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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Nov 18. 2023

"펜스는 저희의 목숨줄입니다"

용주골 집결지 둘러싼 펜스 철거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보고


어제(11월 17일) 오전 11시 파주읍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추최로 기자회견이 있었다.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를 둘러싼 펜스 철거 반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파주시는 왜 느닷없이 펜스를 철거하겠다고 나선 것이고 이들은 왜 펜스 철거를 반대하는 것일까? 


     

집결지는 연풍리 갈곡천 너머에 위치하고 있다. 갈곡천을 건너기 위해 연풍교를 지나다 보면 집결지가 모여있는 오른쪽 구역에 펜스가 둘러쳐져 있는 게 보인다. 이 펜스는 20년 전 파주시가 갈곡천 범람으로 생기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홍수 피해가 사라졌다는 걸까? 기후 위기로 홍수 피해가 점점 심각해지는 지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파주시는 올 초부터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연내 폐쇄를 강경하게 밀어붙이며 집결지 종사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집결지 내 골목골목을 누비며 걷는 여행길(여성이 행복한 길) 걷기와 목요일 밤마다 공무원을 동원해 집결지를 감시하는 올빼미 활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집결지 골목을 소란 떨며 지날 때 종사자들은 그들의 눈을 피해 숨는다. 올빼미 감시가 벌어질 때면 혹시 덜미나 잡히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쿵쾅댄다. 이것만으로도 이들의 삶은 무참히 침해당하지만 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난 10월 집결지 내 건물 일부를 강제 철거하려다 법원으로부터 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시가  이번엔 집결지 내 다른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압박하더니 마침내 집결지를 둘러싸고 있는 펜스를 철거하겠다고 나섰다. 집결지를 둘러싸고 있는 펜스를 걷어내면 유리방이 그대로 노출된다. 갈곡천 건너편에서 집결지 전체가 조망되는 것은 물론이고, 펜스가 쳐져 있는 측면에 있는 유리방은 그야말로 그대로 전시되는 셈이다.   

   

오늘 기자회견에 나선 집결지 종사자들의 발언을 통해 펜스 철거 압박으로 인해 이들이 어떤 압박과 두려움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었다.        


“펜스가 없으면 용주골 반대편에서 종사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카메라들은 성능이 좋아서 멀리서도 줌을 땡기면 종사자들을 촬영할 수도 있고 감시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어디서 나를 촬영했는지도 모르게 저희 일상이 노출되는 겁니다. 이게 CCTV설치와 다른 게 뭔가요? 유튜버나 성범죄자들이 불법  촬영하라고 판을 깔아주는 건가요? 이건 명백한 인권침해입니다. ... 

당신들 필요할 때는 당신들이 스스로 용주골도 만들고 펜스도 만들고 그랬으면서, 왜  이제 와서 불법을 논하면서 철거한다 하고, 우리 보고 나가라 합니까? 성매매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쭉 불법이었는데, 단 한순간도 불법이 아닌 적 없었는데, 나라에서 나서서 성매매 많이 하라고 이 동네 만든 거 아닙니까? 여기 성매매 하는 거 다 알면서 이 동네 유지하고 관리해오지 않았습니까? 파주시에서 펜스 친 것도 성매매 유지 관리하려고 한 거잖아요. 왜 당신들은 불법을 저질렀어도 정당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우리더러 불법이라고 하는 겁니까?” (집결지 종사자 맹희씨 발언 중에서)     


맹희 씨 발언 모두에 공감한다. SNS 등에 사진 찍어 올려 전시하기가 전 국민의 라이프스타일이 된 지금,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는 종사자들의 입장을 일고도 하지 않는 파주시 ‘막가파 행정’에 분노가 치민다.      


용주골 집결지의 역사는 자그마치 70년이다. 기지촌이 들어서던 순간부터 국가가 포주가 되어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에게 달러를 벌어들이라고 재촉하지 않았던가. 미군의 성병을 통제하기 위해 기지촌 여성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강제 성 검진을 받게 하고, 검사에 떨어지면 마치 범죄자를 끌고 가듯 낙검자 수용소에 가두고 사망 등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는 페니실린을 강제 투약시키지 않았던가. 이는 윤락행위등방지법으로 엄연히 성매매가 불법이었던 시대에 국가가 벌인 일이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국가의 기지촌 조성 관리 운영과 성매매 정당화와 조장 등의 불법 행위를 인정했다. 이 판결 이후 정부나 지방 정부의 어떤 정치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일언반구라도 있었나. 파주 시장도 마찬가지다. 용주골에 집결지가 아직도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염치없는 변명 대신, 대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과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에게 가한 심대한 인권침해부터 성찰하고 반성했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의 용주골은 당시 국가와 파주시의 기지촌 성매매 공조와 관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군이 떠나며 기지촌이 사라질 때 왜 용주골을 없애지 못했는가. 그리고 이제 와서 그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여성들만 ‘불법’이라 낙인찍고 추방하려는 것이 ‘여성 인권’을 보호한다는 행정인가.    

  

오늘 기자회견에 나선 또 다른 종사자 별이 씨의 발언을 들어 보자.    

  

“저 멀리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지켜본다는 게 무섭습니다. 너희들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라고, 노출되는 걸 무서워하는 건 떳떳하지 못해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 스스로 떳떳하다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면서까지 떳떳하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부모 형제가 있는 한 집안의 딸이 있습니다. 누나가, 동생이 있습니다. 가족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펜스 없이 노출된 곳에서 계속 일하다가 가족들이 알게 될까 봐 겁이 납니다. 틱톡이나 유튜브에 찍혀 올라갈까 봐 두렵습니다.”     


집결지 종사자 여성들을 이렇게까지 불안과 공포와 모멸감에 떨게 하는 것이 파주시가 그토록 외치는 ‘여성 친화 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것인가. 파주시가 말하는 ‘여성 친화 도시’에 정주가 허락된 여성은 누구인가.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조건(가정 폭력, 성폭력, 빈곤, 건강, 장애, 이주 등)을 행운과 우연과 특권으로 취득했지만, 자신의 노력과 성취라고만 여기는 정숙하고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여성들인가. 보호받고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은 누구이며, 이를 정할 권력은 누가 주는 것인가.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펜스 철거를 반대한다는 손 팻말을 들고 움츠리고 서 있는 여성들의 손이 차갑게 곱아 있었다.    

   


* 덧붙임 : 기자회견을 마치고 펜스 철거에 반대하는 용주골 주민이 70명의 탄원서를 들고 읍장 면담을 요청했다. 읍장이 자리에 없고 약속된 일정이 아니니 만나줄 수 없다는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의 저지로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고령의 노인들이 어려운 걸음을 해 읍장 면담을 요청하는데 이에 응하지 않는 것은 민주적 행정인가. 누가 누구를 ‘불법’이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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