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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Dec 06. 2024

계엄령이 떨어지자 여자를 강간하자는 댓글테러, 참담하다


잠자리 들기 전 딸애랑 노닥거리고 있는데 뉴욕 사는 선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계엄이 내려졌다는데 어떻냐고 묻고 있었는데 가짜 뉴스를 들었나 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사실이었다. 너무 놀랐다. 얼마나 사색이 되었던지 옆에 있던 딸애가 괜찮냐고 물어왔다. 나라가 통째로 흔들리는데 괜찮을 리가...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라며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딸애는 계엄이 어떤 가공할 폭력을 동반하는지 상상할 수 없어 태연해 보였다. 그럴 수 없는 나는 북한에서 발신하는 괴성을 들으며 공포감이 증폭되었다. 군의 이동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계엄령은 접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북의 위협감까지 가중되어 더 불안감을 갖게 했을 것이다.      


잠을 설치고 계엄령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리고선 무엇이 나를 그토록 불안하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 <서울의 봄>이 전두환의 쿠데타를 아무리 생생하게 재현했어도, 이는 이후 다가올 어마어마한 폭력의 프리퀄에 불과하다. 나는 그 이후 오직 권력에만 눈이 먼 정권이 어떤 폭력으로 국민을 압살했는지를 알고 있다. 나는 그 폭력을 보고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성장기 국가폭력에 대한 노출은 내 안에 어마어마한 공포를 심었고 자라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어제 잠복해있던 공포가 발현되며 그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보다 밀치고 보다 밀치며 오랜 거부와 수용의 지난한 심리적 협상을 거쳐 마침내 완독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안의 공포를 마주할 힘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내게 이토록 치열한 국가폭력에 대한 인식이 한국 사람에게 보편적 공포감으로 여일하게 작용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딸애가 계엄령과 관련한 포털이나 SNS 등에서 캡처한 일련의 댓글을 갈무리해 보여준 바로는 매우 엄중한 국가 위기 상황을 도착적으로 즐기고 있는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계엄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댓글들의 조롱과 경멸과 혐오를 읽고 있자니 너무 참혹해져 차마 다 읽을 수가 없었다. 계엄이 아니라 아예 전쟁이 나서 페미 X들 다 죽여야 한다는 저주에서, 계엄에서 전쟁으로 이어지면 이 틈을 타 맘에 안 드는 페미 X들을 몽땅 강간하겠다는 위협까지(구체적으로 자신의 동네 어디 어디 살고 있는 00를 강간하겠다고 선언한 잠재적 강간 가해자도 있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여성의 성기를 빗대는 비속어를 남발하며 여자들을 향한 혐오를 마치 기관총 쏘아대듯 무차별적으로 난사하고 있었다.   

   


국민의 기본권이 유린당할 국가 위기 상황에 어떻게 저런 사악한 생각을 혼잣말도 아니고 공공연하게 표출할 수 있는 걸까. 전시 성폭력 연구는 성폭력이 전쟁 시에만 돌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평시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것과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 남성들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글로벌 첫째 가는 디지털 성폭력은 이미 공인되었고, 이제 초등 남자아이부터 AI 기술을 습득해 딥페이크를 즐기며 마치 인터넷 쇼핑하듯 놀이 삼고 있으며, 친밀한 폭력을 넘어 불특정 여성을 하루가 멀다 하고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모든 성폭력 상황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누구도 안전하게 살 수 없다고 말해준다.      


한국 사회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호의적이다. 호의적이라 함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삶과 그들의 피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일본에 의해 끌려간 순진무구한 소녀들이 당한 폭력에 분개하며 일본을 비난해왔을 뿐이다. 우리 여자들이 일본 놈에 짓밟혔다는 남성적 수치심이 비틀려 드러나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 당장 피해자의 이름을 댈 수 있고, 그가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알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가 단 한 사람이라고 있다면 말해보라. 일본 놈이 저지른 전시 성폭력에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위기의 틈을 타 여자를 능욕하고 강간하고 죽여도 된다고 떠벌리는 한국 남자의 인식 수준은 전시 성폭력과 무관한가, ‘일본군 위안부’를 가해한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 남자와 다른가.      


4.3이나 5.18 전시 성폭력이 타국이 아닌 한국 남자에 의해 벌어진 참극이고, 그 피해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는가를 단 한 번이라도 성찰해보았다면, 계엄령이 떨어지자마자 저런 무도한 강간 위협 댓글 테러를 벌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참담하고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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