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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r 23. 2023

내 '반일 감정'은 투명한 정의감일까?

<우리 안의 친일-반일을 넘어 탈식민의 성찰로> (조형근, 2022)


지나가는 길에 걸린 자극적인 현수막이 눈을 잡아끌었다. 매국노 이완용 부활했나 하는 내용이었다. 어느 당이 걸었는지 보지 않아도 알겠다. 이를 보고 사이다를 느꼈을 사람도 꽤 있겠지만, 난 썩 통쾌하지 않았다.      

저런 말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입담은 조회 수로 밥벌이를 하는 유튜버들이나 할 일 아닌가? 국민의 삶을 살피고 국론을 정의롭게 세워야 할 정치인들이 할 바는 아니다. 할 일은 안 하고 사사건건 현수막 난타전이나 벌이는 국X당도 민X당도 다 답답하다.  

    

대통령이 일본에 가 아낌없이 퍼주고 온 백지수표 외교는 논하기도 김빠진다. 그냥 ‘생각 없음’ 말고 달리 무슨 해석이 가능할까. 일개 국민인 누가 갔더라도 그리는 안 했을 테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의 ‘생각 없음’은 어디에 기인하는 걸까? 어쩌면 그의 내면에 극복 못한 식민지성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대체 대통령이 왜 저럴까 하는 답답한 마음에 <우리 안의 친일>이라는 책을 들게 되었다.     


뭐 하나 진중히 고민한 흔적 있는 정책은 하나도 안 나오는 마당에,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핵미사일을 쏘아대고, 미국은 중국이 미워 다시 냉전체제로 돌아가려고 우리 반도체고 이차전지고 다 지네 땅에서만 만들라고 겁박하고, 기후 위기는 당장 인류의 숨통을 조이며 들이닥칠 기센데(이 밖에도 많지만), 산적한 현안과 민생은 뒷전이고 이권다툼하느라 아직 선거구 개혁 하나를 마무리 짓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인들...     


이 책을 읽었다고 얹힌 듯한 체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세상 일이 책 하나로 해결된다면 만사형통이겠지. 여튼 이 책 <우리 안의 친일>은 성찰 덩어리였고 나름 내 안의 친일관을 매조지게는 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견지한 민족주의라는 게 어쩌면 일제의 식민지 확장책의 파이프라인이었는데 이것도 모르고 떠든 유사 민족주의였을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한 방, 한 나라가 식민지로 산다는 게 그것도 꽤 오래 지속된다면, 아가 피가 되고 피가 아가 되는 위치성 망각으로, 가해자가 가해를 모르고 피해자가 피해를 모르고 혹은 피해자는 온통 피해자인 줄만 아는 순결한 피해자성에 몰두해 자기가 가해한 것은 까맣게 잊고, 저렇게 매국노 어쩌고 하는 말로 쉽게 민족주의를 동원해버리는 몰지성이기 십상이라는 데 한방, 그러니 민족주의로 둔갑된 너의 식민지성을 모르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는 뭐 이런.... 

     

이렇게 말하니 저자가 엄청 따따부따 다그치나 보다 하겠지만, 그건 전혀 아니다. 저자 조영근은 이쪽 편에서도 뭇매 저쪽 편에서도 뭇매 맞을까 봐 매우 조심스럽게 돌다리를 수도 없이 두드리고 있으니, 열변으로 침 튈까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씀.    

  

앞서 말한 민족주의로 둔갑된 식민지성 관련 짧게 설을 좀 풀자면 이렇다. 일본한테 퍼주고 온 것도 빡치는데 뭔 말이냐 비분강개하지 마시고 잠시 워워 해주시길. 우리가 고구려를 찬양하는 근저에 그 연원을 캐내 보면 일제 때로 소급되는데, 일제가 만주를 먹으려고 아주 교활하게 작동시킨 ‘만선(滿鮮)사관’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고구려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이는 드물 텐데, 아마도 우리 역사상 가장 넓게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시킨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대륙적 웅대함에 매력을 느껴 고구려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 감정은 한민족으로서 가지는 자연스런 감정이라 믿어왔겠지만, 실은 일제가 주조해온 ‘만선사관’이 그 기반일 수 있다. 일제는 만주를 삼키려고 조선인들이 꾸준히 이주해 공동체를 꾸리도록 독려했고, 이윽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갈등(만주에서 조선인은 만주족, 한족, 몽골족 중 일본 다음으로 이등 국민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조선에선 영원한 이등이지만 만주에선 달랐다.)을 기회 삼아 만주사변의 기틀을 마련한 후, 마침내 만주국을 세웠다.      


즉 일제에게 “만주라는 새로운 공간은 식민지 조선인의 민족주의적 열정과 제국 일본의 국책이 충돌하지 않고 동행할 수 있는 뜻밖의 여지를 제공”했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동행하는 기묘한 민족주의적 열정의 한 형태”로 “만주와 조선이 역사적으로 하나라는 사관, 바로 만선사관”이 탄생했다.      


이는 식민지 시기는 물론이고 해방 후에도 계승되었고, 이은 전쟁과 분단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그때 그 사람들 친일파는 친미파로 신분 세탁에 성공해 각계각층에 요직을 꽤 찼고, 이들은 다시 반공주의자로 거듭나며 분단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선봉에 섰다.      


‘만선사관’에 물든 유사 민족주의는 내게도 크게 다르지 않게 스며있었다. 그 옛날, ‘아 고구려’라는 어떤 전시 제목을 보고 공연히 달뜨던 정동에 이 유구한 만선사관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뿐인가. 아주 어릴 적 기억도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가슴 뭉클하게 읽었던 <북간도>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농민들의 간도 수난사이긴 했지만, 구한말부터 일제 때까지 만주 땅의 정주권이 조선에 있음을 줄기차게 각인시켰던 서사였다. 이 책의 작가인 안수길은 1936년 용정에서 <간도일보> 기자 생활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간도>를 썼다. 그 역시 물고기 비늘에 물이 스미듯 ‘만선사관’에 젖어들었을 터, 단지 간도인에 대한 짠한 민족적 동질감이 소설의 동기가 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릴 적 무척 뭉클했던 내 감정이 오염된 ‘만선사관’에 기인했다는 뒤늦은 자각에 착잡해졌다.   

  


그러고 보니 ‘만선사관’에 얻어맞기 전에도, 일제의 만주국과 만주군의 영향이 한국군과 여성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일치감치 알고 있기는 했다. 김귀옥의 책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를 보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독자분은 ‘일본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까지는 들어봤겠지만, ‘한국군 위안부’는 낯설 것이다. 김귀옥이 이 책을 내고 한국군 위안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와 이를 통해 은폐된 한국군 위안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라고 촉구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한국 정치가 이렇다.    

 

나는 몇 년 전 지역 아카이빙 차원에서 한 남성 노인분을 만나던 차 뜻밖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춘천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한국전쟁 동안), 춘천은 남과 북의 고지전 쟁탈이 치열했던 곳이었다. 당시 군의 ‘특별 보급품’으로 지급된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한국군 위안부’였다고 한다. ‘특별 보급품’이라니.. 고지전 전투에 나가 죽을지도 모를 병사의 기를 살리기 위해 위안부가 고안되었고, 이들을 관리하는 행태는 ‘일본군 위안부’의 것과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여기서 잠시 만주에서 활약했던 조선인 만주군 장교들을 들여다보자. 그들은 일제가 패망하자 자신들의 부끄러운 친일을 반성하고 조용히 귀향했을까. 아니다. 해방 후 미군정은 북의 기운이 심상치 않자 옛 조선인 만주군 장교들을 그대로 한국군 요직에 배치시켰다. 항일 빨치산을 때려잡던 만주군 장교가 한국군 장성으로 탈바꿈해 ‘빨갱이’를 쓸어버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본군이 어떻게 병사를 규율했는지는 모두 안다. 전쟁에 대한 불만과 공포를 지우기 위해 위안소를 설치했다. 일본군 장교였던 이들은 만주에서 배운 그대로를 한국군에 이식했다. 위안소를 설치했고 ‘특별 보급품’으로 위안부를 배치했다. 부끄러운지도 모르는 행적은 이들의 회고록(채명신, 김희오, 차규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런 기억과 경험들의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독자분들도 ‘만선사관’과 연관된 찜찜한 무엇이 한두 가지 떠오를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아 나는 피해의식에 쩔은 식민지성 같은 건 없어’라고 장담하기가 왠지 석연치 않을지고 모른다. 


생각해 보면 개발과 성장만 좇던 한국 사회가 언제 제대로 우리 안의 식민지성을 성찰할 계기가 있었던가. 게다 해방공간과 이은 전란 후 한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무자비한 좌익 학살로 완전히 균형을 잃으며 우경화되었다. 우경화된 민족주의는 한 끗 차이로 파시즘을 흐를 위험이 다분하다. 좌익을 절멸시키고 뻑하면 ‘빨갱이’를 들이대며 국민을 겁박하던 군사 정권의 무지로는 도무지 성찰의 물꼬를 틀 수 없었다.      


일제의 식민지는 전 국민의 수치로 치부되었고, 일제 매국노 몇의 이름을 악마화해 갈아 마시기라도 할 듯 공분하는 것으로 우리 안의 친일을 순결화했다. 40년간 이어진 식민 통치가 정말 저 매국노 몇의 기여로 유지될 수 없다는 건 어린아이도 알 이치지만, 한국 사회는 매국노 몇을 저주하고 영웅 몇을 그의 대척점에 놓고 기림으로써 우리 안의 식민지성을 극복했다고 착각했다.      


그 어설픈 민족주의가 저렇게 매국노 이완용을 쳐들어 반일 감정을 돋우는 것으로 외교 참패의 책임에 난 잘못한 거 없다고 시침을 뗄 수 있게 한다. ‘탈식민’은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지만 우리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상태다.      


<우리 안의 친일>은 ‘만선사관’만을 다루지 않는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상과 지식인이 되어 큰일 하자는 식민지 의학도의 다짐이 어떻게 식민지성과 결합해 일제에 의해 규율되었는지, 또 프랑스 나치 청산이 완전했다는 주조된 신화를 파헤치고, 독일의 나치 극복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부침을 겪으며 날선 비판과 다툼의 기나긴 정반합을 거쳐 마침내 자신들 내부의 파시즘을 성찰해 냈는지 조곤조곤 설명한다.   

   


독일인이라고 하루아침에 반성과 사과로 홀로코스트를 직면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지독히도 긴 성찰의 시간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냄으로써 가능했다. 홀로코스트가 단지 히틀러라는 유일한 괴물에 의해 감행된 것이 아니라, 독일인 모두의 방관과 묵인과 침묵과 동조 속에서 집행되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논제도, 단지 매국노 친일파라는 괴물들을 다시 끄집어내 부관참시 하려는 으르렁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식민지성은 어떠했고 지금 어느 지경인가를 더듬고 살펴보고 톺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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