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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y 17. 2023

페미니스트의 '자매애'라는 거짓말

파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닥치고 폐쇄'에 부쳐


파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가 몇 달째 어수선하다. 김경일 시장이 ‘닥치고 철거’를 선언한 후부터다. 김 시장이 대화를 요청하는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의 요구를 완전히 묵살하고, ‘불법과 대화는 없다’는 강경 일변도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70년이 넘도록 관의 침묵과 공조와 비호 없이 불법 성매매집결지가 집단적으로 운영되었을 리 만무하다. 어린아이도 알 이 이치를 김경일 시장만 모른 채하고, 오랜 세월 관이 저지른 방조에 대한 성찰이나 사과 단 한마디 없이 ‘토벌’에 나섰다.  

     

몇 달간에 걸쳐 대화를 요청했지만 시가 응하지 않자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은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1인 시위는 물론 일부 성매매 여성들이 시청 진입을 시도하던 중 공무원과 대치하다 한 여성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http://www.pajuplus.co.kr/news/article.html?no=10710)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이들은 극단적인 상황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김경일 시장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이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던 중, 5월 16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라는 성매매여성 당사자 단체가 용주골에 위치한 문화극장 앞에서 연대 기자회견을 가졌다.(http://www.pajuplus.co.kr/news/article.html?no=11049) 개발논리로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을 맨몸으로 내쫓으려는 파주시와 김경일 시장을 규탄하기 위한 자리였다. 


나는 조금 놀랐다. 탈성매매한 여성들의 단체인 <뭉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매매 당사자 단체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용주골 사태가 당사자 운동이라는 다른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성매매반대 운동이나 성매매 담론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소거되어왔음을 돌아볼 때, 은폐의 벽을 뚫고 나온 당사자의 목소리는 의미심장하다.   

   

아무튼, 성매매 집결지 ‘닥치고 폐쇄’는 안 된다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의 저항을 지켜보는 몇 달 내내 착잡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성매매집결지에 찬성할 수는 없다. 또한 근본적으로 성매매가 여성의 존엄을 해친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성은 거래되지 않는다. 오직 여성의 성(몸)만이 거래된다. 이 기울어진 매매의 지형 자체가 불평등과 부정의를 배태하고 있지만, 성을 사는 X들의 입장과 성을 팔 수밖에 없는 여자의 입장이 다르다는 걸 이해한다.  

   


한편 성 판매를 노동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성노동주의 입장에 완전히 서 있지도 못하다. 하지만 내 내면의 길항에도 불구하고, 용주골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불법이니 내쫓아야 한다는 시의 폭력적 정책에는 절대 찬성하지 않는다. 그들도 파주 시민이다. 그들도 여성이다. 왜 시장은 그들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는 것인가.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로 치부한 시장의 인식이 곧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이 어디에도 없다는 반증이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가 연대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행이었고 미안했다. 왜냐하면 파주의 어느 여성인권단체들도 김 시장의 ‘닥치고 폐쇄’에 어떤 입장문조차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연초 용주골 사태가 불거졌을 때 먼저, 파주 성매매여성 지원단체인 <쉬고>에 전화해 입장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시의 입장의 당 단체의 입장이니 시에 문의하라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이어 성폭력 지원단체인 파주여성민우회에 강경 철거에 대해 우려와 경고의 입장문을 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사태를 예의주시하겠다는 뻔한 답변 외 몇 달째 어떤 대책도 듣지 못했다. 이것이 여성인권을 옹호한다는 사람들의 작태다. 이들이 주창하는 여성인권 어디에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있는가.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오드리 로드는 여성 간의 연대를 주창한 미국 페미니스트다. 그는 흑인이자 레즈비언으로서 레즈비언 공동체를 꾸려 지독한 남성중심주의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는 넘을 수 없는 벽에 직면한다. 가부장으로부터의 해방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페미니즘에 있어,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이 절대 같은 지형에 설 수 없다는 아픈 자각이었다.      


미국 1-2세대 페미니즘 시기, 주류 백인 페미니스트는 중산층 여성의 해방이 먼저였고, 흑인 페미니스트는 빈곤과 인종차별을 딛고 올라설 사다리가 필요했다. 유색인종 여성들에게 행해지던 강제 불임수술을 멈추라는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요구에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참정권과 낙태권을 지지 받기 위해 남성 기득권과 결탁했다. 


남성우월주의와 싸운다는 그들의 슬로건이 무색하게도 가부장과 백인성에 타협하고 권력을 나누어가졌다.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자매애’를 외쳤지만, 여기에 유색인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이 모순을 오드리 로드는 ‘시스터 아웃사이더’라 일갈했다.

      

지금 파주 여성인권단체들이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에게 보이는 냉담과 배제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떠벌린 ‘자매애’ 가 허위였던 것처럼, 자신들의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인증하는 꼴이다. 그런 너는 그들에게 자매애가 있냐고 재우친다면, 부끄럽지만 없다. 나는 가부장의 짙은 그늘에 있었고, 오랜 시간 생활고에 시달리는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각박한 성매매집결지 여성의 삶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나는 고작 용주골에서 기지촌 여성으로 처절하게 살았던 김정자의 기록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이나, 성매매 여성으로 살았던 봄날의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그리고 성매매 여성으로서 성매매를 노동으로 편입시키라는 성노동주의 당사자 운동을 펼치고 있는 몰리 스미스의 <반란의 매춘부들> 등을 읽고, 그들의 삶을 짐작할 뿐이다.   

  


내게 이들과 동일시할 능력은 없지만, 이들이 일터에서 무작정 쫓겨나도록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불의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과 분노는 나눌 수 있다. 내가 가진 얄팍한 연대감으로 이들과 ‘자매애’로 연결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이들 편에 설 수는 있다. 파주의 여성인권단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주골 성매매집결지를 철거하면 그곳에 허울뿐인 성매매여성인권센터를 세워 운영하겠다는 성매매여성 지원단체 <쉬고>, 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성폭력 상담소가 시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 모르쇠로 일관하는 <파주여성민우회> 모두 여성인권이라는 이름을 쓸 자격이 없다. 차라리 '보호받을 여성'이 아닌 성매매집결지 여성과 나눌 인권 같은 것은 없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여성인권의 이름을 내리라. 성매매집결지가 없어진다고 성매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안다. 눈에 가시를 없앴으니 성매매가 사라졌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 이 글이 발행된 이후, 파주여성민우회는 필자의 주장, "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성폭력 상담소가 시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 모르쇠로 일관하는"의 부분에 있어,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의 상황에 무대응한 점은 인정하나, 시의 보조금 때문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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