짜증도 감당 못해서 애들한테 표현할까 봐 자신이 없어요.
요약하자면, 이중 언어 환경 때문에 아이가 말문이 늦게 트여 한국어도 영어도 부족한 상태에서 킨더가든에 가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두 번째는 아이를 한국말을 잘하는 2세로 키우고 싶어서 최대한 함께 놀아주려고 노력하지만 그거로는 부족한 것 같아 회사를 그만두려다가도 도저히 육아 스트레스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 망설인다는 것이었다.
워킹 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머리 위로 가시 돋친 밤송이가 딱 하고 정통으로 내리 꽂히는 기분이었다.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아이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이의 고민이 무엇인지,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등 나는 온통 아이를 향한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나는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육아 주체인 엄마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걸까.
잠시 후 육아가 중요해 전업주부를 택한 한 엄마의 글이 올라왔다.
갑자기 물어보니 머리가 백지상태예요. 정체성 문제? 커가면서 부모와의 소통 문제? 이중 언어 문제? 그런데 저는 그냥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뭔지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도와주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아이가 본격적으로 공교육에 들어서지 않아서인지 그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었다. 지금 당장은 추상적인 생각밖에 나질 않는다는 그녀의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 역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리고 아이가 공교육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행복하고 사랑이 충만한 해맑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전업주부 맘의 말에서 주목한 것은 부모와의 소통 문제와 정체성 문제였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며 살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부모가 되어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분명 특수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민족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미국에는 이런 특수한 상황에 속한 가족들이 비교적 많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한 남미 출신 이민자 자녀들을 중심으로 한 이중 언어 교육의 실상이 주로 쟁점화되고 있는데, 그보다 퍼센티지가 낮은 아시아권 이민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이중 언어 교육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아이는 부모와의 긍정적인 애정관계를 통해 큰 무리 없이 사회로 진입하면서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와도 바람직한 관계를 가지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보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아이가 살아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가는 과정도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 속에서 이중 언어 문제는 단연코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아이 엄마들과 단체 문자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많은 고민을 하는 가운데, 또 다른 워킹 맘이 글을 올렸다. 역시 아이의 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이 우선이었고, 더불어 아이의 감성 개발과 부모와 자식 상호 간의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먼저 아이에게 한국 문화를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지 방법을 찾고 있어요. 제 경우는 미국에 다른 가족들이 없어서 별다른 도움이나 영향을 받을 수 없는데, 아이가 외동(Only child)이라서 여러모로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요즘 남편과 제가 아이에 대한 훈육 방식이 달라서 고민이 큽니다. 이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고 싶고, 더불어 아이의 감성 개발과 부모-아이 상호 간의 감정 조절에 관련된 정보가 있으면 무척 도움이 될 듯해요.
이렇게 단체 대화를 돌려보니 미국에서 한국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중 언어 문제와 아이의 정체성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중 언어 문제와 올바른 정체성 형성을 위해서는 어떤 책을 읽어주고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두 번째는 육아 스트레스였다. 워킹 맘들은 아이들한테 신경을 써 줄 겨를이 전업주부 맘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자니 육아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 덜컥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물론 경제적으로 조금 덜 풍요로워지는 것도 고민거리 중 하나일 수 있다.
반면, 전업주부 맘들은 육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보상도 없이 혼자 그 책임과 의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우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만큼 육아는 한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책임져야 하는 막대한 인생 과제이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부담감에서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니, 이런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육아 방법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경험상 전업주부 맘의 육아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게 큽니다. 아이에게 집중하려고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었는데, 아이가 무언가 부족한 것 같으면 어쩐지 내 탓은 아닐까 걱정되고 내가 뭘 더 해야 하나 그런 거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거든요.
이 글은 아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다는 또 다른 전업주부 맘의 고충이다. 차라리 바깥일을 할 때가 스트레스가 덜 하고 마음이 좀 더 편했다는 그녀의 말이었다. 여러 엄마들의 의견을 듣고 내가 내린 결론은, 워킹 맘이든 전업주부 맘이든 엄마라는 이름에서 부여되는 엄청난 육아 부담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유아교육 전문가의 글이 단체 문자 대화창에 올라왔다. 내 아이가 두 살 무렵, 매주 토요일에 아이와 엄마가 함께 하는 요리 수업을 갔었는데, 그때 그 클래스를 이끌었던 네바다 주립 대 아동교육 전문가 김예빈 교수였다. 이제 막 두 돌이 되는 아이의 엄마이자 영유아 교육과 부모교육 전문가인 그녀는 우리 엄마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곤 했다. 이번에도 김예빈 교수는 내가 칼럼을 쓰는 동안 언제든 자문을 구해도 좋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지금까지 단체 대화를 나누면서 엄마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이중 언어 환경 때문에 말이 늦은 아이, 어떻게 놀아주면서 말문을 열게 할까.
밥을 먹을 때마다 스마트 폰을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 미디어 노출은 언제가 적합할까.
아이를 위한 책 읽기 훈육은 언제, 어떻게, 어떤 책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
프리스쿨(Preschool)이나 차일드 케어(child care)는 어떻게 골라야 할까.
개월별, 연령별 육아나 훈육과 관련된 사전 지식이나 기본 정보는 어디서?
킨더 가든(kindergarten)에 들어가는 우리 아이, 공교육 관련 정보는 어떻게?
공교육을 시작한 내 아이, 학년별 교과 교육 및 가정교육은 어떻게 시킬까.
미술, 음악, 스포츠 등 아이들 사교육은 언제부터 시키는 게 좋을까.
분노조절과 인내심, 자기 절제가 부족한 내 나이의 감성교육과 부모-자식 간 감정조절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이 중에서 부모들이 가장 관심 있어할 주제들을 몇 가지 골라서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 후, 책 읽기 교육을 통해 아이의 언어소통 능력과 사고력 그리고 아이의 정서와 감정을 어떻게 성장시켜 나갈지 알아보려고 한다. 원래 내가 계획한 칼럼 내용은 나이별 책 읽기 교육과 미국 공교육 현장에서 추천하는 책 읽기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었는데, 이에 관련된 내용도 포함될 예정이다.
나는 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수료했으며, 부전공으로 교육학을 공부해 중등교사 자격증을 땄다. 대학에서 교양 국어와 문학 그리고 국문학과 전공 강의를 다년간 해오다가 미국에 건너온 후 여성문학과 이민자 여성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버지니아 대학교 비교문학 연구소, 버지니아 텍 아시아학과,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 여성학과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플로리다 올랜도를 배경으로 미국 이민자 여성 및 이민가족의 삶과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올빼미와 마주 보다>(2016)와 어느 무명배우의 비극적 죽음을 다룬 장편소설 <미디어 팝 아티스트의 죽음>(2016)을 출판했다. 지금은 라스베가스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하면서 곧 5살이 될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의 이러한 이론적, 문학적 이력이 앞으로 써 나갈 칼럼에 구체적으로 반영이 되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첫 연재를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