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염부'
이 문학상은 고창의 역사 문화 자연 지리 인물 등을 소재와 배경으로 한 작품 중에서 엄선한다고 한다.
소설 '염부'는 1940년 일제강점기 아니 항일투쟁기 말,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이 팽배했던 시대에서 미군정기까지를 배경으로 혼란스럽고 안타까웠던 우리 땅의 역사를 간결하게 툭툭 내뱉는 서술로 독자를 잡아 끈다.
고창고보를 다니던 염부의 아들 염길과 고창에서 국일여관을 운영하던 일본인 딸 아케미를 중심으로 하여 잔잔히 흐르는 사랑 속에서 이 땅의 비극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이야기 속에서 나라 잃었던 시기를 살았내며 겪었던 고초와 사건들, 해방 직후의 우리나라 일반 백성들의 모습과 일본으로 떠나야만 했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며 연애소설이 아니라 역사소설로 '염부'를 인식케 한다.
1940년 여름, 어려운 가정형편에 염부의 아들 염길은 국일여관의 아들 마사토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의 누이 아케미를 만나게 된다. 일본인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고향은 조선의 고창이며 일본인 친구보다는 조선인 친구가 더 많은 일본인 조선거주 2세대 이야기.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나라 잃은 지식인 젊은이들의 모습을 염길의 친구 사거두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법조인을 꿈꾸는 김동수, 조선은행원 박하준, 이리농림학교를 다니는 최승근, 그리고 운봉초 교사 강염길 4인. 그들은 태어나 보니 일제의 통치하에 있었던 나라였고 한 번도 독립된 날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정치의 소용돌이의 변방인 작은 지역 고창에서 자라나 청운을 가슴에 품은 그때의 젊은이들 이야기.
유곽을 운영하는 아케미의 외삼촌 카이토와 김숙치를 통해 등장하는 정읍의 영모재와 동리정사 그리고 선운사의 금동불상 이야기를 통해 보는 우리 문화의 수모와 수호에 관련된 문화 이야기.
염길의 마을 친구 장필석의 강제 징용과 그의 사촌 숙영을 통한 위안부 이야기 등은 아무런 대의도 연관도 없이 나라잃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터로 내몰려야만 했던 힘 잃어버린 민족의 뼈아픈 이야기.
해방이 된 후, 일본에서 건너와 이 땅에 살던 일본인들이 어떻게 일본으로 돌아가야만 했는지, 일본인이 주축이 되어 돌아가던 행정과 산업에서 그들이 무조건 항복하며 일본으로 돌아간 후 우리나라는 어떤 혼란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
김충현을 통해 이념과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충돌. 가슴 아픈 여수와 제주의 간략한 서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이없는 죽음과 아픔에 마주해야 했는지에 대한 통탄의 이야기.
짧게 짧게 펼쳐지는 혼란 속 우리의 역사가 너무도 담담하게 그려져 아쉬운 듯 책장을 넘기게 되지만 나라 잃은 식민지의 아들 염길과 일본인 딸 아케미의 잔잔하지만 뜨거웠던 사랑 속에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이 땅의 비극에 눈을 뜨게 된다. 목숨만 건졌다고 그게 온전히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침략이었고 무엇을 남긴 전쟁이었는지 근본적 질문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염부'의 책을 덮으면서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사상적 대립과 무자비한 폭격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침략이고 폭격인가! 그곳에서 아직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을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에 잠시 눈을 감아 본다.
아케미가 평생 소중하게 간직한 소금처럼 그들이 살아있는 한, 평생 그립고 애달플 그 무엇이 남겨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