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와 <시간의 바깥> 가사 탐미
나의 2024년의 첫 노래는 ‘너랑 나’이다.
작년 11월인가 연말부터 2024년의 첫 노래로 너랑 나를 들을 거라며 블로그에 카운트다운을 하고 기다려서, 1월 1일에 너랑 나를 들었다.
네가 있을 미래에서 혹시 내가 헤맨다면
너를 알아볼 수 있게 내 이름을 불러줘
어떤 것을 만나면 처음 보지만 오래 기다렸다는 직감이 들고, 어떨 때는 헤매면서도 이 길을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것의 이름조차 모르면서 알아봐지는 게 있고, 이름만 알게 됐는데도 그리워 지는 게 있다.
내 일기장에는 그런 기록이 이상하게 많다.
저번 2월 달 마지막 날은 어쩌다 산책이라는 서점의 이야기로 일기를 마무리 했다.
어쩌다 산책이라는 서점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이름이 서점 이름 같지 않아 눈이 꽂혔고, 내가 좋아하는 ‘산책’이라는 말을 썼기에 언젠가는 가야지 하고 생각한 게 시작이었다. 보고 지나칠 이름이었을 수도 있는데 어느 날 그 서점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내 피드에 떴다. 그래서 팔로우하고 보다가 언젠가는 진짜로 가겠다고 마음 먹게 됐다.
그 언젠가와 나는 과연 만났을까?
‘언젠가’라는 말에는 기묘한 쓸모가 있는 것 같다.
아이유의 someday 라는 노래도 언젠가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언젠가 이 눈물이 그치길, 언젠가 이 어둠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내 눈물을 말려주길‘
그냥 내 생각인데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망, 그거 신이나 갑자기 떨어진 행운이 이뤄줄 것 같지만 결국 그 소망을 만나는 일 그걸 해야 하는 게 나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으로 나를 그 곳에 먼저 도착시킨다. 그 곳에서 나를 기다려서 -해줘, 그 곳에서 나를 기다려서 내가 오고 싶었던 이 곳에 왔다고 다시 한 번 말해줘. 그렇게 내가 나를 기다려줘도 정작 그 순간이 왔을 때 내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고, 아예 안 가는 경우도 많다.
근데 그런 건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전혀 문제 없는 일이다. ‘우리 그 정도 사이 아니잖아’ 하고 마는 일 정도로 끝낼 수도 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내적 세계는 어떻게 되어갔는지를 돌아본다. 일단 언젠가라는 말이 생긴 다음부터 평행우주처럼 어쩌다 산책에 갈 내가 생긴다. 내가 소망해놓고 계속해서 나 스스로 그 소망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래서 내가 나를 하염 없이 기다리게 만들면 나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내가 나를 그렇게 계속 알아봐주지 않아서, 만나러 가지 않아서 평행우주 같은 세계들이 내 안에서 너무 많이 생겨나고 존재하게 되면 내 세계는 어떻게 될까? 생각이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게 많은 사람이 힘든 까닭은 이 때문이 아닐까?
작년 어느 날 그게 깨달아졌다.
언젠가 가겠다고 하지나 말지, 바라기나 하지 말지, 그런 내가 될거라는 생각이나 하지 말지 그러면 차라리 바라는대로 하거나 가지. 왜 맨날 내가 아닌 현실을 보고 이리 저리 재고 따지고 생각하다가 현실이 [이제 마지막입니다] 하고 알려주면 아직 모르지만 일단 있어봐 하고 급하게 매달리거나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았어’로 끝내고 안 보려고 했는지. 보이는대로 마음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우선순위에서 밀린 마음들은 일단 무시하고 눌러버리고 말았는지.
그런 현실의 나를 수 많은 내가 미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나를 봐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무시가 쌓이고 쌓여서 째려보는 시선이 됐다는 걸 알았다. 그 모든 시선을 인식하게 된 그 시기 동안 내가 내 마음 안에서도 공황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작년 연말부터는 그래서 아무도 안 만나고 내가 ‘언젠가’ ‘언젠가’ 하며 미뤄왔던 그 세계들을 만나러 다녔다. 와 점점 내가 하나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나를 나의 적이 아니라 내 편, 내 팀으로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어떤 나는 만나자마자 만족한 듯 채워졌다.
내가 진짜 원한 건 뭐였을까. 내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 2월 마지막 일기가 어쩌다 산책이 된 건 그 날이 어쩌다 산책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기장에 쓰인 건 내가 그걸 만나러 갔기 때문이다.
이번 2월을 마지막으로 운영을 종료한다는 어쩌다 산책의 공지를 보고, 언젠가 어쩌다 산책을 갈 거라고 했던 내가 오래 기다리고 있겠구나. 지금 안 가면 이제 못 보겠구나. 그래서 만나러 갔다.
이제 내가 어딘가를 가는 건 그 곳에 있을 나를 만나러 가는 것 같다.
어쩌다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가까워졌을까
분명히 언젠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손 마디 만한 노트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기에 방명록인 줄 알았는데 ’G에게’로 시작해서 유난히 긴 이야기가 있었다. G가 준 책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서점이 ‘어쩌다 산책’이 된 이유 같은데 보내지 못한 편지일까.
서점은 이렇게도 넓은데 편지는 너무 작아서 만약 내일까지 G가 온다면 볼 수 있게 펼쳐놨다.
하지만 이 편지를 G가 볼 일을 없겠지. 아마 내가 이렇게 해둔 건 오늘 마감 정리하는 주인장이 보지 않을까.
하지만 잘 구축해놓은 자기의 세계에서 손바닥만한 노트에라도 자기 마음 다 꺼내고 적어놓은 어쩌다 산책의 주인장이 부러웠다. 이건 내가 보내는 부러움의 표현이다.
나는 내게 드러난 문제, 내가 가진 걸 꺼내지 못하는 문제를 오래 안고 지냈다. 근데 그거 해결되더라. 근데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아니고 그 시간을 보내는 내가 해결해준다.
조금만 꼭 참고 날 기다려줘
너랑 나랑은 지금 안되지 시계를 더 보채고 싶지만
네가 있던 미래에서 내 이름을 불러줘
내가 먼저 엿보고 온 시간들 너와 내가 함께였었지
너랑 나에서는 기다림의 자세를 이야기 한다. 기다리면서도 어떤 미래를 보면서 선명하게 향하는 듯 보인다.
작년 글쓰기 수업에서 내년의 목표를 묻기에 ‘나는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내가 기다리겠다고 한 이유는 나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알고 찾으려고 방황하기를 선택했다. 시간이 걸려서 나는 그걸 알게 됐고 이제야 내 마음에 심어두었다. 그걸 그냥 잘 보고 싶어서 나는 기다린다. 바라보면서 할 거 하면서 기다린다.
작년에 좋아서 매일한 건 식물 돌보기와 요리였다. 좋은 재료를 만나려면 그 재료의 제철을 기다려줘야 한다. 하나의 음식을 만드려면 이런 한그릇 요리도 다 때려넣으면 될 것 같지만 양파가 익으려면 양파의 타이밍과 온도가, 닭가슴살이 익으려면 그만의 시간과 조리법이, 합쳐지는 건 그 다음이다.
기다려야 한다. 익지 않은 걸 먹을 수 없고, 식물이 오늘 갑자기 다 자랄 수는 없다.
여전히 2024년의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글쓰기 수업 날 배운 개념이 ‘서사’다. 쓰인 문장 앞에 놓이는 배경이 서사의 정확한 뜻이란다. 이 기다림의 서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이유가 좋은 날로 터진 후에 나온 이 노래가 좋다.
어릴 때는 좋은 날보다 좋은 거 몰랐는데 지금은 가사를 듣는 사람이 되어서인지 좋은 날보다 이게 더 좋다
‘좋은 날’은 내 밖에 있는 날씨도, 환경도 모든 게 다 완벽한데 좋다고 직접 말하지 못해서, 내가 준비하지 못한 어떤 것 때문에 계속 나를 탓한다. 좋은 날이 이름인데 내용은 자기한테 하나도 좋은 게 없다.
‘너랑 나’는 벅찬 마음으로 하지만 차분히 나에겐 당연히 좋은 날이 온다면서 믿으면서 기다리는 것 같다
네가 있을 미래에서 내 이름을 불러줘
나는 내 이름이 좋다
이름의 본질은 내 것이지만 남에게 불리고 쓰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이 불리고 쓰일 때 좋은 것으로 바꿨다.
난 내 이름을 꼭 잘 쓸거다. 앞으로 나를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저를 만나게 되면 제 이름을 기억해주세요
제 이름을 많이 불러주세요
나는 이제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내 이야기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나의 세계를 기대할 수 있다. 나를 편하게 기다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냥 좋다.
너랑 나의 뒷 이야기가 되는 노래가 있다는 걸 아는가? 바로 ‘시간의 바깥’이다.
오래 기다려온 내 마음을 오늘은 시간의 바깥으로 화답한다.
드디어 기다림의 이유를 만나러
꿈결에도 잊지 않았던 잠결에도 잊을 수 없었던
너의 이름을 불러 줄게
기다려 잃어버렸던 널 되찾으러
엉키었던 시간을 견디어 미래를 쫓지 않을 두 발로
숨이 차게 달려가겠어
긴긴 서사를 거쳐 비로소 첫 줄로 적혀
나 두려움 따윈 없어
서로를 감아 포개어진 삶 그들을 가만 내려보는 달
여전히 많아 하고 싶은 말 우리 좀 봐 꼭 하나 같아
이제 봄이 온다.
겨울이 가는 이유는 봄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겨울이 가는 것도 봄이 오는 것도 나는 잘 모르는데 확실한 건 내게 있어 좋은 날들은 내가 나에게 만들어줬다. 예전부터 줄곧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쫓지 않아도 나는 만나게 될 것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