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몽키하우스’ 미국판 납치 감금 기획의 카피였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8장을 중심으로

by 그냥

유방암 분야 종양내과 전문의인 엘리자베스 코멘이 쓴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을 읽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책은 여성 질환 오진의 역사를 다루는데 충격적이고 ‘빡치는’ 내용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이 중 8장 면역계 챕터는 면역학이 “여성을 희생양 삼아”온 역사를 알려주는데, 이 폭력이 미 군정기로부터 발아된 한국 사회 여성 폭력의 역사와 맥락이 닿아 있는 걸 알았다. 적잖이 놀랐다.


미 군정기를 거쳐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따라 기지촌이 형성되었는데 농사짓는 시골에 갑자기 유흥 산업이 들어선 것이다. 동두천도 이 중 한 곳이었다. 전후 먹고살 길이 없던 여성들은 기지촌으로 모여들어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미군의 성병 감염이 급증하기 시작하자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미군을 상대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이던 한국 정부는 미군의 성 구매 수요가 줄 것을 우려해 성병 검진소를 설치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말이 관리지 강제 검진과 수용이 잇따랐다.


검진에서 떨어진 여성들은 일명 ‘몽키하우스’라 불린 낙검자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어 강제 치료를 받았다. 미군이 제공한 페니실린이 강제 투약됐는데 쇼크사로 죽는 경우도 있었고, 강제로 가둬진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불의한 폭력에 대해 2022년 대법원은 국가가 명백한 인권침해를 저지른 책임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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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여성 강제 검진 및 수용은 분명한 한국 정부의 국가폭력이지만, 나는 미군이 낙검자 수용소의 페니실린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미군의 관여와 책임도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뿐 아니라 낙검자 수용소를 기획하고 관리한 체계 자체가 미군 즉 미국 정부의 정책이 이식되었다는 혐의를 찾고 경악했다. 저자가 면역계 챕터에서 소개한 <니나 맥콜의 시련>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니나 맥콜의 시련>은 역사학자 스콧 W. 스턴이 쓴 책으로 제목의 니나 맥콜은 실존 인물이다. 스콧은 이 책에서 미국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병사의 성병이 급속히 확산되자, 이를 안보 문제로 격상해 해결하는 과정에서 니나 맥콜(여성)에 대한 막대한 인권침해를 저지른 역사를 기록했다. 미국은 이 대대적인 폭력 사태를 ‘아메리칸 플랜’이라 명명하고, 공중보건이라는 미명 하에 심대한 여성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미국 정부는 의심스럽다고 여겨지는 매우 많은 여성을 납치해 정부 감금 시설에 가둔 후 강제로 약물을 투여했다. 여기서 ‘의심스럽다’는 혐의는 잡아들이는 남성들의 자의적 판단이었다. 여성 혼자 식당에 앉아 있거나, 갑자기 직업을 바꾸거나, 그냥 의심이 된다는 게 강제 납치와 수용 이유의 전부였다. 잡아들인 여성의 성병이 확인되면, 수은 주사나 비소 기반의 약물을 강제로 투여해 미군의 성병 확산을 막았다. 수용된 여성들에게 얼마나 심대한 피해가 있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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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 시설은 규율이 매우 엄격했다. 조금이라도 눈 밖에 나면 심한 매질과 독방에 가두거나 강제 불임 수술까지 단행됐다. 이러한 과정은 ‘너무나 충격적일 정도로’ 한국 기지촌의 낙검자 수용소에서 여성을 상대로 가한 폭력이나 인권침해 정황과 유사했다. 그렇다면 기지촌에서 벌어진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미국의 체계를 그대로 이식해서 벌어진 폭력 사태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면, 실행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비합리적 사고이지 않을까. 미군을 ‘위무’하기 위해 ‘미군 위안부’를 만들었다. 그런데 성병이 퍼지자 오직 여성들만 잡아들여 족친 셈이다. 그것도 미국의 주문대로 말이다.


몇 년 전 나는 파주의 기지촌 여성이었던 한 분으로부터 성병 검진소에 관해 들은 적이 있다. 파주 역시 큰 규모의 미군 기지가 있었고 기지촌의 규모도 상당했던 터라, 성병 검진소가 두 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한날 검진에서 감염이 의심되자 바로 검진소에 가두더란다. 이분이 어린아이가 집에 혼자 있으니 보내 달라고 호소하자 아이까지 함께 가두었단다.

또 한 기지촌 여성은 선유리 검진소에서 강제로 검진받던 기억을 말해주었다. 추운 날이었는데 검진받기 쉬우라고 홑치마를 입고 있었단다. 검진소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아이들이 ‘양공주’라 소리 지르며 놀리는 통에 너무 부끄러웠단다. 몹시 추운 데다 신세까지 처량해 딱 죽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리 추워도 일주일에 두 번씩 받아야 하는 검진은 강제였기 때문에 피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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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진은 꼭 기지촌 여성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다. 니나 맥콜처럼 그냥 의심스러워서 잡아 가둔 뒤 검사를 하기도 했다. 기지촌 여성이 아닌데도 잡혀 들어와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수소문해 찾아온 가족이 신분을 증명해야 겨우 풀려났다고 한다. 이는 미군의 성병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무고한 여성들의 성과 몸을 유린하고 착취한 폭력의 역사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지는 못할망정 개발 논리로 없애겠다는 동두천시는 각성해야 한다.


파주시도 마찬가지다. 파주시 선유리에 있던 성병 검진소는 미군이 떠난 후 외관이 보존된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대지는 수자원공사 소유이고 건물은 따로 등기되어 있어서, 이를 시가 매입해 보존하라고 요청한 바 있지만 무시되었다. 그러다 건물이 경매 처리되어 개인에게 헐값에 매각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주시는 용주골을 철거하는데 100억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이에 비하면 성병 검진소 매입비는 조족지혈일 텐데, 지켜야 할 역사의 현장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기지촌 성매매 역사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용주골 폐쇄를 완수하겠다는 행정은 여성 피해 역사를 기망하고 있다.


여성이 성매매를 할지도 모르니 의심스러워 가둔 역사는 기지촌에서만 벌어진 것도 아니다. 한국 정부는 70-80년대 윤락행위방지법에 따라 의심되는 ‘요보호여자’를 잡아들여 여성수용시설에 가두었다. 참 기가 막힌 일이지만 전국 곳곳에 여성수용시설이 있었다. 이중 한곳인 경기여자기술학원에서 감금당했던 여성들이 탈출하려다 화재가 발생해 37명의 인명피해가 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전국에 퍼져 있던 여성수용시설이 폐쇄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동부여자기술원에 수용되었던 피해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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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납치 감금의 역사는, 뭐든 미국 흉내 내기를 좋아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 만든 병폐이자,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여성의 성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착취해도 된다고 믿는 유구한 가부장의 의도된 폭력이 낳은 유산이었다. 이 사건뿐 아니라 책은 수많은 여성 질환 오진의 역사를 상세히 다룬다.

여성 질병에 대한 수많은 오진은 의료 지식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여성은 본래 그렇게 모자라게 생겨 먹었고 딱히 쓸모도 없으니 그냥 그렇게 견디며 살 것이며, 무엇보다 여성이 아픈 이유는 그 못돼먹은 자궁이 만드는 히스테리 때문이니, 마음이나 잘 다스리며 쭈그러져 살아가라는 가부장의 호통이 여성의 호소를 무시하고 배제하고 침묵시켜온 결과인 것이다.


이러니 알고나 당하자는 마음이 있다면, 읽다 혈압 뻗쳐 뒷목 잡는 한이 있더라고 일독을 권한다. ‘그거 원래 그런 거 아냐’하던 증상 등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 의학계도 남성 몸을 기준으로 상정된 의료 체계를 극복하기 위해 젠더 의학 연구를 시작했다는데, 분발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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