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에게 조용히 살라는 말에 대하여

by 그냥


오랜만에 친구들과 회포를 풀었다. 격조했던 것은, 한 친구가 아주 멀리 사는 탓이 크지만, 이런저런 가족사를 돌보느라 여간해선 짬을 내기 어려웠던 사정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년을 맞은 친구들.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잠깐 멍해 있다, 이제 시간도 있으니 어서 만나자며 늦은 겨울에 뭉쳤다.


관계의 역사가 30년이 넘다 보니, 서로의 가족사를 꽤고 있다. 이런 사이는 가족 관계의 길항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어 좋다. 끝난 갈등도 있고 아직 진행 중인 갈등 혹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문제도 있지만, 어쨌거나 순정한 이해와 공감이 오가기에 마음이 순화된다. 이것이 오래된 신뢰 관계의 장점일 터다.


대화는 아이들로도 갔다, 부부 관계로도 갔다 하며 이런저런 화제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던 게 어쩌다 얘기가 동성애로 넘어간 건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렇게 됐다. 친구 A가 매우 익숙한 동성애 레토릭을 구사했다. 동성애, 그거는 타고나는 거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거 인정, 그런데 너무 그렇게 사회적으로 드러내놓고 그러는 건 안 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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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 A를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라는 사실을 잊고 젓가락을 탁 소리 나게 놓을 뻔했다. 내 PC함이 자칫 ‘갑분싸’를 만드는 것도 모자라 우정이 상할지도 모르는 격론으로 이어질 뻔했다. 잠깐, 아주 찰나 고민했다. 썰을 풀어 말어....., 말기로 했다. 어차피 말 몇 마디 한다고 그애의 생각을 바꾸지도 못할 텐데, 자칫 친구를 잃을 위험까지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또한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높은들 사람 자체가 A처럼 좋을 수도 없는 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자, 하고 접었다.


A는 이런 말도 했다. 그애 친구가 딸이 있는데, 얘가 아마 이성애자였다 동성애자가 된 그러니까 현재는 양성애자는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친구의 친구는 중고등 시절 동성 친구를 무척 좋아한 경험이 있는데, 자기처럼 그런 감정(사춘기 시절 이성이 없는 공간-여중, 여고-에서 한 번쯤 소나기 맞듯 겪는 과도기적이고 몽롱하며 지나고 보면 한심한...)을 느낀 걸 텐데, 딸애가 그걸 헷갈려 헤어나지 못한다며 속상해 죽겠다고 하소연을 한 모양이었다.

웃기는 이 멘트도 동성애에 비우호적인 여성들에게서 자주 듣게 되는 얘기다. 그냥 어릴 적 지나가는 감정 정도가 괜찮지, 동성애는 좀 아니지 않냐며, 철딱서니 없는 애들 장난인 양 타인의 성 정체성을 비하하는 말들 말이다. 이 말에서 나는 동성애를 부정하기 위해 자신의 여여상열지사를 미숙한 청춘사의 한 조각으로 세탁하고 싶어 하는 불온한 의도를 느꼈다. 어쩌면 아직도 문득문득 그 시절 그애를 느끼고 싶고 그럴 수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으면서 이를 감추려 드는, 마치 어리바리한 범인의 알리바이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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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는 여중 여고를 다닌 세대이기에, 학교라는 공간에 교사 말고는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없이 6년을 보낸다. 그야말로 여자들만의 공간인 셈이다. 여자끼리 공부하고 여자끼리 운동하고 여자끼리 낄낄대고 여자끼리 싸우고 경쟁하고 화해하는 등 지지고 볶는 시간을 보낸다. 이때 참신하거나 터프한 마스크의 여자애는 매우 다른 매력을 가졌기에 선망의 대상이 된다. 눈이 맞으면 꽤 진지하게 쪽지나 편지가 오가며 마니또나 의자매를 맺기도 하는 등 공식적인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게 공식화될 수 있었던 건, 이런 관계가 여자들만의 공간에서만, 그리고 여중 여고 시절로만 한정되는 시한부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 고등을 떠나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드물게는 있었겠지만 대부분 거기서 끝낸다. 그래야 안전하니까. 그것까지가 가부장이 허용한 관계니까.


하지만 상상해 보자. 그때 우리에게 강요된 이성애라는 규범이 없었어도, 모두들 그 애틋한 감정을 그때 그 시절의 미숙한 장난질로 흘려보내거나 묻어버렸을까. 아닐 것이다. 이중 소수는 오랜 시간 그때 그 연인을 잊지 못해 애달파하며 그때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의 친구처럼 정말 좀 찐득한 동성 간의 감정을 한시적으로 나눴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더라고 그때 감정을 진지하게 규명해 보려 했다면 좀 다른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 간단해지지 않을 것이기에 저런 식으로 어린 시절 철없는 감정으로 치부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이성애가 공고하기에 이런 작거나 큰 감정을 소멸시켜야만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애자라는 그리고 결혼이라는 정상성의 든든한 울타리가 없다면 얼마나 취약한 삶에 놓이는지 익히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물론이고 딸애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미숙한 감정놀음에 빠져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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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대화를 끝내고 싶었던 나는 오래전, 동성애는 찬성이냐 반대를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일침을 놓은 심상정 씨의 발언을 인용하며 그의 권위에 기댔다. 내 의견을 피력했다면 아마도 이러쿵저러쿵 약간의 설전이 오갔겠지만, 심상정을 좋아하든 안 하든, 그이가 공인으로서 가진 권위는 참으로 유효한 것이었다. A는 권위주의에 굴복하며 나와의 우정을 지키고 싶었을 테다. 내 본의는 이랬다. 니가 인정하든 안 하든 그들은 언제나 존재했어. 그들에게, 그래 알겠어, 너 동성애자인 거 인정, 그러니까 좀 조용히 살자라는 니 말은 한마디로 개소리야. 크크크


그리고 A에게 한마디를 더 남겼다. 이 문제의 본질은 동성애가 아니다. 이성애주의에 의해 공고해지는 것은 가부장제이며 기독교 역시 이성애에 의해 존립되기에 그토록 지독히 동성애 혐오를 하는 것이 아니겠냐. 우리가 여전히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의 그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물론 소수는 그 그늘에서 안락하겠지만...


삶의 안락함을 절대 놓을 수 없어도, 그 이전 박탈된 삶이 있었던 역사는 좀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도 한 세기 전만 해도, 여성은 공직에 나갈 수 없거나 선거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내 재산이어도 빼앗기고, 내 자식이어도 기르지 못하고, 내 부모가 아프거나 죽어도 예를 차릴 수 없었다. 그때도 그랬다. 알았어, 니들이 사람인 건 알겠으니 나대지 말고 조용히 죽은 듯이 살자.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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