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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Jun 09. 2022

'여자 빨치산'을 생각한다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와 <나를 마를린 먼로라고 하자>


‘여자 빨치산’. 식민시기, 해방 그리고 전쟁이라는 역사적 격랑 속에서, 성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자기 해방과 신념을 혁명적으로 수행하며 끊임없이 도전했던 젊은 여자들. 이 경이로운 역사의 계보에 ‘여자 빨치산’이 있다.      


‘빨치산’은 전투의 배후에서 활약하는 비정규군을 이르는 ‘파르티잔’에서 유래한 말이다. “1940년대와 1950년대 한반도 이남에 있었던 조선인민유격대가 흔히 ‘빨치산’으로 불린다.”(위키백과) 반공을 국시로 삼은 남한에서 조선인민유격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빨치산’은 ‘빨갱이’와 같은 말이었다. 이런 이유로 ‘빨치산’은 금기어였다. ‘빨치산’도 그러할 진데, ‘여자 빨치산’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반공이 지배담론이었던 시기 학교를 다녔던 내게도 ‘빨치산’은 낯설고 경계해야 할 무엇이었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누구도 ‘빨치산’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르는 대상은 손쉽게 증오의 표적이 된다. 그러다 이병주의 <지리산>을 시작으로, 이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빨치산’을 본격적으로 다뤘고, <남부군>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금기어를 해제한 일보 전진한 역사였지만, 그 역사에 ‘여자 빨치산’의 흔적은 없었다.     

 

당시는 어리석게도, ‘‘여자 빨치산’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태산 같은 오해였다. 내 오해는 내 무지의 산물이지만, ‘여자 빨치산’을 누락시킨 역사 기록의 태만한 권력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는 수많은 걸출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가 소거되었던 방식과 유사하다. 위대한 역사에서는 물론이고, 비틀린 역사에서도 여성은 소외되었다.      


태만한 공적 기록의 공백을 뚫고 발굴된 아카이빙을 통해 ‘여자 빨치산’의 존재가 아주 조금 드러났다. 최기자 연구자의 <여성 빨치산과 국가폭력>을 통해 밝혀진 박선애, 박순애, 박순자, 이복산의 빨치산 생애사가 그렇다. 이들은 경상도와 전라도 빈농 출신 빨치산이었다. 그런데 내륙 말고도 제주도에서 활약한 ‘여자 빨치산’의 생애사가 발굴되었다. 제주가 어디인가. 민족상잔이 극단적으로 벌어졌던 4.3의 현장, 바로 그곳이지 않은가.     

제주 ‘여자 빨치산’ 김진언     



저자 양경인은 제주 4.3 평화문학상 논픽션 수상작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를 통해 제주 ‘여자 빨치산’ 김진언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1987년부터 5년간에 걸쳐 김진언의 구술을 채록했고, 이 내용은 사후에 발표하라는 그의 뜻에 따라 영면 후 세상에 나왔다.      


김진언(1911년생)을 처음 본 저자는 “흰 범 같았다”라는 인상적인 소감을 서문에 달고 있다. 책에 두 컷 담긴 그의 사진을 보면 저자에 공감하게 된다. 세월을 속일 수 없는 노쇠가 완연하지만, 다부진 체격과 너그러운 듯하면서도 완강해 보이는 얼굴은 그가 살아낸 시간을 웅변하고 있다.  

    

책의 많은 분량이 김진언의 빨치산 역사를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빨치산 생활이 2년여 정도였다면, 이후 체포와 신문(고문)과 잇따른 수형 생활은 근 30여 년에 이르기 때문이다.    

  

혁명의 기개를 세운 짧은 시간의 대가는 너무 길고 혹독했다. 전사로서의 시간을 초과하는 수인으로서의 삶-전향을 강요당하며 겪는 내적 갈등과 고독, 갖은 고문과 끊이지 않는 고통-이 더 길게 소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독자는 아득히 긴 수감 기간 동안 가해진 신체적 정신적 타격으로 손상된 그의 존엄을 아프게 목도하게 된다.      


제주여자 김진언은 13살 때부터 물질을 시작했다. 물질을 나갈 때면 노동을 고무시키는 노동요가 따라오기 마련인데, 언제나 ‘선창은 그의 몫이었다’. 18살에 혼인했지만 4살이나 어린 남편과 부부의 정을 나누긴 난망했다.  

    

시집살이 대신 결혼 후에도, 제주에서 시작해 동해,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긴 여정의 정어리 잡이에 아버지와 동행했다. 역동적인 삶이었다. 결혼과 집을 벗어난 그에게 세상은 넓은 것이었다. 짧게 잡아도 반년이 넘는 시간을 외지에서 보내는 며느리가 파혼당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외모가 출중하고 활달한 성격의 김진언은 많은 남자의 눈길을 받았다. 그러다 불행하게도 한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임신하게 되는데, 이 사실을 알고도 김진언의 세 번째 남편은(본처가 있었다) 혼인을 강행한다. 성폭행도 폭력이지만 강압적인 결혼도 폭력이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부녀동맹 활동을 하며 여성운동의 핵심으로 일부일처제를 내세운 이유는 그의 삶의 질곡에서 비롯하고 있다.      


대담함과 친화력으로 제주 조천면 여맹 부위원장에 천거된 김진언은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만, “여맹 활동이 거의 당을 위한 심부름꾼 역할”에 그치자 회의감에 젖기도 한다. 그러다 제주를 빠른 속도로 접수해 나가는 사회주의 세력에 위협을 느낀 정권이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이들은 산으로 숨기 시작한다. 제주 빨치산의 태동과 동시에 4.3의 비극이 발아되고 있었다.      


급박한 위기에 몰리자 빨치산의 내부는 균열되기 시작한다. 그는 빨치산으로의 삶을, “좋은 때는 누구든지 좋은 사람인데 막상 상황이 험해지니까 좋은 사람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1949년 5월, 그는 식량을 구하러 산에서 내려왔다 체포된다.      


체포 후 김진언은 수감 생활을 하면서 남자의 일그러진 표상을 목격한다. 수감방에 있었던 남자 100명, 여자 50명 중 남자들이 “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배고픔에 굴복해 버리고, 병에 걸려” 30명이 사망하는 것을 목격하고, “남자들이란 가정에서나 우대받는 족속들이었다”고 회고한다. 여자들이라고 고문을 덜 당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심리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주는 성고문이나 강간까지 당했다.  

    



'성소수자 여자 빨치'의 등장  

   

이들이 겪었을 성폭행에 진저리치다 내 의식은 한정현의 놀라운 소설 <나를 마를린 먼로하고 하자>로 옮아갔다. 뜬금없이 왠 마를린 먼로와 ‘여자 빨치산’인가하겠지만, 이물스런 대상들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여자 빨치산’을 등장시킨 것도 놀라운데, 이 소설은 ‘성소수자 여자 빨치산’이라는 독보적인 인물들을 개입시킨다. 또 놀라운 점은, 한정현 소설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여자 빨치산’의 숨겨진 역사를 직접 발견한 데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어느 날 뜻밖의 이메일을 받는다. 할아버지의 빨치산 형제와 오래전 인연이 있던 이로부터 발신된 편지에는 놀라운 진실이 담겨 있었다. 빨치산 내부의 성폭행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한 깊은 상흔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 접한 작가는 빨치산 내부 성폭행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많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건들이 실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 사건과 숨겨진 진실로부터 그의 소설이 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왜 마를린 먼로인가라는 뜬금없음에는 다분히 상징적인 함의가 있다. 그가 숭배와 혐오로 대상화된 대표적 여성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를린 먼로를 ‘성괴(성형 괴물)’라는 여성 혐오와 연결 짓고, 성형은 추리 소설의 외피를 입은 이 소설의 단서를 제공한다.    

  



소설은 ‘여자 빨치산’이었던 인물 김춘희가 산에서 성폭행 당했고, 이후로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와 살아야만 했던 모멸의 삶을 드러낸다. 실제로 ‘여자 빨치산’들의 증언에서도 이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김춘희는 아름다웠고 너그러웠고 지적인 사람이었지만, 산속의 남자들은 여자 김춘희를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남자들보다 더 배웠고 더 나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도, ‘여자 빨치산’의 주된 역할은 뒤치다꺼리였다. 밥하고 빨래하고 간호나 하라는 곳에, 평등한 세상이란 없다. ‘여자 빨치산’의 구술에서도, 여성의 성 역할에 치중된 일이 ‘여자 빨치산’의 주된 임무였다고 증언되고 있다.      


김춘희의 존재도 아프지만, 그를 사랑했고 죽을 때까지 마음에서 놓지 않았던 도쿄의 마지막 파르티잔 이의선도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산 남자들이 침탈하고 훼손시킨 것을 알게 된 충격과 고통으로 그는 한동안 말을 잃는다.      


“산 위에서조차 약한 사람들은 그렇게 늘 아무렇게나 건드려도 된다는 식의 취급을 당했”고, “산에서 내려올 땐 같이 있던 놈들이 달려들었고 잡히니까 남조선 놈들이 고문하면서 달려들었”다.      


그러나 존엄을 박탈당하는 깊은 내상을 입고도, 춘희도, 의선도, 파괴되지 않았다. 살아남았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증언했다. 또한 춘희가 자신이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권력을 강자에게 넘기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퀴어’로 거듭나는 서사는, 손상된 존엄도 스스로 파멸하지 않는다면, 다시 복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여자 빨치산’ 춘희와 의선은 소설의 강한 모티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이들만의 서사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 소설이 추리 소설의 외피를 입고 있다고 밝혔듯이, 소설은 ‘성소수자 여자 빨치산’을 매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확장된다.      


소설은 거미줄에 걸려있는 등장인물들이 압제자 거미의 폭거에 어떻게 싸우다 다치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지를 스릴감 있게 펼친다. 우리에게 낯선 인터섹스(간성)의 등장 또한 신선하고 의미심장할 것이다. 그야말로 ‘퀴어’들의 대거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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