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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Sep 14. 2023

파주여성민우회 <성매매집결지 폐쇄 집담회>를 다녀와서


지난 9월 12일, 파주여성민우회가 주최하는 성매매집결지 ‘폐쇄’ 집담회에 다녀왔다. ‘폐쇄’라고 못 박은 표현의 함의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파주여성민우회는 파주시의 ‘닥치고 폐쇄’ 정책에 지지로 일관해 왔던 ‘여성인권’단체이기에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런 이들이 집결지 ‘폐쇄’를 전제하고 집담회를 연다면, 찬반양론이 균형감 있게 펼쳐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집담회 타이틀인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달려 있었던 건, 어떻게라도 행정대집행이 불러들일 파국을 피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나 보다.      


행정대집행(여기서의 대집행을 보통 대대적인 집행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대신 집행시킨다는 뜻이다. 누구에게? 철거용역 업체에게. 즉 철거 깡패에게)으로 끌려 나오며 다치고 부서질 여자들이 자꾸 눈에 어른거려 참혹한 마음이 들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품었던 이유였다. 희망 같은 것은 없었다.     

 

방향을 벗어난 파주여성민우회 집담회


집담회는 예상대로 폐쇄의 불가피함을 설파했다. 파주시 의회 이익선 의원의 폐쇄하되 집결지 여성들의 인권을 고려한 질서 있는 폐쇄를 주장한 짧은 발제 외, 집담회는 지금껏 파주시가 벌였던 폐쇄 옹호 강연과 다를 바 없는 폐쇄 강변론으로 채워졌다. 


나는 인내를 가지고 버텼다. 분명 집담회 안내문에는 청중의 질의응답이 있다고 적혀있었지만, 전문가라는 분들의 일장연설이 끝난 후 남은 시간은 고작 5분도 되지 않았다. 지역 의제를 다루는 공개 집담회(集談會)를 열고 지역민의 이야기(談)는 소외시킨다면, 이 집담회는 누구의 무엇을 위해 이루어진 것인가.    

 

집담회는 방향을 잘못 정한 채 가고 있었다. 집결지 폐쇄에 반대하는 이들의 생각을 교정하기라도 할 작정인 양 구성된 발제는 시기적으로도 대응 면에서도 적절하지 않았다. 집결지 이해관계자를 제외한 어느 누가 집결지 폐쇄 자체를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닥치고 폐쇄’를 마치 군사작전 치르듯 선포하고 불법을 척결하겠다고 나선 파주시의 몰염치와 반인권적 행정에 있다. 폐쇄 반대가 아니라 폐쇄 방식의 반민주성을 문제 삼고 있는 시민의 의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집담회였다.        


집결지가 불법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집결지의 불법성은 그리 간단히 선고해버리고 말아도 되는 맥락이 아니다. 집결지에 기지촌의 역사가 이전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주에서 나고 자랐다는 파주 시장이 지금껏 집결지의 존재를 몰랐다며 이런 불법의 온상을 밀어버리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자랑인가? 이 코미디는 그가 얼마나 파주의 역사에 무지했는지를 방증하는 셀프 폭로지만, 그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가 일고의 지역 역사의식과 이 역사를 관통해 살아온 모진 삶의 당사자인 성매매 여성들의 고통을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했다면, 저다지 무도한 언사를 할 수 없다. 70년간 집결지에서 벌어진 불법은 관의 비호와 묵인과 방조 없이 불가능했다. 불법으로 점철된 시와 정부의 역사에 대한 무지는, 불법으로 불법을 일소하겠다는 폭력을 낳았다.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지도자라면, 집결지 폐쇄를 결정함에 앞서 무엇보다 과거의 국가폭력과 지방정부의 폭력을 성찰하고 사과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방치로 낙후된 기지촌 재생을 위해 국가는 지역 균형 발전의 책무를 다하라고 촉구하고, 이를 위해 파주시민과 함께 싸워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파주 시장은 가장 쉽지만 가장 나쁜 방식을 택했다. 약자인 성매매 여성들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만나달라는 종사자들의 탄원에 일별도 주지 않은 채, 연내 무조건 폐쇄를 외치며 약자와의 전쟁에 나섰다. 


한가한 담론이 된 파주여성 민우회 집담회     


집담회 시작은 반성매매 운동의 대모 격인 정미례 선생이었다. 노쇠가 완연하지만 강인한 외모는 그가 얼마나 모진 풍파를 겪으며 이 일에 매진해 왔는지 짐작하게 했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성매매 여성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헌신해온 일은 존경할 만하다. 하지만 그가 가진 용주골 현장에 대한 기억은 오래전 찍은 사진처럼 낡아있었다.      


전국구 성매매집결지 연구자인 그가 용주골을 다녀간 때는 2004년. 지금은 그때로부터 20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알던 그때 용주골을 현재에 이식하고 있었다. 감금과 폭행을 당하고, 고리 빚에 얽매여 팔려 다니는 불쌍한 피해자들이 죽지 못해 사는 곳. 하지만 내가 만나 본 여자들은 이런 노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싱글 맘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가장으로 가족을 부양하면서,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말은 이들이 고질적인 젠더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이들은 분명 구조적 피해자다. 지구 어느 곳에서도 남자의 몸을 성적으로 사고팔지 않는다. 오직 여성의 몸만이 거래된다. 이들은 명백한 젠더 폭력의 피해자지만, 상상 속에 재현된 타자화된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다. 불쌍한 피해자, 착취당하는 피해자, 구제받아야 하는 피해자의 처참한 얼굴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단일하게 구성됐다고 믿어지는 피해자 집단 내에도 개인 간 차이는 엄연하다.      


성매매 여성에게 강요하는 피해자 다움     


이들에게 일관된 피해자상을 부여하거나 기대하는 건, 이들의 삶이 철저히 타자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전시된 유리방 속의 여자들을 보듯이, 사람들은 이들의 삶 역시 유리방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대상화된 삶은 단지 피해자다울 때에만, 그나마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규정된다.      


피해자 다운 여자들, 즉 성매매를 반성하고 탈 성매매로 사람답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보이는 여자들에게만 적확한 피해자의 자격이 주어진다. 탈 성매매를 맹세하고 이를 2년간 성실히 해낼 의지가 있는 여자만 구제하겠다는 것이 파주시 성매매 피해자 자활지원 조례의 취지다.      



물론 지원금을 주는 것이 주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하지만 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는 착한 피해자라는 위치는 이들이 피해자가 되어야만 했던 구조적 문제(빈곤, 장애, 소외, (가정, 성) 폭력 등)를 삭제한다. 이런 방식은 사회 전체가 어떻게 성매매라는 구조적 폭력을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자활지원금이라는 손쉬운 금전적 방식으로 치환시킨다.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은 소거되고, 지방정부가 관용으로 피해자를 지원했다는 결과만 오롯이 남는다. 피해자에서 수혜자로 탈바꿈된 위치는 지원금이라는 돈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며 ‘갱생’과 그 결과를 오직 피해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여기서 낙오하면 그야말로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암시와 공포를 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모순되게도, 이 나마의 돈이라도 받아 삶을 꾸려보려는 여자들이 많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이 조례가 여자들의 실상을 면밀하게 반영해야 한다. 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지원금은 혼자 몸으로 겨우겨우 살아갈만한 돈이다. 하지만 이곳 여자들 상당수가 부양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조건을 ‘갱생’의 기회로 삼을 수혜자가 얼마나 될까. 


이들이 피해자의 지위를 얻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포주의 악랄한 손아귀가 아니라 실상은 미래 소득이다. 저 정도의 지원금에 피해자 지위를 얻으려 할 여자가 거의 없다는 것은, 조례가 타 도시의 조례를 성급히 본 따 급조했을 뿐, 당사자의 개별적 상황은 반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에게 제공된다는 ‘자활’ 프로그램은 어떨까?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라는 젊은이들조차 낙오하는 취업시장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자활’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까. 관이 추진하는 ‘자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자활’을 담보할 수 없다는 부담도 여자들이 자활지원 조례를 선뜻 선택할 수 없는 하나의 이유로 작용할 수 있다.      



성매매 피해자 자활지원 조례가 현실에 발 딛고 있지 못하듯 집담회도 부유했다. 초대된 발제자들의 자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급박한 현실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담회가 이루어진 9월 12일은 본래 용주골 집결지에 행정대집행이 예고되었던 날이다. 업주들의 가처분 신청으로 집행이 잠시 미루어졌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무자비한 철거가 벌어졌을 바로 그날이다.   

   

여자들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의지를 표명했지만, 압도적 다수와 무력으로 무장한 철거 깡패에 무슨 수로 맞서겠는가. 공권력이라는 폭력에 극단적으로 대치하다 벌어질 참혹한 사태를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9월 12일이라는 무심한 날짜는 정해질 수 없다. 또한 지금 여기의 급박한 이야기를 밀쳐두고 타 도시의 지나간 회고담을 들으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자는 제언은 얼마나 공허한가. 얻어맞고 뜯겨져 나가는 몸들 앞에서, 타 도시의 사례나 뜯어보고 있는 집담회는 얼마나 한가로운가.      


성매매 여성 지원 단체라는 ‘쉬고’는 누구인가


이렇게 한가로운 집담회는 파주시가 ‘닥치고 폐쇄’를 외치기 전 있었어야 했다. 누구보다 시장이 이들의 경험을 경청하고 반영해야 했다. 성매매집결지 폐쇄든 해체든, 타 지역(대구 자갈마당이나 전주 선미촌 등) 지방정부는 이렇게 서두르지도 이렇게 폭압적인 방식으로도 일관하지 않았다. 


해체를 위한 사전 준비가 면밀히 진행되었고, 적어도 7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반면 파주시는 해체를 위한 사전 작업도 절차도 무시한 채, 단 1년 안에 무조건 집결지를 갈아엎겠다고 나섰다. 자신의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내고야 말겠다는 시장의 비틀린 야심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반민주적 행정이다.    

 

성매매집결지를 폐쇄가 아니고 해체했던 지역에는 반성매매 활동가들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집결지 해체를 위한 여론을 모으기 위해 관과 시민과 시민단체가 한 텐트 아래 모여 머리를 맞댔다. 누구보다 성매매 종사자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시민에게 알려나가기 위해 공청회, 강연, 토론, 캠페인, 대인 홍보에 나섰다. 무엇보다 집결지 여성들과 오랫동안 형성해왔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긴밀히 접촉하며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그렇다면 ‘닥치고 폐쇄’가 선언되던 때부터 오늘까지, 파주에 누가, 어떤 단체가 여자들의 곁에 있었는가? 집결지 여자들을 위해 누가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가? 주는 거 받아나 먹으라는 압박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철거 협박뿐, 누가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는가? 이들의 소리를 받아내고, 시민을 만나고, 시민단체와 연대해나가야 할 파주의 성매매 지원단체인 쉬고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위 타 지역 반성매매 여성 단체들이 벌인 활약에 비해, 쉬고는 해 온 일이 없다. 그들은 용주골 현장 어디에도 없었고, 피해자라고 상정한 저 여자들 곁에 서있지도 않았다. 집결지에서 20년간 일했다는 한 종사자는 쉬고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간청할 때, 쉬고는 그들 곁에 없었다. 쉬고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여자들은 파주여성민우회에 자신들을 만나달라고 요청했다(민우회는 만나 주지 않았다). 만일 쉬고가 위 타 지역의 성매매 지원 단체처럼 헌신했다면, 왜 그들이 쉬고를 찾지 않고 파주여성민우회의 문을 두드렸겠는가.      


이런 이들이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겠다는 파주 시장의 일성에 폐쇄의 깃발을 높이 쳐들었다. 폐쇄 동조에 대한 입장을 알려달라는 내게 그들은 파주 시청에 물어보라고 답변했다. 이들이 진심으로 성매매 여성들 지원을 위해 활동해왔다면, 시민의 우려 섞인 질문에 이렇게 무례한 방식으로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 타 도시의 활동가들처럼, 시민 한 명이라도 더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려 노력했을 것이다. 쉬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시민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고, 파주시 시민단체 누구와도 연대하지 않았다. 쉬고는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누구의 편에 서있는 단체인가. 물음표가 커져만 간다.    

  

쉬고는 파주시로부터 수년간 수억 원의 예산을 받아 운영해왔다. 시 예산으로 성매매 여성 지원을 위해 얼마를 어떻게 썼고, 무슨 활동을 해왔는지 밝힐 책무가 있다. 또한 집결지 여자들은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성매매 지원 단체로 시의 자활지원 조례에 깊게 관여할 자격이 있는지, 무엇을 근거로 지원대책을 마련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반드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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