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다

대학원 시험 2 - 시험 당일 오전

by 지금은 함박꽃

평소와 다를 바 없이 6시 30분, 스마트 워치의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대학원 구술 시험일이구나. 일단 씻자.'


화장실에 들어서서, 어제 자기 전에 생각한 머리 염색을 위해 거울 속 나를 들여다봤다. 귀밑머리가 도드라지게 하얗다. 부모님 모두 30대부터 서로에게 염색을 해주셨다. 일찍부터 나기 시작한 흰머리는 부모님 모두에게 물려받은 유전의 힘이다.


20대부터 브리지 넣은 것처럼 난 흰머리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다가 헤나염색을 집에서 하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었다. 생수에 헤나 가루를 넣고 마요네즈 농도로 잘 갠 후에 두피에 닿을 염려 없이 쓱쓱 문지른 후 마르지 않게 쿠킹랩으로 돌돌 감싼 후 1시간 후 잘 헹구어 주면 된다. 적고 보니 복잡하지 않은 이 과정이 싫어서 염색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오늘도 시험 당일이 되어서야 귀밑머리 흰머리가 신경 쓰일 정도니 너무도 무심한 나다. 점심은 거를 요량으로 아침을 좀 거하게 먹고 점심용으로 단백질 가루를 챙겼다. 이제 좀 책을 봐야 할 텐데 도무지 무슨 책을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하니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음 진정을 위해 평소 주말 아침대로 빨래 돌리고, 부엌 정리를 했다. 머리 헹구고 나니 출발할 시간이다. 다소 긴장이 된다. 작년 여름 2박 3일의 연수를 동료와 받은 적이 있어서 동료 차로 방문한 적이 있는 대학이지만 고속도로 위를 나 혼자 운전해서 가기는 처음이다.


내비게이션의 도착 단추를 누르고 출발이다. 알싸하게 찬 공기가 싫지는 않은데 두통이 좀 있다. 떨어진 기온 탓에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난 것 같다. 현실과 좀 동떨어져 있는 듯한 멍한 상태. 무엇을 봐도 내 일이 아닌 듯한 집중이 안 된다.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다. 앞지르기 차선은 두려워 진입이 어렵다. 큰 트럭이 앞에서 연이어 달리고 있다. 용기 내 1차선으로 들어갔다. 줄줄 그냥 앞차 따라 달린다. 살짝 졸음도 온다. 켜 놓은 라디오 주파수가 잘 안 맞는지 지지거리는 잡음이 심하다.


'아, 장거리에 음악이라도 준비했어야 했는데...'


고속도로를 벗어나니 길가의 억새가 투명한 가을 속에서 한들거린다.

'아, 무사히 왔다.'

일단 감사하다.


대기실 입실 시간은 되었으나 내가 지원한 과의 대기실은 다른 과의 지필 시험장이었나 보다. 아직 시험지 수습에 입실 금지다. 수험표와 신분증 대조, 큐알코드로 간단한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코로나 관련 자가진단을 체크한 후에 밖에서 10여 분 대기. 의자에 나의 수험번호와 이름이 붙어있다.


이 중 몇 명이 같이 공부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몇 명을 뽑는지 잘 모른다. 지역 안배 등의 복잡한 과정이 있다. 어찌 되었던 합격이면 감사한 일이다.


아직도 나는 현실에 있지 못하고 있다. 머리가 윙윙윙 현실감이다. 마치 영화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신분증 검사에 응하고, 자리에 앉아있자니 오늘 나의 경쟁자이자 같은 학문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료들이 보인다.


먼저 시험장에 입실한 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어떤 자료도 보지 못하게 한다.

'망했다. 사지선다 시험도 아닌데... 좀 심한데!'

평소 시험 앞두고 본 몇 개의 주요 단어가 뇌의 구조화를 도와주는데 오늘은 이마저도 할 수 없다니.


합격에 대한 간절함 없이 실없는 생각을 해 본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모두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얼마나 멋진 프로그램이 나올까? 어쩌면 학교 현장에 도움이 되는 찐 자료집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난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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