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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r 09. 2022

민감한 귀가 문제인가요?

   

주택으로 이사 오고 평온했다. 계속 이렇게 조용히 살 줄 알았다. 미친 듯 짖어대는 개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아파트 층간 소음이 종종 이웃 간 불화의 씨가 되곤 하지만, 단독 주택에서 이웃 간 개소리 때문에 평온이 깨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단독 주택으로 이사 와 동네를 돌아보다 보니, 상당수의 집들이 개를 마당에서 키우고 있었다. 반려견이 급증하는 추세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집 안이 아닌 집 밖에 사는 개가 견주의 주의를 받지 못하면 약간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주택으로 이사 와 동네를 산책하다 각기 다르게 지어진 집을 보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규격화된 아파트와 달리 제각각 다른 크기와 모양의 땅에, 다른 향으로, 다르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건축에 과문하니 집을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각각의 쓸모를 다하고 있는 집들을 감상하는 재미만큼은 능력의 한계를 초월한다. 


산책하다 오래된 집인데 어쩜 이리 새 집처럼 관리를 잘했을까 감탄하며 감상의 망중한에 빠져 있다가, 종종 된서리를 맞곤 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개가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적의를 고양시키며 짖어대기 때문이다. ‘야, 보기만 한 거라구. 침입할 의사는 없다니까.’ 말해봤자 뭐 하겠는가.      



기함해 물러나 도망치듯 빠져나와서는 왠지 존재를 거부당한 것 같아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아파트 실내에서 반려견으로 키우는 개와는 달리, 주택의 개는 집을(?) 사수해야 하는 소명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예 ‘개 주의. 물어도 책임 안 짐. 접근 금지’라는 살벌한 푯말을 걸어둔 집도 있고, 이로도 부족해 집 담장을 족히 삼 미터는 됨직한 철망 펜스로 두른 집도 더러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철망 펜스 집이 바로 내 이웃이라는 것이 불운이었다.    

 

개 짖는 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났다     


내 집에서 대각선 방향의 두 집은 겨루기라도 하듯 높은 철망 펜스를 두르고 있다. 그 목적이 개들의 월담 방지인지, 개 보호 차원인지는 알쏭달쏭하지만 여하튼, 담장 밖의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건 사실이다. 그 집들을 지날라치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가는 철망 담장으로 달려드는 개떼들의 왈왈 컹컹에 거의 실신할 지경으로 간이 떨어졌다 붙기 때문이다. 


게다 나처럼 개에 대해 약간의 트라우마라도 있는 경우라면(어릴 때 개한테 물려봤다), 더 주의해야 한다. 한 마리가 짖어도 놀랄 판인데 열 마리가 달려들어 짖는다고 상상해 보시라. 정말 이 구역은 심신 미약자 통행 주의 구역으로 삼아야 할 지경이다.     

 

이들 집들은 각각 경쟁이라도 하듯 개의 수를 늘리더니, 이제는 각각의 집에 좀 작은 녀석, 중간 덩치 녀석, 큰 녀석 등 종류도 제각각 섞어 다섯 마리씩을 키운다. 두 집 합쳐 육안으로 확인된 것만 총 열 마리다. 물론 얘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복더위나 엄동설한이나 마당의 제 집에서 지낸다. 마당에서 살기 때문에 지나는 사람에게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저 개의  생활환경으로만 보자면 개한테는 좋은 환경인 듯하다. 저 푸른 초원은 아니지만 족히 칠 팔 십 평 되는 마당에서 목줄에 매이지 않은 채 맘껏 뛰어다니고 맘껏 짖고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짖는 소리에 이웃의 생활이 망가진다는 데 있다.      


참고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에서 신문을 보는데 개가 짖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두 집 중 한 집의 개들이 광적으로 짖고 있었다. 견주는 대체 뭐 하는 거지, 철망 담장 안을 들여다보니 마당에 경보 업체 유니폼을 입은 남자 둘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소리쳐 불러도 내 호출은 시끄러운 개소리에 묻히고 있었는데, 견주인듯한 중년 여성이 마당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아니 집에 있으면서 저렇게 오래 짖는데 가만히 있었단 말인가. 견주를 불러 소음을 호소하니 낯선 사람이 있어 짖는다며 미안해했다. 미안하면 애들을 못 짖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경보 업체 직원인 남자들이 가고 좀 지나서야 개들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거의 두 시간을 정말 쉬지 않고 짖어 댔다. 재들은 목도 안 아픈가.  

    


이것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반년도 넘은 어느 저녁, 남편도 딸도 늦은 귀가를 알려와 오랜만에 침대에서 뒹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날이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쳐 들었다. 행복도 잠시, 개들 짖는 소리가 저녁의 평온을 뚫고 사납게 침범하기 시작했다. 철망 펜스 집들로부터 정확히 대각선 방향으로 창이 난 내 방 창문으로 개들 짖는 소리가 직방으로 울려 들어온다. 치명적이다. 


참다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서야 뛰쳐나갔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그 집 마당엔 은은한 오렌지색 등이 켜져 있었고, 개들은 그 불빛 아래서 뛰어다니며 짖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낭만적으로 보일 이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고통을 조롱하는 듯했다. 아무리 불러도 견주는 나오지 않았고(벨이 없다), 개들만 철망 펜스 밖에서 소리치는 나를 향해 온갖 적의를 뿜어대며 으르렁댔다. 나는 졌다. 무참한 심정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개소리에 더 예민해진 건 사실일 것이다. 늘어난 개들끼리 경쟁하듯 더 짖어댔고 빔이면 고요를 뚫고 침입해 내 수면을 앗아갔다. 가뜩이나 어려운 잠이 개들 때문에 더 고통받을 줄이야. 운이 좋아 개들이 덜 짖는 날이 가물에 콩 나듯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어김없이 개소리가 달려들었다. 


내 불면을 안타까워하는 딸이 말랑한 재질의 귀마개를 사주어 이후 줄곧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턴가 귓속이 아프기 시작했다. 귀마개가 말랑한 재질이어도 꽉 막아야 소음을 막아내니, 남들보다 작은 귓구멍에 쑤셔 넣은 게 손상을 입힌 모양이었다. 어이구, 개만도 못한 내 팔자야.      


이사를 가야 하나 시름이 깊던 며칠 전이었다. 지나다 문밖으로 나오는 한 집의 견주와 마주쳤다. 큰맘 먹고 내 고통을 호소했다. 견주 왈, 우리 개가 언제 짖었어요? 너무 민감한 거 아니에요? 세상에... 나는 깨갱했다.      

개와 인간, 공존의 윤리, 어떻게 세워가야 하는 걸까     


개를 좋아하고 개를 키우는 사람들, 그리고 개 자체를 혐오하려는 게 아니다. 동물권 운운하며 이상한 댓글 달지 마시라. 필자 또한 이 지구가 몽땅 인간의 것이라 절대 믿지 않으며, 동물권에 대해서도 인식을 확장하려 노력 중이다.      


주택에 살고부터 양지바른 내 집 마당에 찾아 드는 고양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중 한 마리와는 안면을 튼 사이다. 한 겨울이면 대체 저 애들은 뭘 먹고 사나 안타까워, 마당 한켠에 길고양이용 물과 약간의 먹을거리를 두기도 한다. 


물론 캣맘 수준의 동물권리옹호자는 아니지만, 내 집 마당 양지에 새끼와 같이 잠시 쉬어 가는 그들에게, 집 앞 도로에 주차해 놓은 내 차 밑에서 추위를 피하다 차문 여는 소리에 놀라 화닥닥 도망치는 그들에게, 지구를 독차지하고 망가뜨린 독선적인 동물 종으로서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물권과 개 짖는 소음은 좀 다른 문제다. 동네 견주가 내 소음 호소를 비아냥댔듯, 내가 소리에 예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은 존중받지 말아야 하나?      


반려견주들은 자신들의 개를 자식처럼 여긴다고 한다. 애틋한 개 사랑으로 가족 간에 다툼이 생긴 지인을 알고 있다. 남편의 반려견 사랑이 하도 지극해 어쩌다가는 가족 관계를 해칠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귀한 자신의 개가 그토록 극성으로 짖어대는 소리에는 왜 반응하지 않는 것일까? 지극한 개 사랑과 이웃(가족)과의 공존은 동행할 수 없는 가치인가?    

  

밤새 짖는 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적어도 견주의 청각은 개 사랑과 무관해 보인다. 이웃의 고통을 민감함으로 뭉개버리는 공감 능력의 부재 또한 인류를 넘은 모든 종과의 공존과 화해를 도모하는 동물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런 견주에게 개는 대체 어떤 존재인 것일까? 그리고 민감한 귀를 가진 나와 같은 인류는 무시로 사납게 짖어대는 개와 어떻게 지구의 공유자로 공존해 나갈 수 있을까. 


오늘따라 귀마개로 손상된 귀가 유난히 욱신댄다. 귀마개만이 해결책인가? 욱신대는 내 귀는 귀마개는 한계라고 알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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