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 Oct 29. 2023

'아다니아 쉬블리'를 보았다

 

오, 아다니아 쉬블리를 만날 기회가 왔다. 얼마 전 복잡한 감정이 찰랑거리게 한 소설 <사소한 일>을 읽고 울렁대던 차,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소식을 접했다. 망연해졌다. 공격당한 이스라엘이 손 놓고 있을 리 없을 터, 무고한 생명이 으스러질 재앙이 예언처럼 펼쳐져 공포스러웠다. 내 공포감은 공감을 극대화했다 쳐도 엄밀히 말해 남의 재앙에 그친다.   

   

<2023 DMZ 평화문화축전>이 파주 출판도시에서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렸다. 그중 ‘전쟁, 여성, 평화’라는 주제로 문학포럼 2세션에 아다니아 쉬블 리가 참가한다고 알려졌다. 사전 신청을 하고 참석했다. 운 좋게 신청했다고 생각했는데 참가자가 별로 없었다. 일반 시민은 나 외엔 없어 뻘쭘했다. 아다니아 쉬블리가 왔는데 이렇게 관심이 없는 것에 조금 놀랐다. 나만의 팬심이었나... 

    

아다니아 쉬블리가 포럼에서 발표한 <다시, 쓰기 위하여>는 팔레스타인 소설가의 다짐 같았다. 그는 안정이라는 말이 사라진 땅에서 당사자로서 동포의 불안과 슬픔과 고통을 같이 겪으며 글을 쓰는 이의 심정을, “비참함의 진부함 앞에서 글쓰기의 소명은 다시 한번, 가로등을 켜는 사람의 것과 같다”라고 밝혔다.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았다.      


하마스 공격 이후, 미디어에는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을 각각 지지하는 설화들이 오갔다. 각각 일방적으로 옳다. 나는 팔레스타인이 겪는 억압에 더 공감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방 속에 어느 한 쪽 편에 온전히 서기란 어려운 일이다. 당사자인 아다니아 쉬블리는 어떤 마음일까.     

 


아다니아 쉬블리의 발표문에 토론을 맡은 나희덕 시인은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프랑크프르트도서전에 취소된 시상식을 언급하며 그의 입장을 물었다. 모두 궁금한 질문이었을 테지만 그는 직답을 피했다. 대신 “침묵 속에서 글쓰기”라는 말로 대답을 갈음했다. 

     

이는 익산문화재단에서 그가 밝힌 “때로는 침묵이 강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저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말하기가 어려울 때에는 침묵이 훨씬 더 커다란 것을 내포하고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말하기 어려울” 그의 입장이 무겁게 다가왔다.    

  

아다니아 쉬블리는 짧고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에서 그는 간편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저 머리 위에 히잡을 두를 것이다. 그곳에 외부의 억압 말고 내부의 억압은 없을까 잠깐 생각했고 묻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살고 있는 땅이 폐허로 변하는 현장을 목도하는 그에게 내 질문은 한가할 것이다. 영리해 보이는 큰 눈으로 발표자들의 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는 모습이 진실해 보였다.

     

같은 날 오후에는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와 J.M.G. 르 클레지오 그리고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대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는 한국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알려진 노벨문학상 작가이고 J.M.G. 르 클레지오는 많은 소설을 썼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힘들지만 인상 깊게 읽은 나는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대담에서 문학가들과 정치인 경기도지사가 무슨 대화를 이어갈까. 바람직한 시도로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김동연 지사는 장례 중으로 참석하지 못해,, 그를 대신해 염태영 부지사가 참석했다. 이 판은 부지사를 띄어주기 위함인가. 그는 여성과 평화에 대한 언급에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를 도운 일화를 감동적으로 전달했다. 일본군 위안부뿐 아니라 기지촌 여성들도 전쟁의 피해자인데 이들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는 채 말이다.      

부지사가 대담자들과 서로의 저서를 교환하는 행사도 형식적이었다.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와 J.M.G. 르 클레지오 가 한국어로 된 부지사의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대담에서 질문과 대답은 겉돌았고 예정했던 2시간을 채우지도 못한 채 끝냈다. 거장들을 초대해놓고 이렇게밖에 못하다니, 한심했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은 내가 구한다', '힘쎈여자'의 재등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