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록을 기리기

by 그냥


동네 산에 진달래가 피어있어 깜짝 반가웠다. 약간 형광 톤이 도는 연보라색이 미처 겨울옷을 다 벗지 못한 산 풍경이 겨울 정도로 예뻤다. 우리 집 마당에도 몽우리를 가득 키우고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매화가 대기하고 있다. 봄이다.


가까운 지인에게 책 선물을 받았다. 그는 작년 겨울쯤 그의 엄마가 남긴 기록을 갈무리해 마치 시화집처럼 꾸며 작은 책을 만들었다. 카톡으로 보내준 표지 사진을 보고 반가워 ‘나도 꼭 보고 싶다’고 했던 말을 잊지 않았는지, 그제 만나기로 한 날 가져와 주었다. 받자마자 펼쳐봤는데 그저 감동이라는 말 외 소감을 표현할 말이 부족하다. 그가 상당히 좋은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내가 매긴 평가치를 훨씬 상향 조정했다.


기록3.jpg


지난해 지인은 엄마의 집으로 들어갔다. 노모가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자 돌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다들 피하고 싶어 안달하는 일을 기꺼이 수용하는 그의 웅숭깊음이 경외감을 자아냈다. 그리고 어떻게든 잘 돌보기 위해, 특히 인지 저하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엄마와 일기 형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인의 엄마는 옛날 어른 식 표현으로 ‘까막눈’은 아니지만, 기억은 쇠퇴하고 글씨를 쓸 일이 없으니, 말과 다른 글은 쉬이 잊힌다. 지인은 엄마의 지적 능력을 지키기 위해 일종의 치료를 한 것이다. 그렇게 쓴 낙서이기도 메모이기도 일기이기도 한 기록을 작은 책으로 만든 것이다. 글 한 편에 엄마의 사진이나 엄마 관련 사진들을 배치해 보는 즐거움이 컸다. 엄마의 유물을 만지는 듯 엄마의 말소리를 듣는 듯했다.


내 감상과 달리 지인의 형제들은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책을 넉넉히 만들어 형제들과 나누었는데, 이런 걸 뭐 하러 만들었냐는 식이었다나. 참 야박한 사람들이다. 어쨌거나 엄마의 사진도 박혀있는 기록인데 그런 취급을 하다니. 이 책을 보고 좋아해 준 사람이 나와 어떤 이 둘뿐이라며 허탈해했다.


지인은 그렇게 돌보던 엄마를 결국 요양원에 보냈다. 그는 계속 돌보고 싶어 했지만 다른 형제들이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이해되지 않는다. 누구든 자신이 살던 집에서 살다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게다 지인이 엄마 집에 상주하며 주 돌봄자로 보살피겠다는데, 왜 굳이 노모를 요양원에 보내지 못해 안달일까.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 후 지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그는 가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기록1.jpg


지인의 선물을 받고 나는 자책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당신의 인생역정을 책으로 쓰라고 은근히 재촉하곤 했는데 말이다. 당시 나는 ‘나보다 한 많은 인생도 없을 거다’라는 자기 연민이 바탕인 엄마의 한이 싫었다. 책을 쓰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듣다못해 어느 날 싫다는 말을 집어던지듯 내뱉었는데, 그 후로 엄마는 두 번 다시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후회막심이다.

작가의 이전글동두천 ‘몽키하우스’ 미국판 납치 감금 기획의 카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