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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Nov 15. 2023

내 노동을 정상이다 아니다 재단하는 권력을 허하지 말라

<일할 자격> (희정, 2023, 갈라파고스) 서평 에세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참 열심히 살아내고 있어 종종 응원을 보내는 친구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1년간 분투하느라 시간을 내기 어렵다 오늘에야 만났다. 일하랴, 공부하랴, 실습하랴, 가족 돌보랴, 몸이 여러 개였으면 싶었을 테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이제 늙어서까지 맘 편히 일할 ‘자격’을 얻어선지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재취업하기 전 딱 한 달만 쉬고 싶어 휴직 중이란다. 일 안 하니까 너무 좋다고 웃었다. 정말 수고 많았다고 도닥여 주었다.      


친구는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기 전 서너 달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이 일이 어디 보통 일인가. 고강도 저임금 노동으로 악명 높은 일을 하다 어깨 통증이 와 견딜 수 없어 그만두었다. 그러다 요양보호사보다는 간호조무사가 조금 수월할듯해 아등바등 자격증을 땄다. 


저만 딴 게 아니라 동생과 지인에게도 권했다고 한다. “나이 많은 여자가 어디 가서 일을 하냐.” 고되지만 이 일을 선택한 이유다. 나이 많은 여자가 일할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저임금 돌봄 노동 시장 말고 달리 없었던 때문이다.      



‘값싼 노동“으로 평가된다고 친구의 노력과 희망과 삶의 의지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쩌면 저리도 저임금 노동은 철저히 젠더화되어 있나’ 씁쓸한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타인을 돌본다는 것, 그것도 마음을 다해 돌본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기꺼이 개입하려는 사랑과 연민이 동인이다. 웅숭깊은 마음이다. 이런 노동에 고작 최저임금 시급을 쳐 아득바득 부려먹는 사회의 평가는, 나이 많은 여자의 노동이니 하찮다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절하한다.      


“‘일하는 사람’에게도 세상이 정해둔 답이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그 답을 할 수 없는 이들을 만났다. 열정적이고 자기관리에 능통한 청춘이 될 수 없는 사람들, 정숙한 현모가 될 수 없는 여성들,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갖출 수 없는 사람들, 더는 젊음을 흉내 낼 수 없는 이들. 이들은 이 사회가 권장하는 ‘노동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되거나 치부된다.” (P279)   

  

노동(자)에 관해 꾸준히 써 오고 있는 희정의 책 <일할 자격>을 읽었다. 때마침 만난 친구의 노동자성과 포개졌다. 이어 분명 일하고 있는데 노동이 되지 않거나 부정당하는 여러 얼굴들이 겹겹이 떠올랐다. 사회가 재우치는 “정해둔 답”을 할 수 없는 얼굴들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 청년 A를 알고 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아가려는데 막막했다. 먼저 편의점, 마트, 소매점 등 ‘알바’ 자리에 수십 번 도전했다. 지원한 곳들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기에 갔는데, 너무 작은 체구가 성인답지 않게 여겨졌는지, 꾸밈 자체를 모르는 외모가 마땅치 않았는지, 어디서도 채용되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고 막막했다.      


그냥 지낼 수 없어 모두를 받고 모두를 그만두게 만드는 콜센터에 취업했다. 영화 <다음 소희>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나는 콜센터의 악랄함을 알고 있었기에 시름이 깊었다. 게다, 콜센터 어디나 비슷하지만, 그중 악명 높은 곳이어서 걱정이 컸다. 한 달을 견뎠나. 퇴사도 쉽지 않았다. ‘대타’가 오기 전까지 그만둘 수 없다는 명을 들었다. 견뎠다.      



그러다 공사 현장의 신호수로 가게 되었다. 다소 거친 ‘아재들’의 일터였지만 마음은 편했다. 임금은 ‘아재들’에 비해 낮았지만 지금껏 받은 임금 중 가장 많았다. 일도 많은 시간 서있어야 했지만 고강도 노동은 아니었다. 점심도 주었고 간식도 제공되었다. 콜센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현장의 남성 중심성 때문에 여성 화장실이 아예 없었다. 수분 섭취를 최대한 절제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A는 욕을 자주 섞어 썼다. ‘아재들’의 언어였다. A는 거칠어진 자신의 언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듯했다. 분명 살은 올랐는데 낯빛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일이 힘들지는 않은데 넉 달간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했다고 했다. 너무 놀라 그만두라고 말해버렸다. 그러다 죽는다고. 어떻게 넉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냐고.     


현장에서 돈을 모아 독립자금을 마련하려는 꿈에 부풀었던 A는 결국 그만두었다. 몸에 이상 신호가 왔을 것이다. 다시 혼란과 좌절이 찾아왔다. 고졸에, 사회성이 부족하고, 작은 체구에 그다지 예쁘지 않은, 아직 어리다고 여겨지는 ‘여자애’가 일할 곳은 없었다. 다시 콜센터에 취업했다. 퇴사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또다시 콜센터를 그만둔 A는 방향을 틀었다. 학점은행제를 활용해 대학에 가겠다고 했다. 뜻밖이었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안심한 내 마음은, <일할 자격>에서 청년들이 사회에서 받은 ‘이제 좀 제대로 살아보려나 보네’라는 질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학에 가고 학위를 얻고 다시 자기 계발을 극대화한 취업 준비에 임하는 것이 이 사회의 정상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번듯한 취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어도 사회는 그러라고 재우친다.     

 


A가 진학하겠다는 학과는 졸업 뒤 전망이 밝지 않다. 하지만 A의 부모는 그의 진학을 환영했다. 대학은 사회가 인정하는 노동자성을 얻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번듯하지 못한 직장이나 ‘알바’를 전전하는 것은 “성실한 젊음”의 표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일이나 자신의 인생에 늘 진지했고 열심이었지만, A의 노동은 성실해 보이지 않았다. “성실은 시민권의 발급 조건”이다. 22세 A는 지금껏 시민이 아니었던 셈이다.      


<일할 자격>에는 A처럼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열심히 살고 있어도 “생산적으로 살아라”는 충고를 들어야 하는 젊은 여자들, 싱글 맘으로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노동하며 살아도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비정상적 노동자로 여겨져 결혼을 강요당하는 여자들, 정신질환을 앓지만 밝히지 못한 채 약으로 버텨가며 일하는 여자들, 내 친구처럼 늙은 사람을 돌보는 늙은 여자들, 뚱뚱해서 게으르거나 멍청하다고 여겨질까 봐 자신의 몸을 자책하며 일하는 여자들, ‘꿀 빤다’고 여겨지지만, 군인도 노동자도 아닌 경계에 서있는 사회복무요원들. 모두 일할 ‘자격’이라는 노동의 환상과 분투하고 있었다.      


“노동자란 단어에는 꽤 많은 괄호가 숨겨져 있었다. (성실한) (효율적인) (민첩한) (건강한) (규율적인) (규율을 따르는) (젊은) 노동자. 이것을 우리는 흔히 자질이라 불렀다. 노동자가 될 자질. ... ‘능력’과 혼용해 쓰여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노동자의 자질’(노동자 정체성)은 인위적으로 훈련∙개발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노력을 멈출 경우(이때의 노력은 개인의 노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적절한 노동자상을 만들겠다는 사회적 비용과 노력까지 포함한다) 언제든 탈각될 수 있는 성질이었다. ‘노동자의 자질을 갖춘’ 인위적인 몸으로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 노력에 숨이 가쁘다.”(P279, 280)     


숨 가쁘게 일할 ‘자격’을 추궁당하는 얼굴 중에 성산업 종사자들도 있다. 이들의 일이 노동자 담론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까닭은 이들의 노동자성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자성을 획득하지 못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언제 적 얘기인가. ‘긱 이코노미’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노동자성을 돌아보라. 이들도 약탈적 거대 자본에 포획되어 노동자로 불리지 못한 채 자기 착취 노동으로 변질 정착해 존재한다. 사정이 이러한대도 성매매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은 한국 사회 어느 곳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은 채, 옛 자본주의 노동자성과 비교되며 노동자가 아니라고 우겨진다. ‘쉽게’ 돈 벌려는 불성실하고 비정상적인 ‘자격’ 미달의 사람들로 말이다. ‘자격’을 정할 권한을 누가 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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