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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r 11. 2023

파주시 '여성친화도시'에 허락된 '여성'은 누구인가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강경 폐쇄와 선유리 성병진료소 철거 문제>


내가 사는 파주시 연풍리 지역이 연초부터 시끌시끌하다. 지난 1월 26일 파주시 김경일 시장이 연풍리 용주골에 있는 오래된 성매매집결지(이하 집결지)를 일거에 폐쇄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 시장은 파주에서 나고 자란 당사자로서 파주시에 아직도 집결지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여성친화도시에 걸맞은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집결지를 반드시 폐쇄하겠다고 선포했다. 얼핏 듣기에 정의로운 시정으로 보이긴 한다.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의 뿌리는 기지촌    

 

용주골 집결지의 연원은 깊고 아프다. 파주시는 50년대부터 대규모의 기지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전쟁고아나 가난한 여성들이 대규모로 모여들었고, 성 구매 대상에 따라 백인 구역, 흑인 구역, 한국인 구역으로 나뉘었다.  

    

한국인 구역은 연풍리를 가르는 갈곡천 건너편에 자리 잡았다. 70년대 들어 미군이 떠나며 기지촌은 급격히 쇠락했지만 한국인을 상대하던 용주골 집결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성 구매 한국 남성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미군 철수와 함께 기지촌 여성들도 떠나갔지만 일부는 용주골 집결지로 스며들었다. 이처럼 기지촌이 한국인 상대 성매매집결지로 변화하는 양상은 대부분의 기지촌이 유사하다.      


기지촌이 성황일 동안 기지촌 주민 대부분이 미군에 기대 먹고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군 철수 이후 잔존한 용주골 집결지는 연풍리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거주민과 공생하는 경제형태가 유지되지 않았고, 뚝 떨어진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집결지 사람이 아니고는 알기 어려웠다. 

 

이런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며 사는 주민의 입장은 착잡할 것이다. 편견 없이 본다고 해도 여성의 성을 매매하는 곳에 여성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을 리 없고, 성 판매 여성을 바라보는 혐오 또한 이곳을 낙인 없이 바라보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동네에 민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곳은 더욱 도드라지게 ‘꼴불견’이 되어갔다. 민심은 용주골 집결지를 폐쇄해야 한다는 입장에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그 방식엔 고민의 여지가 많다.    


  

용주골 집결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이미 재개발이 예정된 곳으로 이곳에서 영업하는 업주나 여성들도 이를 알고 있다. 전국적으로 퍼져있던 집결지가 개발논리로 하나둘씩 사라지는 상황이니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그러나 김 시장의 선전포고와도 같은 폐쇄 선언과 함께 시가 집결지 인근에 초소를 세우고 CCTV를 설치하려고 시도하면서 작업자와 여성들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집결지 폐쇄 소식을 접한 여성들이 시간을 달라며 시에 대화를 요구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가파른 반응이 표출된 것이다.      


이 일련의 상황을 바라보는 시민의 입장은 ‘시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에 의구심이 인다. 김 시장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경악하고 급 처방을 내렸지만(파주시장에 출마하면서 이를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가?), 그전에 이곳의 기지촌 역사를 성찰해야 했다.    

  

이곳은 한때 달러의 화수분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가가 불법으로 조성했던 곳이 아닌가. 오랜 세월 관이 집결지의 뒷배였던 부끄러운 역사가 없었다면 이곳은 존립할 수 없었다. 그러니 집결지가 불법이기에 없애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지금의 집결지가 수십 년간 불법으로 유지되어온 관의 방조와 공모를 먼저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집결지가 융성한 동안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가장 심대하게 착취당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곳의 여성들이다. 그렇다면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입장에 귀 기울이는 노력 또한 시장이 반드시 견지해야 하는 책무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시의 강경한 폐쇄 선포와 여성들의 저항이 이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다 용주골 집결지를 가보았다. 빈 건물이 많았지만 아직 운영되고 있는 속칭 ‘유리방’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성을 판매하기 위해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을 입고 전시된 여성들의 각각의 사연이 안쓰러웠다. 사정은 제각각이겠지만 이들의 목적은 단일하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이들의 문제는 언제나 경제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왜 모른 체하는 걸까.     

 


이곳 집결지 여성 대부분은 3-40대다. 곧 노년이 되어 노동시장에서 소외될 소수자인 동시에 그럼에도 대부분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다. 김 시장은 무조건 밀어붙이기 식으로 이들의 곤경을 외면하지 말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김 시장이 말하는 여성친화도시 속에 성매매 여성의 인권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란 속에 또 하나 의아한 점은 파주시 여성시민단체들의 반응이다. 집결지에서 오랫동안 성매매 여성 상담소를 운영해 여성인권단체 쉬고는 시의 몰아붙이기식 집결지 폐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나섰다. 그간 집결지 여성의 곤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여성인권단체가 보인 태도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파주시의 여타 여성인권단체 역시 시의 ‘닥치고 폐쇄’ 조치에 성매매 여성의 인권 보호를 위한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어 의구심을 커지고 있다.    

  

‘여성친화도시’의 ‘여성’은 누구인가     


파주시가 추진하려는 여성친화도시 정책에 부쳐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파주시 선유리의 옛 성병진료소 문제다. 선유리 역시 미군이 주둔했던 곳이고, 기지촌이 융성하던 당시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기 위해 관은 강제로 정기 검진을 행했다(이는 지난해 대법원의 판결로 위법함을 인정받았다). 강제 검진을 하던 곳이 바로 선유리 성병진료소다.   

   

이곳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보기 흉한 모습이지만 원형이 보존된 생생한 인권침해의 현장이다. 이를 시가 나서 매입해 인권옹호관으로 거듭나게 하라는 시민들의 줄기찬 요구가 있었지만 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성병진료소가 경매로 개인에게 낙찰되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말이다. 시가 역설하는 여성친화도시에 불법으로 인권침해를 당한 기지촌 여성의 인권은 어디 있는가.    

 

 

알고 지내는 한 기지촌 여성은 이 성병진료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이제 노인이 된 그는 성병진료소를 볼 때마다 진저리가 쳐지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이곳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뿐 아니라 동두천의 ‘몽키하우스’로 불리던 성병관리소 역시 동두천 시의 개발논리로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기지촌여성들의 성병 검진이 위법했음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무색하게 하는 반인권적 처사다.      


아픈 역사도 역사다. 아픈 역사를 통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면 여성인권은 그저 법 문서로만 남을 것이다. 역사 속에 침해당한 여성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가장 낮은 곳의 여성을 밟고 선 여성친화도시는 허상이다. 파주시와 김 시장은 선유리 성병진료소 보존대책을 내놓고,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여성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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