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골 대집행(11월 25일-11월 28일) 투쟁 기록
초조하고 불안한 날들이 나흘간 이어졌다. 파주시청이 11월 25일에서 11월 28일까지 4일간 용주골 대집행을 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되는 때에 들이닥쳐 집을 부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라는 것인가. 타 지자체는 동절기 대집행을 막는 조례를 제정했다는데, 파주시의회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
철거(대집행) 첫날부터 투쟁 기록을 남겨야지 작정했지만 불가능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대치로 몸이 말도 안 되게 피곤해 겨우 집에 돌아와서는 뻗어버렸기 때문이다. 해서 이 기록은 후일담이 되고 말았다.
첫째 날, 11월 25일 월요일; 고공농성
용주골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의 연대 요청으로 대부분 여성인 시민들이 40여 명 모였다. 용주골에 오는 젊은 연대 시민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학생이거나 취준생이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이 부족한 시간을 쪼개 어떻게든 힘을 보태려고 오기 때문이다.
밤늦게 도착해 쪽잠을 자기도 하고, 새벽 총알택시를 합승해 오기도 하고,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대에 단 한두 시간이라도 힘을 보태려고 온다. 짧게는 두어 시간 길게는 서너 시간 걸려서 말이다. 어떤 청년 네댓 명은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다시 용주골로 긴 시간을 들여온다. 고마운 마음들이다. ‘탈정지화된 청년’이라는 레토릭은 얼마나 허무한 언설인가.
이번 철거는 사람이 살고 있는 A와 B집 두 건물에 집중되어 있어 이 집들을 지키는 게 목표다. 연대 시민들이 두 집에 나누어 배치되었다. 나는 A집 옥상에 올라가 있었는데, 포크레인이 지붕을 덮칠까 조마조마했다. 단층 건물의 옥상이래봐야 얼마나 높겠는가마는, 나는 잠깐 고공농성 여성 운동가의 계보를 잇는 기분이 들었다. 기왕 오른 바에야, “끝까지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근로 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뿐”이라며 을밀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던 최초의 고공농성자 강주룡의 비장한 마음에 닿는 감각이랄까.
단상의 즐거움은 8시 반경, 용주골 점령군이라도 되는 양 밀고 들어오는 검은 옷의 용역들과 형광 연두색 상의를 입고 들이닥치는 경찰 무리들로 흥이 깨졌다. 파주시라고 적힌 파란 조끼를 입은 파주시청 담당자들도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공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당당하게 들어선 이들의 속마음은 어떨지 정말 궁금했다. 이 보잘것없는 집을 지키자고 유리문에 탁 달라붙어 있는 집결지 종사자들의 불안한 눈과, 이해관계자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여성 노인인 대여섯 명이 이웃의 집을 지키겠다고 유리문 밖에 옹크리고 서 있는 몸을 보는 일은 어떠한 불편함도 주지 못하는 건가.
그저 자신들의 일을 한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하게 될까. 자신들이 받는 밥그릇에 용주골 시민들이 보탠 혈세도 있다는 생각을 할까. 과거 기지촌의 유산으로 70년이나 유지되어 온 용주골의 역사에 일고의 성찰도 없이 ‘닥치고 폐쇄’를 선포한 김경일 시장의 광기에 심기 행정이나 일삼고 있는 공무원 집단을 보는 일은 무참하다.
파주시의 압박과 회유에 자진 철거를 하는 건물도 꽤 있어서 장비를 든 철거 인부들과 일단의 용역들이 시시때때로 움직였고 작은 포클레인도 오갔다. 점심 무렵 잠시 소란이 일었다. 용주골 개천가 쪽 펜스가 뜯겨나간 후 임시방편으로 쳐 놓았던 가림막을 파주시가 잠깐 사이에 철거해버렸다. 철거 예고된 집들을 지키느라 허술해진 틈을 타 벌인 짓이었다.
오후부터 A집의 옆집 철거가 시작됐다. 지키고 있는 집의 옆집이 부수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착잡했다. 철거 장면을 촬영하는 용역과 시청 공무원들이 연대 시민들을 개인 휴대폰으로 불법 채증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 신상을 털어 공무집행 방해죄를 씌우려는 건지, 재미 삼아 찍어 놓고 자기들끼리 돌려보려는 건지 알 수 없다. 채증 고지도 없이 불법 촬영을 저지르면서 누구보고 불법 운운하는지.
한 연대 시민이 철거 현장의 위법함을 지적하느라 용역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젊은 용역이 밀치며 ‘병신’이라고 막말을 했다. 자기 엄마 벌인 여성에게 욕설을 하다니, 참담했다. 유리문이 뜯기고 차양막이 떨어지고 집이 하나하나 해체되었다. 4시경 인부들이 나가고 용역이 나가고 경찰이 떠났다. 첫날, 두 집을 지켰다.
둘째 날, 11월 26일 화요일; 대참사
아침에 용주골로 들어서는 데 경찰 버스가 보였다.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A집 임차인을 만났다. 그의 불안이 느껴졌다. 오늘은 연대 시민이 적어 어떻게 두 집을 지키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되는대로 인원을 나누어 지키기로 했다. 애초에 나는 B집에 있다 A집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 급히 뛰어갔다.
이미 인부와 용역과 그리고 시청 직원들이 A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용주골 주민 한 분이 자신의 차로 A집 앞을 막고 서있었다. 경찰과 시청 공무원이 빼라 하고 주민분은 못 뺀다 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어 파주시 철거 책임자가 A집 철거를 고지했다.
인부들이 연장을 들고 A집 측면으로 다가왔다. 어제 옆집이 철거되면서 A집 측면이 노출되었는데 그곳을 인부들이 기습했다. 그쪽은 거울이 달린 홑 문이라 부수면 거울 파편이 튀어 문을 막고 있는 종사자들이 다칠 수 있어 겁이 났다. 그때였다. “우리 집이야. 나가. 나 자결할거야”라고 외치며 A집 임차인이 웃옷을 탈의한 채 식칼을 들고 자해를 시도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집을 지키겠다고 옷을 벗어던지고 자해까지 시도하는 것을 보니 절망스러웠다.
경찰이 A집 임차인을 제압하기 시작했고 체증 카메라를 든 경찰이 가세했다 다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사건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A집 임차인의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자 A집을 밖에서 지키고 섰던 한 여성 노인이 쇼크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공포와 절망과 분노가 번졌다. A집 임차인은 이사 갈 집을 구하지 못했으니 보름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궁지로 몰아야 하나.
오전에 사건이 있고 모두 착잡했다. 경찰서에 연행된 A집 임차인도 걱정이고, 오늘 끝내 A집을 부술 건지 초조했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사람이 잡혀갔어도 싸울 사람은 힘을 내야 한다며 용주골 주민들이 점심밥을 내왔다. 눈물의 밥이었다. 점심 이후 다시 긴 대치가 이어졌다. 오늘 큰 사건이 있어서인지 철거를 더 밀어붙이지는 않고 평소보다 일찍 용역과 경찰 공무원들이 해산했다. 참혹한 하루였다.
셋째 날, 11월 27일 수요일; 폭설이 내렸어도 싸움은 계속된다
눈 예보가 있어서 잠을 설쳤다. 새벽 5시에 창을 열어보니 눈이 수북했다. 이 눈길에 서울서 택시 타고 오는 연대 시민들은 어쩌나 싶다가,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철거를 못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교차했다. 눈길이 걱정되어 평소보다 일찍 나섰는데 다행히 큰길은 거의 녹아 있었다. 이 와중에도 눈이 내린 풍경은 어찌 이리 아름다운가.
A집 임차인이 경찰서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자 종사자들이 더 심난했나 보다. 오늘부터 유리문 밖에서 탈의 투쟁을 해서라고 지키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무기는 몸 밖에 없다. 동료 주민들의 결기도 어제 사건으로 고조되어 있었다. 벼랑에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사람들을 밀어버리려 한다는 것을 알아챘으니 투사가 될 수밖에. 문득 조은 시인의 시 한 대목이 떠올랐다.
벼랑에서 만나자
부디 그곳에서 웃어주고 악수도 벼랑에서
목숨처럼 해다오
그러면 나는 노루피를 짜서
네 입에 부어줄까 한다 ....
8시 반경 여느 날처럼, 용역, 경찰, 소방관, 공무원 일단이 용주골로 쏟아져 들어 왔다. 경찰들이 왜 방패까지 쳐들고 나타나는지, 119 불자동차가 왜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설마 저 물 호수를 시민들에게 쏘려는 것은 아니겠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 지붕에 시민들이 올라가지 있어서인지 A집 앞에 작은 매트를 두었다. 이렇게 매트가 작아서야 사람이 뛰어내린다 해도 커버를 하겠나 싶었다.
어제 기습당한 A집 측면이 뚫리지 않기 위해 용주골 주민들이 승용차 4대로 A집을 둘러쌌다. 용주골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당사자도 연대자도 거의 다 여성이다. 그런데 용역도 경찰도 다 남자들만 가득했다. 이래도 되나, 화가 났다.
대치 중 파주시청 직원이 A집 지붕에 있는 시민들을 개인 폰으로 슬쩍 찍는 게 포착되었다. 연대 시민들이 강하게 항의해 20여 분 만에 삭제시켰다. 지붕에 올라있던 시민들이 항의 발언을 이어갔다. 70년 방치 묵인했던 용주골의 역사를 삭제하고 이제 와서 불법이라고 내쫓나, 그동안 국가가 포주이지 않았나, 폐쇄를 할 거면 장기 계획을 제시해라, 용주골만 없애면 여성친화도시가 저절로 되나 등등... 입만 아프지만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치가 길게 이어졌다. 간간이 눈이 흩뿌렸다 잦아졌다. 점심때가 되어 다시 따뜻한 밥이 나왔다. 동료가 경찰서에 홀로 고립되어 있어도 어떤 사람은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지어 먹였다.
오후 들어 용역들의 군기가 빠졌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노려보던 때와 달리 자기들끼리 킥킥대며 떠드는 모습을 보니, ‘공무 수행’이라는 시답잖은 조끼만 없애고 보면 영락없는 여느 청년이지 않은가. 이 청년들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하루 일당이 30만 원 가까울 정도로 쎄다는데 그래서인가. 용역에게 지불할 예산이면 용주골 종사자들 이주대책을 세워주고도 남겠다. 도대체 알 수 없는 불통 행정이다. 4시가 넘자 용역들이 빠져 나갔다. 셋째 날도 두 집을 지켰다.
넷째 날, 11월 28일 목요일; 이제 그만!
아침부터 A집 지붕에 올랐다. 오늘이 대집행 마지막 날인데 꼭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아 불안했다. 대집행을 연장한다는 말도 있어 한숨이 나왔다. 나흘째 바짝 긴장해 용주골을 드나들다 보니 힘에 부쳤다.
8시 반이 되자 여느 때처럼 용역이 들어왔다. 이어 경찰이 방패를 들고 나타났고 119가 들어왔다. 파란 조끼를 입은 파주시청 담당자들이 들어왔다. B집 철거를 먼저 하기 시작했다. B집 건물주와 임차인이 유리문만 떼 가는 걸로 협의를 했다는데, 작은 포클레인이 들어와 차양까지 거칠게 뜯어냈다. 약속과 다르다고 임차인이 항의했지만 철거는 속행되었다.
이제 A집만 남았다. 경찰서에 있는 A집 임차인이 집을 꼭 지켜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종사자들과 동료 주민들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어제보다 많은 용역이 차 주변을 둘러쌌다. 이들이 작정하면 차도 들어낼 것 같아 두려웠다.
포클레인이 나타나 집을 찍어대는 현장 사진을 보고 경악한 연대 시민들이 낮에 속속 도착했다. 조금이라고 힘을 보태려는 이들이 웅숭깊다. 용역도 청년이고 연대 시민들도 청년인데, 이 이격은 무엇인가.
철거 인부들과 파주시청 공무원들이 어떻게든 틈새를 찾으려고 계속 염탐을 하는 게 팍팍 티가 났다. 지붕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너무 추웠다. 동료 시민이 권해 부착용 핫팩을 양말에 붙였더니 발이 덜 시렵다. 발이 덜 시리니 몸통이 덜덜 떨려왔다. 옷도 잔뜩 껴입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제발 빨리 가다오, 용역아, 공무원아~~
어제 그제 항의하면 듣는 척이라도 하던 건축디자인과 책임자가 오늘은 태도가 돌변했다. 김경일 시장한테 된통 깨지고 왔나. 제3 자 하고는 얘기하지 않겠단다. 연대 시민이 이해관계자 아닌 제3 자인 거는 맞지만, 내가 사는 도시에서 이런 폭력이 난무하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공적 폭력이 저들에게 일어나는 걸 묵인한다면 다음번은 내 차례다. 각자도생? 부패한 권력이 바라는 대로 해줄 수는 없다.
4시가 되었다. 겨울 해가 지고 있었다. 보통 이맘때면 철수의 기미가 보이는데 감감했다. 뭐 끝까지 시간이라도 채우겠다는 심산인가. 지는 해가 서쪽 산에 걸리려는 찰나 드디어 철수가 시작되었다. 지붕에 있던 시민끼리 얼싸안고 환호했다. 너무 다행이었다. 떠나는 그들에게 외쳤다. “다음엔 오지 말아요. 다시 만나지 맙시다~” 내 바람과 외침과 달리 저들은 또 들이닥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A집을 지켰다. 또 오면 또 막아 싸울 수밖에. 파주 시민들의 연대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