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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Feb 08. 2024

프랑스에 오자마자 집보러 다닌 이야기

애 셋 가족은 이런 집을 원한다 

우리 다섯 식구도 막무가내로 프랑스에 온건 아니었다. 나름 치밀한 계획을 하고 왔다. 애 셋을 데리고, 그것도 갓난쟁이까지 데리고 지구 반대편 나라를 가는데 그냥 갈 수 있나? 특히 먹고 사는 문제는 매우 매우 중요하다! 우리 부부는 지난 10년동안 애가 하나, 둘, 셋 태어나면서부터 머릿속에 돈 걱정이 한번도 떠나본 적 없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절절히 깨달았다. 코로나로 죽는게 아니라, 굶어 죽을 수 있다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한국 생활은 안온했지만 그럼에도 프랑스행을 택한 것은 결국 남편 직장 때문이었다. 셋째가 막 태어났는데 아직 2, 3년은 품에 끼우고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간 시행착오로 아주 알고 있었다. 남편은 이제는 제대로 회사일을 하고 싶어했다. 그간 위에 애들 키우느라 육아휴직도 3년 하고, 자잘자잘한 자영업 실패로 지쳐있었다. 남편은 다시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운좋게 남편은 프랑스 회사에 취직이 됐다. 나는 육아휴직중이니 남편을 따라 왔다.    


그리고 인생계획을 세웠다. 한국에서는 집을 샀으니, 이제 프랑스에 가서 집을 사자! 국제 결혼을 했고, 애도 셋이나 낳아놨다. 나중일은 모르지만, 양가부모님도 곧 연로해질테다. 남편도 급히 혼자서 프랑스에 날아와서 부모를 챙길 일이 종종 생길테고, 나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한국 호출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양쪽에 집이 있는 것이 국제커플에게는 공평하다. 


애들은 그래도 말 통하는 한국이나 프랑스 중에서 둥지를 틀 확률이 높다. 애들이 대학을 가든, 직장을 가든 그래도 집이 있으면 정착하기 쉬울 것이다. 부모로서 다른건 몰라도 자식이 오면 언제든 머물 집 방 한 칸은 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집을 보러 다녔다. 일단, 임시로 월세집에 있으면서 부동산에 연락해서 집을 보러 다녔다. 내가 원하는 집의 기준은 명확했다. 


1. 주택이거나 아파트라면 1층일 것. 


애가 셋이고 한참 어리고 게다가 막내는 남자애다. 첫째는 시도때도 없이 피아노를 치고, 둘째와 막내는 고막이 찢어지도록 노래를 부르며 하루종일 뛰어다닌다. 양심이 있다면 아파트 고층에 살면 안된다.


2. 집에 햇빛 잘 들어야 하고, 방마다 창문 있고, 환기 잘 되어야 함. 


대학교 때부터 직장 다니면서까지 원룸, 투룸, 작은 아파트 등등 안 살아본 곳이 없다. 창문과 햇빛은 필수다. 온 집안에 곰팡이 슬기 십상이고, 건강이 안 좋아진다. 애들 셋이면 빨래는 얼마나 나오나. 막내 기저귀도 떼야하는데, 이불 빨래는 햇빛에 말려야 한다.


3. 유모차, 자전거, 씽씽카를 둘 수 있는 보관공간이 있어야 함.


아기가 있으면 외출할 때 유모차를 꼭 끌고 나가야 한다. 체감상 4, 5년은 유모차가 필요하다. 애가 걷기 시작하면 씽씽카는 3, 4년은 타는 것 같고, 그 다음에 자전거(세발자전거, 네발자전거, 두발자전거 순)로 갈아탄다. 그런데 유모차, 씽씽카, 자전거가 생각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자동차처럼 비를 막아주는 천장이 없기 때문에, 천장이 막혀 있는 보관 장소가 꼭 필요하다. 이 부분은 애를 안 키워본 사람들은 상상을 못한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빌라인데, 4층에 산다고 생각해보자. 1층에 유모차, 씽씽카, 자전거 공간이 있으면 천만다행이지만, 안그런 경우도 많다. 공간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고, 입주민들 중에 지저분해 보인다고 입주민 규약에 안된다고 정해 버리면 애엄마는 죽을 맛이다. 애를 업고, 유모차를 접어서 들고, 장본 짐을 들고, 혹은 쓰레기봉지를 들고, 그 상태로 4층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된다는 말이다. 애 낳고 처음 3년은 회복이 제대로 안되었는데, 극한체험으로 내달리는 셈이다. 그러면 결국 남편과의 불화로 이어진다.


4.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놀이터와 공원, 마트, 약국, 병원(의원급)이 가까워야 함. 걸어갈 수 있는 거리.


한국에서 시골집 살면서 항상 차로 이동해야 하니 정말 너무 너무 피곤했다.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차에 안 타겠다는 애 셋을 어르고 달래가며 겨우 차에 태우면, 한 놈은 똥 마렵고, 한 놈은 배고프고, 한 놈은 쌈박질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 지경으로 마트도 들르고, 병원도 가고, 약국도 가고, 놀이터도 가는데 주차할 곳 마땅찮아 주차장 찾아 삼만리. 혼이 빠져 있으니 빨간 신호등도 지나치고, 사야하는 것 빠뜨려서 다시 돌아가고 그랬다. 한번은 애 하나를 어린이집에 놔두고 깜빡하고 안 태운 적도 있다! 운전을 좋아하지만 애기들 데리고 운전하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다. 차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애들 어릴 때는 모든 것을 걸어서 유모차 끌고 해결하는 곳에서 살면 좋다. 


참고로 우리가 한국에서 샀던 집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것 같은 시골집이었다. 거기서 꼬박 5년을 살고 나니 내가 원하는 집의 기준은 아주 분명했다. 앞으로 절대 시골은 안된다! 남편아. 다시는 나를 시골에 쳐넣지 말아라. 시골 좋아하면 너 혼자 살고, 한번만 나를 더 시골에 쳐넣으면 이혼 당할 줄 알아라. 라고 삿대질을 하며 남편에게 경고했다. 


시골은 정말 정말 추천하지 않는다. 특히 애 어릴 때. 시골도 면소재지 정도에는 가야지, 산 좋고 물 좋고 이런 곳에 가면 안된다. 거기는 주말이나 방학 때 가야 한다. 


4. 이웃에 애 키우는 집이 많아야 함.


애 키우는 사람들은 무던하다. 애들 우는 소리에 하도 단련이 되어서 그렇다. 이웃집 앞에 널브러져 있는 씽씽카도, 자전거도, 유모차도 눈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애 있는 집은 다들 그러고 살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이다. 애 있는 집은 하루일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 있는 집은 밤새도록 친구들과 집에서 고성방가하며 파티를 열거나 하지를 못한다. 늦어도 열시 되면 잔다. 엄마, 아빠가 피로를 못 견뎌서 그 전에 잠이 든다. 이웃집에 애가 있으면, 애들끼리도 친구가 되고, 부모들도 친구가 되어서 서로 들락거리며 친하게 지낸다.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사는게 여러모로 편하다.    


5. 밤에 조용해야 함. 주변에 술집 없어야 함.


이웃도 중요하지만 주변 상가도 중요하다. 밤늦게까지 하는 술집이 있다면 노래가 시끄러울테고, 당연히 술주정뱅이가 그 주변에 있기 마련이다. 술주정뱅이들은 늦은 시간에 고상방가로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치고, 구토를 하고, 시비가 붙고, 싸움을 하고, 경찰이 오고... 악순환이다. 물론 사람사는 곳이 쥐죽은 곳처럼 조용할 수는 없다. 적당한 생활소음은 괜찮지만 술집 소음은 차원이 다르다. 애들 교육에도 좋지 않다. 예전에 신혼 때 살던 아파트(사택)이 그런 곳이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백일 되던 날,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했었다.


6. 가격은 적당해야 함. 


우리는 가난한 흥부네 가족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어차피 대출은 받아야 하고, 대출은 월급의 최대 1/3까지 정했다. 대출이 그것보다 높아버리면 빨아먹을 손가락도 없을 수도 있다. 우리 식구 소고기는 당연히 못 먹는다지만, 그래도 돈까스, 치킨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동네에 있는 모든 부동산에 문을 두드렸다. 남편은 새로 들어간 직장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말도 못하는 나는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부동산마다 돌아다녔다. 이런 이런 집을 원하는데 매물 없느냐고. 매물 나오면 꼭 좀 연락달라고. 어눌한 불어로 할 말은 다 했다. 그 때는 프랑스 온지 얼마 안됐어서 동양여자가 어떻게 비춰지는지도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우리는 진짜 많은 집을 봤다. 그런데 우리가 사게 된 집은 생각도 못한 엉뚱한 인연으로 찾아왔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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