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성별> (셀린 베시에르 · 시빌 골라크, 2024, 아르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방대한 통계로 부익부 빈익빈의 자산 불평등을 증명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고개를 끄덕이다 잠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성별 불평등은?
<21세기 자본론>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 이 책이 자산 불평등을 키우는 원인으로 주목하지 않은 성별 불평등을 톺아낸 책이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셀린 베시에르와 시빌 골라크 공저인 <자본의 성별>이다. 저자들은 21세기 경제 자본의 대물림 현상과 점점 연관이 깊어지는 가족 재생산에 집중해 가족관계와 그 안의 성별 불평등이 자본의 성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결국 여성의 빈곤을 고착화시키는 구조를 밝혀냈다.
가족, 여성에게 불리한 경제적 제도
자본주의 경제는 가족에 의해 떠받쳐지지만 쉽게 간과된다. 가족은 일상 속에서 자본을 생산 유통하고 결혼, 출산, 부동산, 상속, 교육, 학업 등의 재생산 전략으로 부를 증대한다. 가족이라는 단위 안의 성별화된 개인은 공평한 자산을 누리는 듯 보이지만, 일상이 붕괴되는 지점(상속이나 이혼)에서 여성의 성별 취약성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1960년대 이후 여성은 평등하게 교육받고 법적으로도 안정된 지위를 부여받은 듯하다. 여성의 학력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고 사회 진출도 늘어난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여성의 교육이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직업군으로 지속적으로 유도되고 있으며, ‘유리천장’과 ‘성별 임금 불평등’은 개선되고 있지 않다.
이슬기·서현주 공저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대입 고득점 여학생들이 부모나 사회로부터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는 이유로 남학생에게는 권유되지 않는 교대 진학을 강요받는 현상을 다룬다. ‘여자에게 최고’라는 전제는 사실상 이성애 가족을 유지하기에 적합한 조건(이른 퇴근, 휴가처럼 쓸 수 있는 방학, 비교적 자유로운 육아 휴직 등)에 부합하지만, 마치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에게 최고라는 말로 둔갑하여 성불평등과 이성애 가족 정상성을 은폐한다. 또한 여성에게 가족 환경은 어린 나이부터 금전적 보상보다는 가족과 사회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헌신과 이타심을 내면화시키는 시스템을 작동시키며 여성의 자산 축적의 기회를 앗아가고 있다.
여성에게 불리하게 고안된 자본의 성별 불평등은 철저히 비가시화되어 있다가 상속(증여)이나 이혼으로 가족이 분리될 때 적나라하게 본체를 드러낸다. 저자들이 프랑스의 자영업자가 가업을 승계시키는 경우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아들에게 유리하게 상속(증여)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생애 주기 동안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아버지의 영업권도 계승했다.
반면 딸들은 불평등한 상속에도 이를 불평하지 않는 것이 사회화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자산 조정’이라 불리는 변호사나 공증인의 전략에 속아 불공정한 자산 분배를 받았다. ‘자산 조정’은 역회계라 불리는 일종의 회계 조작으로 “공증된 증서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더라도, 그 등가성은 공증인들이 수행한 회계 게임의 결과”로 철저히 아들(남성)의 이익에 복무한다.
상속 시 눈에 띄는 성별 불평등은 남편과 사별한 생존 배우자의 증여 제한에서 드러난다. 이는 사별한 여성이 상속의 일부 혹은 전부를 포기하는 제도로, 사별한 여성이 살아가는데 제한된 상속만으로도 충분할 뿐 아니라, 이들이 자산 관리에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하다는 편견을 제도화해 사는 동안 남편의 자산증식에 기여한 바를 깡그리 무시한 결과다.
성별 불평등이 더욱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는 이혼할 때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동안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양육하기에 적합한 파트타임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2011 프랑스 통계는 이성애 가정의 아내 소득은 남편의 42% 이하이며 보유재산도 훨씬 적었다. 이는 이혼 당시 아내들이 축적된 자산의 불충분으로 고전할 뿐 아니라, 이혼 후에도 경력의 부재로 저임금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해 빈곤의 악순환에 놓이게 만든다.
자녀 부양을 전제한 이혼보상금의 경우도 남편의 자산 구조 자체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어 10만 유로를 초과하는 경우는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인색하다. 이혼보상금은 대개 지방법원의 판사가 합의서를 승인해 주는 형식으로 이는 불평등한 보상금을 위한 법적 개입은 매우 드물다는 것을 말한다.
이혼 시 가장 취약한 상황은 저소득 계층 여성들에게 일어난다. 2011 프랑스 통계상 아내와 남편의 소득차가 가장 큰 계층이 저소득 계층이라는 사실은 이혼 후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하는 이들이 저소득 계층 여성임을 의미한다. 양육비는 결혼 기간 동안 아내의 경제 활동, 보육 비용, 자기희생적인 양육을 전혀 보상하지 않은 채 남편의 지불 능력만 고려해 설계된다.
가정법원은 이혼 후 아내와 자녀의 생활이 위기에 처해도 서민계층 남편의 재정적 자급자족과 잠재적 새 가족 내 노동자 및 생계부양자 지위를 보전해 주는 것을 더 중시한다. 양육비 미지급에 대비한 가족수당기금은 복잡한 절차와 다른 남성과 동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할 때만 지급되도록 설계되어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중 단지 10%만이 수령할 정도로 불합리하다. 가족수당을 받기 위해 법정에 제출해야 하는 모든 증명(재정 보고, 결혼 여부 통보 등)이 전처의 몫인 현실은 가족이 이혼 후에도 자녀 양육이라는 가족 재생산이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매우 불합리한 제도임을 드러낸다.
한국 사회의 현실도 이에 못지 않다. ‘배드파더즈’ 사건이 보여주는 양육비 미지급 실태는 한국 사회의 가족제도가 여성에게 얼마나 불리한지와 기울어진 지형에서 여성이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어째서 불가능한지 그리고 이로 인해 여성 빈곤이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경로를 보여준다.
때마침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유류분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은 가족과 이른바 패륜 자식이나 패륜 부모의 상속이 부정의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진일보한 결정이긴 하나 미진하다. 그간 법 개정으로 이혼 시 여성 배우자가 재산분할을 통해 부부 공동 재산의 절반가량을 인정받았으나, 고가의 부동산, 주식 배당 등의 자산은 공동 재산으로 인정되지 않고, 여성 배우자의 가정 경제 기여도 산정도 매우 인색하다.
이렇듯 한국의 자본 성차별은, <자본의 성별>의 부정의한 사례를 초과한다. 저자들이 책에서 조목조목 지적한 성별 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진일보한 법 개정을 한참 뛰어넘어 시행되고 있는 프랑스의 가정법 재산법의 부정의를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여성이 더 큰 자산의 성별 불평등에 놓여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성들의 무임금 돌봄 노동이 가족 자산 형성에 기여한 바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 점, 가사와 육아 부담으로 기혼 여성이 더 나은 수입을 포기하고 집 근처 직장을 택한다는 한국노동연구원의 발표가 함의하는 일 가정 양립의 부정의, 남성 임금의 70%밖에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시장 개선, 여성에게 매우 불리한 가족법 시스템 등 모두는 여성의 자산 형성을 불리하게 만들고 여성의 빈곤을 고착화시킨다. 이를 알아버린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파업에 나서고 있는데, 정치와 행정은 하나 마나 한 저출생 대책을 내놓고 있다.
끝으로 저자들의 일침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가족의 부가 개인의 지위를 점점 더 결정짓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계급 불평등의 해결 없이는 여남 간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으며, 성별 질서를 뒤집지 않고서는 계급사회를 폐지할 수 없다.”
진리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성들이 돈에 더 관심을 갖자고 말하고 싶다. 경제 방송이든 유튜브 채널이든, 돈에 관계된 콘텐츠에 여성이 희소하다는 것은 여성이 돈과 멀리 있다는 반증이다. 남성의 자산 보호가 기본값인 체계에서 여성이 자신의 자산을 조금이나마 지키려면 영악해져야 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