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여성의 '혼혈' 자식들을 팔아먹은 나라

by 그냥


알고 지내는 파주 기지촌 여성 한 분(나는 ‘이모님’이라 부른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를 낳자마자 보냈다고. 아마도 이모님은 과거 기지촌 시절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궁금하지 않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무슨 자격으로 궁금해하겠냐는 한숨 섞은 대답이 돌아왔다.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 더는 묻지 않았다. 당시 그녀에게 ‘양공주’ 그리고 태어난 아이에게 ‘혼혈아’라는 낙인이 없었다면,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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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겨레 신문에 ‘혼혈’ 입양인인 미키(오미영) 캄라(KAMRA) 한국지부 대표의 기사가 실렸다. 그녀는 지난 3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앞에서 ‘해외 강제 입양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기자회견을 한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이 살던 곳의 주소 ‘의정부 가능 3동 3통 2반’을 정확히 외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원가정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녀의 입양이 불법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혼혈’ 입양인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피해를 겪은 걸까.


그녀의 가족이 의정부로 이주하기 전 그녀는 1965년 파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 시기면 파주 기지촌이 호황을 누릴 때다. 내가 알고 지내는 이모님과 비슷한 시기에 기지촌에 들어와 생활했을 것 같다. 기지촌 여성들은 사정에 따라 기지촌이 형성된 의정부나 동두천 등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미키가 의정부 주소를 댄 걸로 보아 태어난 후 이주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주소를 저렇게 정확히 외고 있었을까. 그건 바로 소위 ‘혼혈’로 불리는 아이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치안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지만, 그때는 저런 불법이 허다했다. ‘혼혈’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흉흉하니 그녀의 엄마는 언제든 납치될 상황에 대비해 딸에게 집 주소를 외우게 한 것이다. 잡혀가도 도망쳐 꼭 돌아오라고 말이다. 그리고 잔혹 동화 같은 무섭고 슬픈 사건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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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납치한 범죄자들은 악마일까. 아니다. 기지촌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입양시키는 공급망의 한 사슬을 담당했던 이들은 악마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말간 얼굴로 ‘혼혈아’를 유인해 납치하기도 했고, 아이를 낳은 기지촌 여성에게 ‘너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타락녀’라고 가스라이팅해 아이를 빼앗아 가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아이도 엄마도 원한 바가 아니다. 아이는 엄마를 엄마는 아이를 잃었다.


이들의 상실을 비료 삼아 사업을 키운 이들은 악마가 아니라 하느님을 내세운 선교회였다. 미군이 타국에 남긴 ‘혼혈아’들을 미국의 품에 안아 번듯한 미국 시민으로 키워내겠다는 기묘한 기독교적 가치는 한국의 ‘순혈 민족주의’를 내세운 인종청소와 맞물려 소위 ‘GI 베이비’들을 대대적으로 수출하는 입양 산업을 만들어냈다. 미키는 이 착취적 산업이 생산한 피해자였다.


‘혼혈아’만 입양된 것도 아니다. 주지하듯 한국은 세계 1위의 입양 수출국이 아니던가. 수많은 아이들이 불법으로 조작된 서류를 통해 부모를 잃고 해외로 보내졌다. <덧없는 환영들>을 쓴 제인 정 트렌카도 이런 경우였다.


1972년생인 제인은 그해 미국 미네소타에 입양되었다. 그녀의 양부모 역시 미국인들에게 유행처럼 번진 기독교 입양 운동의 영향을 받아 제인을 입양했다. 어떤 피부색의 아이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백인의 인종적 관대함과 하느님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입양이 동원된 것이다. 이러한 선교 사역으로서의 입양은 입양인의 정보를 말끔히 삭제시키고 백인의 정체성을 탑재하라는 명령을 수행시켰다. 제인의 언니가 표현한 대로 ‘그 사람들은 널 입양하면서 네 정신을 훔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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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기독교적 민주주의’의 세례라며 스스로를 칭송한 선교 사역의 미사여구와 달리 미키나 제인은 적법하게 입양 보내지지 않았다. 이들의 서류는 조작되었다. 이들에게 버젓한 엄마나 부모가 있었지만 버려진 아이로 탈바꿈되어 보내졌다, 이러한 사례가 극히 드문 경우가 아니라 보편적 사기행각이었다는 게 속속 밝혀지고 있다.


2024년 해외 입양인들의 요구로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진실화해위는 조사대상 해외 입양인 피해자 367명 중 10%가량의 부모 관련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부모가 없는 아이만을 대상으로 해외 입양 보냈다는 적법성이 무너졌다는 의미이자 진실화해위가 밝혀낸 10%는 겨우 시작해 불과함을 시사한다. 한마디로 국가가 아이들의 해외 입양팔이의 공범일 가능성이 매우 짙어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한때 기지촌 여성들을 ‘애국자’로 치켜세우고 집을 한 채씩 주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들을 배신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후손들까지 입양사업으로 팔아먹었다. 수많은 미키나 제인들이 한국 정부를 드잡이해 이것도 나라냐고 악을 쓴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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