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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Nov 05. 2023

빛을 발견하다

드디어 인도! 

대한항공 기내에서 맞이하는 7시간 30분은 제법 긴 시간이었다. 델리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비자를 받고 난 후에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3시간 반의 시차를 느낄 새도 없이 공항 밖의 후끈 달아오른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본격적인 인도를 만난 느낌이었다. 공항에는 해피라는 현지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큰 키에 선한 인상이었다. 

첫날은 저녁에 도착했기 때문에 특별히 할 게 없다. 인도 도착 첫날 우리는 공항 근처에 머물렀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사방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격적인 인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공항 근처 고속도로 옆에는 호텔촌이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공항에서 불과 10여 분을 움직였을 뿐인데 이질적인 느낌이 확 든다. 그래도 아직 인도에 적응하기 전인지라 얼떨떨하기만 했다. 



스무 번째 인도에 왔다는 우쓰라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인도는 당신이 상상한 그 이상한 것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게 요지였다.      


“더러움을 생각했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더럽고, 이렇게 시끄러울 수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 더 시끄러운 현실을 직면한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니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앞으로 며칠 동안 만난 인도는 상당히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인도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관, 그리고 막연했던 인도를 좀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이른 아침 우리는 숙소 근처에 마이 발푸르 거리를 산책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으나 이미 마음은 인도를 제대로 보겠구나 하는 흥분이 앞섰다. 불과 1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드디어 인도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기에는 충분했다. 골목에 늘어선 집들, 집에 널어놓은 빨래, 그리고 이국적인 느낌의 사람들, 보이는 것 모두가 우리의 관심사였다. 골목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게의 음식들, 그저 서 있는 아이만 봐도 흥분할 정도였다. 


                                                         그리운 짜이 한 잔의 여유


우리는 골목길 가게에서 만난 짜이 한 잔과 함께 인도여행을 시작했다. 인도행에 앞서 짜이 이야기는 지겹게 들었다. 한 잔 가격은 10루피. 대략 170원 정도이다. 생강향이 톡 쏘면서도 달콤했던 짜이는 우리가 만날 인도가 달달할 것이라는 걸 예고하는 듯했다. 짜이가 뭐라고 다들 짜이를 마시며 긴장했던 표정이 한결 느긋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런 걸 짜이가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싶었다. 

우리가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곳이 인도라고 알려주었다. 자신의 민낯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친한 사이라도 그렇다. 그러나 인도에서라면 다르다. 스스럼없이 낯선 이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는 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날 우리가 접한 인도인들은 스스럼없이 웃고 카메라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행동했다. 만약 평화로운 아침을 즐기는 데 열몇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쳐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누구라도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피하고 싶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카메라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보조를 취한다. 마치 준비된 배우를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상대방을 의식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들은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소탈한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넨다. 우리의 삶은 단단해 보이지만 사소한 외부 충격에도 금이 간다. 특히 카메라와 같은 이질적인 기계 앞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특이하게도 이를 즐긴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동안에도 이럴진 데 앞으로는 어떨까. 우리는 남은 기간 얼마나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동네 탐사 중간에 우쓰라의 사진 강의가 이어졌다.      


“빛이 제일 잘 들어오는 지점을 찾아내는 거예요.”     


다시 빛 이야기다. 이전에도 사진 강의 때 여러 번 들었지만 현장에서 들으니 더 실감이 났다. 물병을 짊어지고 지나가는 사내 위에 눈부신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순간 길거리를 걷는 시민들 자체가 훌륭한 모델이었고 우리의 지지자였다. 우리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간에 그렇게 우리는 인도에 빠져들었다. 



동네에 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평소라면 보기 힘든 원숭이들이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것도 특이했다. 한 마디로 혼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 아침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에 우리는 다른 시간대의 문을 거쳐왔다.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인도라는 문 틈을 살짝 엿본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도가 주는 자연스러움과 하나 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엇을 바라거나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때로 우리는 살고 있는 세상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가끔 우리가 믿는 진실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한두 시간 만에 인도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곳이 어떤 동네이며,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아차리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 하나를 보았다. 엄마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 데 맨발이었다. 아이는 엄마와 같이 가는 게 신이 나는지 표정이 밝아 보였다. 그 순간 모자 옆으로 신발을 파는 리어카가 지나간다. 맨발의 아이를 새 신발이 가득한 리어카가 추월해서 앞서 간다. 그 순간, 나는 뭐라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맨발의 아이, 어쩌면 나는 인도에서 이런 아이를 지겹게 만날 것이다.           


아스팔트 위를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걸어간다 

자세히 보니 맨발이다      


달궈진 도로 위를 지날 때

날카로운 가시나 

깨진 유리병이 기다릴 수도 있다      


도로는 위험하니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아무도 그 간단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신발 리어카가 지나가면서 

달달한 새 신 냄새가 아이를 움켜쥔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도 언젠가 새 신을 가질 것이다 

       - 맨발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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