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엄마는 어떻게 복부인이 되는가
사는건 신선놀음이 아니다!
부동산마다 다니면서 매물 있으면 연락달라 했지만 매물이 있을리가 없었다. 내가 원했던 조건은 사실 말도 안되는 조건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주택이어야 하고, 조용해야 하고, 초품아여야 하며, 가격까지 싸야한다니. 언감생심이다.
다들 알다시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정확한 지표는 '가격'이다. 비싸면 좋은 물건이다. 돈이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99%는 그러하다. 아주 가끔, 1% 정도는 아닐 경우도 있는데, 그런 싸고 좋은 물건이 나한테 올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나는 돈도 지지리도 없는게 이런 조건, 저런 조건 붙여대니 될 턱이 없었다.
그래도 부동산에서 가끔 연락이 왔다. 그러면 반가운 마음에 온가족이 보러 갔지만,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다른 것이 다 괜찮아도 하나가 마음에 안 들면 끝까지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거의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집이 두 군데가 있었다.
첫번째 집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인데, 애들 학교에서 가깝고, 조용하고, 집도 깨끗하고, 방도 많고, 복층이고, 햇볕도 잘 들고 다 좋았다. 애들도 다 마음에 들어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위치가 4층이었다. 엘레베이터 없이 오로지 계단만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아파트 1층 입구에 자전거나 유모차를 둘 곳이 없었다. 자전거, 유모차는 지하실에 계단타고 내려가서 열쇠 열고 보관실에 넣어두어야 한다고 했다. 돌도 안된 막내를 옆구리에 끼고 하루에도 몇번씩 유모차를 접고 지하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소 하루에 서너번은 큰 애들 등하교 때문에, 장보러 가는 것 때문에 밖에 들락거릴 일이 생길텐데, 애를 업고, 유모차를 접어가며, 지하실에 들락거릴 자신이 없었다. 우리 막내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4kg로 태어나서, 아기지만 돌덩이처럼 무거운 아기였으니까.
유모차도 유모차지만, 4층까지 아기를 업고 매일 장을 봐서 들고 올라가고, 쓰레기를 들고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첫째 때는 애 키우는 게 뭔지 몰랐고, 20대여서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서른일곱이다. 애 셋 낳고 키우면서 몸이 영 맛이 갔다. 예전에 체력은 진짜 자신 있었다. 스무살에는 국토대장정도 하고, 등산도 좋아했다.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애를 업고 유모차 들고 지하실 왔다갔다, 4층까지 짐 들고 왔다갔다 할 수 없다. 아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무정한 세월이여.
그리고 밑에 집 3층사는 사람한테도 못할 짓이었다. 3층에는 퇴직한 할머니가 살고 계셨고, 아들네가 가끔씩 들락거린다 했다. 하루종일 집에 계신 할머니한테 우리 애 셋이 노는 소리가 얼마나 성가실까. 우리 첫째는 집에서 피아노도 마음대로 못칠 것이다.
그래도 남편은 이 집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망설였다. 남편의 로망, 복층집이었다. 복층에 본인만의 공간이자 취미방을 꾸미고 싶어했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보야, 현실은 현실이야.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지만, 지금은 안되겠어. 우리 시골에 가서 5년 살아봤잖아. 마당에서 애들 뛰어놀고 다 좋지만, 애들 학교도 멀고, 우리 직장도 멀고, 차도 두대 굴려야 하고, 뭐든 할려면 차 끌고 나가서 기름 닳고, 집값도 안오르고... 사는게 신선놀음이 아니잖아. 목구멍이 포도청이잖아. 그 신선놀음이 얼마나 비싼건지 이제 알잖아.
남편은 영혼없는 눈으로 그래, 맞아, 라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여느 40대 가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된건데, 그 집은 우리 큰애 친구네가 샀다고 한다. 그 집도 애가 셋인 집이다. 그 집 엄마랑 이야기하며 "우리가 하마터면 그 집 살 뻔 했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지 않았다"고 하니, 그 집도 고민 하긴 했는데 집에 방이 많고 복층이라 마음에 들었다고. 그래도 애들이 좀 커서 유모차는 안 써서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밑에 집 할머니와 층간소음 문제로 스트레스 엄청 받는다고 했다. 집에서 편안히 있을 수가 없다고. 아파트 전체 주민들이 애 없는 사람들이라, 계단에서 나는 애들 소리도 싫어해서, 온 아파트 사람한테 미움을 받는다 했다. 하는 수 없이 시골집을 사서 주말마다 애들하고 거기서 지내다 온다 했다. 여름에는 괜찮은데, 겨울에는 정말 죽을 맛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아, 그 집 안사서 다행이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줌마들이 괜히 부동산 복부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애 낳고 살림하다보니 다른건 무던해도 집 고를 때만큼은 정말 예민해진다. 집은 집사람 전문이니, 집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애엄마들은 거창한 투자까지는 모르지만 실거주만큼은 아주 전문가가 된답니다.
(두번째 집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