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투게더 아이스크림 한 통을 비우는 건 누워서 떡 먹는 일보다 쉬운 일이다. 찬 걸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이야기는 적용된 적이 없고, 막대 아이스크림을 딱! 하나만 먹는 일은 두 개, 혹은 세 개를 먹는 것보다 어렵다.
가족들과 밖에서 고기를 먹고 난 후 각자 손에 막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고 집에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아이스크림이 그득하게 채워진 불투명한 플라스틱 비닐봉지를 손에 달랑달랑 들고 느긋하게 걸어오는 길은 풍요롭고 여유로웠다. 엄마와 오빠는 손에 쥔 걸 다 먹고나면 빈 껍질에 나무 막대기를 넣고 미련없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나와 아빠는 하나로 만족한 적이 없다.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다 먹은 막대기를 치운 뒤 봉지에서 새 아이스크림을 꺼내 포장을 뜯고 먹는다. 엄마는 '참 신기하지. 엄마는 하나만 먹으면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아예 안 드는데.' 하며 나와 아빠를 관찰했다.
그러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산중턱 아이스크림 사건'이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산악회 회장인지, 총무인지를 했다. 산에는 벌레가 득시글하고 가파른 길을 오르는 건 힘들기만 한데 대체 왜 산을 오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모님은 자주 주변의 산을 갔다. 어린 나는 살집이 있는 통통한 아이였다. 그런 나를 움직이게 만들고 싶었던 건지, 아님 집에 혼자 두는 게 걱정스러웠는지 모르지만 부모님은 어떻게든 나를 산에 끌고 가려고 했다. 가기 싫다고, 힘들다고 버티면 엄마는 "너는 엄마 딸이니까 가야돼."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놓았다.
엄마 딸인데 왜 가야하지? 지금 생각해보면 납득이 안 가는데 그 때는 그래야되는가보다 했다. 엄마 딸이면 꼭 등산을 가야한다고. 착한 딸이면 순순히 부모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게 유교의 덕목 아니던가? 하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라, 밍기적거리기 일쑤였다. 불만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짜증을 내고 있으면 아빠는 지금 가는 곳은 정말 작은 동산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이미 깔딱고개가 있는 동산에 여러 번 끌려간 적이 있는 나는 아빠의 버릇같은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등산을 거부할 힘이 없기에 그 날도 산에 끌려갔다. 흙이 묻어도 상관없는 운동화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산을 할 때마다 만나는 아주머니들과 인사를 하고, 엄마와 나란히 서서 걸었다.
"주희야, 정상에 올라가면 아이스크림 사줄게."
힘든 티를 팍팍 내고 있을 때쯤, 엄마가 엄청난 사실을 말해주듯이 작게 속삭였다. 아이스크림? 올라가면 아이스크림이 있다고? 마법의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 그 때 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을 게 분명하다. 엄마는 정상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다고, 열심히 올라가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했다.
아이스크림 귀신이던 내게 그 말은 충분한 동기부여가 됐다. 살이 찐다는 이유로 엄마아빠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자유롭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에 아이스크림이 있다! 분명한 목표가 생긴 나는 최대한 빠르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빨리 정상에 도착해야 아이스크림도 빨리 먹을 수 있었으니까. 엄마와 아빠는 그 순간부터 군말없이 씩씩하게 등산하는 내가 너무 웃겼단다. 그때 내 머릿속에 아이스크림밖에 없었던 게 틀림없다.
정상에 다다르고 엄마아빠가 고생했다며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어줄 수 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휴게소에 도착한 나는 좌절을 맞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날만 장사를 안 하는지 사람은 아예 없고, 가게는 자물쇠로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아빠는 분명 아이스크림을 팔았었다며 나를 달랬다. 비어있지만 가판대가 있는 걸로 보아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엄마아빠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겠으나, 당장 눈앞에 아이스크림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려가면 사줄게."
언제는 올라가면 사준다더니? 이미 마음이 상한 나는 될 수 있는대로 입술을 내민 채 등을 돌아 엄마아빠에게서 멀어졌다. 내려가면 엄마아빠는 같이 올라온 아저씨, 아줌마들이랑 밥을 먹을 게 분명했다. 운전을 할 엄마를 두고 아빠는 막걸리를 마시겠지! 그러고나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올라오기 전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같은 건 없었다. 내려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말 또한 거짓말이 분명했다.
어떻게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수 있지? 내가 아이스크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내가 등산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알면서! 엄마아빠는 거짓말쟁이야! 날 등산시키려고 속인 게 분명해. 다신 엄마아빠 안 따라올거야.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원망과 서러움과 배신감을 담아 속으로 고함을 쳤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구는 엄마아빠가 미웠다. 내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는데, 아이스크림을 안 파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구는 게 그렇게 상처일 수가 없었다.
아마 그 날 엄마아빠는 잔뜩 뿔이난 나를 어르고 달래 데리고 내려가기 위해 깨나 애를 먹었을 것이다. 나는 보통 화가 나면 눈앞에서 땡깡을 피우고 짜증을 내다가 말없이 사라져버리는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너 이렇게 말 안 들으면 두고 갈거야!라는 말에 울면서 따라가는 어린이가 있다고 하면 나는 엄마아빠가 가든말든 뚱하니 서 있다가 뒤를 돌아 가버리는 어린이였다. 아이를 놓치면 안되는 산 정상에서 입이 댓발나온 딸을 달래기 위해 얼마나 갖은 노력을 해야했을지.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아이스크림 사준다는 말에 어찌나 열심히 올라가던지!' 아빠는 눈썹이 위로 솟도록 심각한 표정을 하고 산을 올라가는 시늉을 하면서 낄낄 웃는다. 엄마도 맞장구를 치며 당신의 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못한 게 얼마나 속상했는지, 그 딸이 얼마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지를 말하며 웃는다. 그 날 나를 달래기 위해 힘들었다는 내용은 쏙 빼놓고, 열정적이었던 내 모습과 아이스크림에 대한 열렬한 사랑만을 얘기한다. 말하는 아빠의 손에는 반쯤 먹은 아이스크림이 들려있다.
나는 그럼 그 웃음들을 보며 와그작 소리가 나도록 막대 아이스크림을 베어문다.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걸 증명하듯이.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섭섭함을 토로하며 함께 낄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