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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y 01. 2024

차별 혐오 제거의 이데올로기를 숨긴 파주시 ‘클리어링'

용주골 현장에서

 


‘여성이 행복한 길’이라는 일명 ‘여행길’, 듣기엔 무척 여성 친화적이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파주시가 지난해부터 파주시 성매매 집결지인 용주골에 관변단체와 시민들을 투입해 집결지 내부를 순회하며 여성들을 감시하고 조롱하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귀하가 살고 있는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와 귀하의 거주지를 들여다보고 이도 모자라 ‘너의 삶은 불법이니 여기서 떠나라’고 압박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좀 너무하죠? 그런데 이런 인권 침해가 바로 ‘여성인권지킴이’라는 미명 아래 용주골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파주시는 지난 3월 내내 용주골 내 CCTV를 다네, 가림막을 철거하네, 단속을 하네... 갖은 방식으로 종사자들을 괴롭혀왔습니다. 지난 총선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얼마간 잠잠하더니 끝나자마자 밤이면 ‘올빼미’로 낮에는 ‘여행길’로 마을 주변을 순찰하거나 마을에 진입해 종사자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안 나갈래?’ 이러는 거죠.        


‘여행길’을 좀 더 대대적으로 벌일 작정으로 파주시는 지난 4월 24일 성매매 시민활동단 ‘클리어링’을 발족시켰습니다. 오늘(4월 30일) ‘여행길’에 동원된 사람들이 이들이겠죠. ‘클리어링’이라는 단체는 단체 이름에서부터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무엇을 정화하겠다는 것이고, 누가 저들에게 그럴 권한을 주었다는 걸까요?    

 

이 단체명에는 우리는 깨끗하고 너희는 오염되었다, 우리는 합법이고 너희는 불온하다를 전제하고, 자신들을 청소부와 동일화해 청소부로서 이들을 일소 혹은 박멸하겠다는 폭력적 의도를 깔고 있습니다. 우리와 타자를 이분화하고, 인종, 장애, 젠더의 차이를 우생학에 기준해 열등한 쪽을 비인간화한 후 쓸어없애버리기를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무도한 만행을 저지를 당시 저들은 자신이 떳떳하다고 믿었습니다. 우매하고 야만스런 역사는 왜 반복되며 약자를 가해하도록 두는 걸까요?      



이름도 무시무시한 ‘클리어링’ 단원들은 오늘 오전 11시경 ‘성구매는 범죄’라고 새겨진 보라색 조끼와 ‘여성인권지킴이’라는 노란색 조끼를 나눠 입고 마치 점령군처럼 용주골에 들어섰습니다. 이곳을 마음대로 헤집고 마음대로 흘깃대며 너희들은 불법적 존재라고 윽박지를 권한이라도 있는 듯, 마을에 진입하려 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으르렁댈 수 있는 뒷배는 역시 파주시와 김경일 시장이겠죠. ‘클리어링’ 발대식의 주빈인 김경일 시장은 태반이 사실이 아닌 억지 주장으로 종사자들과 용주골의 실상을 모함하고 모욕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세간에서 회자되는 여러 억측과 오해를 바로잡”겠다고 운을 뗐는데요, 모두 발언부터 거짓입니다.    

  

세간에 회자되는 억측과 오해는 시와 시장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막강한 공권력의 영향력을 발휘해 유포하는 온갖 주장, 용주골엔 파주 시민이 없다, 종사자들은 인신매매된 노예다 등등은, 사실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주민등록이 확인되어 투표권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한 숱한 용주골 사람들은 유령이라는 말입니까?      


종사자들이 인신매매된 노예라는 억지 또한 한 집안의 가장으로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나선 당사자의 주체성을 폄훼하는 망언입니다. 그들이 여기에 이를 때까지 사회는 이들이 도와달라는 요청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응답한 적이 있었나요?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동거남에게 매 맞아 맨발로 도망쳐 나왔을 때, 이혼 후 위자료나 양육비는커녕 어린아이들을 도맡고 맨몸으로 거리에 던져졌을 때, 아픈 몸으로 노동할 수 없게 되자 가차 없이 해고당해 호구지책이 막막했을 때,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게 누가 개인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적실한 지원을 해주었습니까? 김경일 시장은 역겨운 거짓말 대신 취약한 여성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사회 보호 시스템의 무능부터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요?     



점입가경은 ‘클리어링’ 발대식에서 김경일 시장이 경찰의 단속 강화를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매매 비범죄화’라는 국내적, 전 지구적 어젠다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성매매 비범죄화’는 기본적으로 성매매가 불법이어도 성매매로 생계를 이을 수밖에 없는 여성 개인의 삶을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취약계층 여성 인권 보호에 기반합니다.      


한국 ‘성매매 비범죄화’ 여성 단체 텐트에서 미는 ‘노르딕 모델’도 성구매자와 알선한 자는 처벌해도 성매매 당사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에 기반합니다. 그런데 성매매 여성 구제 운운하는 김경일 시장은 경찰에게 단속을 강화해 여성들을 압박하고 체포하라고 일성을 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뒤가 안맞아도 너무 안 맞는 자가당착 아닌가요?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더 있습니다. ‘성매매 비범죄화’를 촉구하는 여성인권단체 진영의 무관심입니다. 한국 사회에 ‘노르딕 모델’ 적용을 주장하는 이들은 얼마 전 용주골 한 여성 종사자가 경찰의 함정 수사에 걸려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정에 서기까지 어떤 도움이나 연대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무관심과 무응답은 ‘성매매 비범죄화’ 어젠다에 집결지 여성들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요? 말로는 성매매 여성들이 당하는 불법성을 비판하면서 속내는 성매매 종사자들에 대한 냉담자였던 걸까요?     

 

조금 더 짚어보겠습니다. 이들의 주장처럼 성구매자만 처벌하면 성매매가 정말 사라질까요? 그렇다면 ‘노르딕 모델’을 채택한 나라에서 성매매가 사라졌어야 했겠지요. 그런 보고는 없습니다. 이러한 대책은 여성들이 성매매에 나서는 것이 언제나 경제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근본적으로 취약 계층 여성들의 빈곤을 없애기 위한 집약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나 여성의 몸을 매개 이용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어마어마한 성 산업 구조를 타파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문제만 제거하면 된다는 편의주의적 행정으로는 가난한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로 나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용주골의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집결지가 꼴 보기 싫다고 밀어버리면 집결지는 없어지겠죠. 하지만 성매매로 생계를 잇던 이곳의 종사자들을 탈성매매시킬 수 있을까요? 경제 자본이 부재한 대부분의 종사자들은 더 열악한 조건과 환경인 다른 곳으로 옮겨 갈 뿐입니다. 그런데도 눈엣가시인 집결지를 ‘클리어링’했으니 그 순간부터 발 뻗고 잘 수 있습니까? ‘클리어링’은 ‘님비’의 색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으며, 성매매의 가부장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 여성을 혐오하는 ‘미소지니’의 은폐일 뿐입니다.      



성매매를 부정하는 것과 성매매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사정을 동일한 잣대로 재단해 불법이라고 단죄하는 것은 균형감을 상실한 판단입니다. 오늘 용주골에 파주 ‘여성친화도시’를 위해 ‘여성인권지킴이’로 나서 용주골을 ‘클리어링’하겠다고 들어선 파주시민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시민들의 아우성을 무시하고 점령군처럼 마을에 진입했을 테죠.      


저와 시민연대자들은 외쳤습니다. “선생님이 하는 ‘여행길’이 정말 이곳의 여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선생님이 말하는 여성 인권에 이곳의 여성이 있습니까. 선생님이라면 이주 대책도 없이 나가란다고 나가겠습니까? 당사자 의견 한 마디 듣지 않고 만들어진 성매매 피해자 지원 조례를 어이구 고맙습니다 하고 받겠습니까? 지금껏 유지해온 선생님의 노동을 시민도 인간도 아닌 그저 불법이라고 내뱉는 공권력에 굴복겠습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파주시의 폭압 행정에 맞서주십시오. 그리고 이곳의 여성들과 대화에 나서달라고 요청해 주십시오.”      


목이 찢어져라 외치는 시민연대자들의 외침은 허공으로 휘발되었습니다. ‘클리어링’ 인원보다 더 많은 더 강력한 대항 시민들의 외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낮게 한탄했습니다. 성노예, 감금, 착취라는 언설에 인지 포획되어 한 사람의 삶을 무도하게 ‘클리어링’ 하겠다는 일군의 파주 시민만이 파주나 한국 사회의 시민은 아닐 것입니다. 용주골에 더 정의롭고 평등하고 성숙한 대항 시민 담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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