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로 우리 자존심을 이은, 간송 전형필

간송 전형필를 읽고 이충렬 지음/ 김영사

by 지금은 함박꽃


이 글을 쓴 이충렬은 미국 애리조나 주에 살고 있으나 1996년부터 간송미술관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1996년 5월 간송미술관 뒤뜰에 있는 간송의 흉상 앞에 서서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왜 내 가슴이 이렇게 벅차오르는지요?’라고 던진 그의 질문에서 그가 얼마나 간송에게 매료되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간송에게 매료된 그는 2006년 간송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된 22점의 국보와 보물을 보면서 간송 일대기를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겨 이 책을 완성한다.

간송은(1906~1962) 우리 나라의 최대 암흑기 일제강점기에 23살의 젊은 나이에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그 유산으로 할 수 있는 편한 삶을 향하지 않았다. 휘문고보 졸업 후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법조인의 길도 걷지 않았다. 그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걷고자 한다. 우리 나라의 유물을 모으는 일. 그가 “우리 서화 전적을 계속 일본으로 가지고 가는데, 그것을 이 땅에 남기고 싶습니다.”(p.82)라고 오세창을 찾아가서 말했을 때 오세창은 그에게 묻는다. “나는 자네가 우리 서화 전적과 골동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지키겠다는 건지 알고 싶네.”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입니다.“ (p.82) 그가 그냥 재산이 많으니 고상한 취미로 수장가의 길을 걷고자 했음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간송 주변에 있는 오세창, 박종화, 백두용, 고희동 같은 인생의 훌륭한 스승과의 만남은 그의 순하고 올곧은 심정과 나라 잃은 젊은이의 애국심에 바른 길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그와 길을 같이 한 이순황과 신보의 진심어린 도움이 이어진다.

간송은 서화 골동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자신의 취향보다는 그것이 이 땅에 꼭 남아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도 좋을지를 먼저 생각했다 한다. 우리나라의 정서를 듬뿍 담은 아름다운 서정시로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 미당 서정주가 친일의 글을 쓴 것에 대한 아쉬움에 누군가가 왜 그러셨냐 물으니 ‘우리나라가 영영 독립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하는데 그는 흔들림 없이 국보급 문화재를 모아 나간다. 그의 발자취 굽이굽이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독립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김태준을 만나 《훈민정음》을 거래하는 부분은 간송의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천 원을 달라고 한다는 이용준의 말을 전하고 너무 많이 부른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바라보는(p.374) 천태산인, 김태준에게 “ 《훈민정음》 값으로는 만 원을 쳤습니다.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요." (p.375)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김태준에게 사례비로 천 원을 내어 준다. 부르는 값이 낮아도 정당한 값을 계산해서 치르는 것은 그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애정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돈 앞에서 사람이 아님을 포기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겨우 최순우와 손재형 덕에 겨우 지킨 보화각의 보물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다시 남쪽으로 퇴각할 때 부산까지 다시 피난을 가야만 하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진다. 그의 수장품은 불쏘시개로 도배지로 전락되기도 한다. 전쟁의 피해로 허망하게 된 것은 놔두고 갔던 서화 전적뿐이 아니었다. 1950년 2월 국회에서 농지개혁 법안을 통과시켜, 소작인에게 농지를 분배하고 토지 대금으로 지가증권을 발행해 지불했다. 그러나 전쟁 중에 화폐 가치가 한없이 추락해 지가증권은 모두 휴짓조각이 되었다. 논도 잃고 소득도 잃고, 농지가 아닌 땅이 조금 남았을 뿐이다. 수입이 없으니, 남은 땅을 팔아서 생활해야 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p.392) 간송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문화재는 팔지 않고 모으는 것보다 어렵다는 문화재를 지켜내고 1962년 급성 신우염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이 책은 간송의 모든 삶을 다 담고 있지는 않아 많은 아쉬움이 있다. 간송이 문화재를 어떻게 모으기 시작했고 모은 문화재가 무엇인지 사진자료까지 자세히 실어주어 읽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까지 주지만 간송 전형필의 생활인으로서의 모습, 가족과의 모습 등이 빠져 있다. 문화재를 모으는 과정이 그저 담담하게 그려져 있어 그의 내면에 있었을 깊은 고뇌와 번뇌를 다 이해하기 힘들다. 마치 초등학생용으로 정선되고 순화된 위인전을 읽어나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간송의 심정을 적절한 언어로, 적절한 지점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바뀌어 간송의 마음을 표현하는 작가의 깔끔한 대변과 적절한 설명은 읽는 몰입감을 끌어낸다.

돈이 있다고 해도 누구나 할 수 없었던 일. 돈은 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자에게 주어졌을 때 그 가치는 빛을 발한다. 간송에게 주어졌던 많은 돈은 간송에게 주어졌기에 문화재로 바뀌어 우리나라에 남았고 후손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남겨 우리나라 문화재 특히, 미술사의 연구는 간송의 문화재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라 한다.

간송의 믿음직스러운 행복에 반해 표지에 서 있는 20대의 전형필 사진을 책을 읽다 다시 보고 다시 보고 하였다. 곱상하고 순하게만 생긴 청년의 어디에 그런 뚝심과 결단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우리나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사람, 일제강점기에 위인을 찾고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더 많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간송에 대해 들어보긴 했는데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문화재 수집과 그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간송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2021.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