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꼬나메에서 나고야로 가는 길은 비교적 쉬웠다. 출발한지 40여 분만에 드디어 나고야에 도착했다. 주의할 점은 나고야 공항에서 나고야역으로 향하는 것은 메츠선이고,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JR선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공항에서 나고야로 가거가 나고야에서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JR선이 아닌 메츠선을 이용해야 한다. 메츠선에서 나와 왼쪽으로 100여 미터를 가면 JR선이 나온다. 여기서는 시내만이 아니라 신칸센 또한 탈 수 있다.
우선 급한 대로 나고야 역에서 알펜루트로 가기 위한 표를 끊기로 했다. 알펜루트 패스 중에는 전날 끊으면 20% 정도 할인을 받는 프로그램이 있다. 사실 나고야를 목적지로 삼은 것은 알펜루트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선 급한 건 표이기에 가장 먼저 표를 구해야 했다. 표가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표로 인정 받고 표로 검증 받는다.
하지만 기대에 부풀어 갔던 나고야 역 인포메이션에서의 답은 뜻밖이었다.
여행자들은 간혹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예를 들면, 공항에 갔더니 내가 가진 표가 정작 떠날 수 없는 표라거나 다른 곳으로 가는 마지막 차가 끊겼다는 식의 황당한 일 말이다. 나고야의 인포메이션에 교환권을 제시했을 때도 느낌이 비슷했다. 왜 있지 않은가? 어쩌면 안 될 것 같은. 흔히 알고 있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이번에 슬픈 일은 바로 내게 일어났다.
여러 번 확인했지만 그들의 말은 명료했다. 여기서는 표를 살 수 없다. 만약 사고 싶다면 나고야에서 이용 가능한 5일짜리 17,000엔짜리(일본에서 구입은 18,000엔)를 사야만 한다. 분명한 것은 그건 내가 사고자 하는 표가 아니었다. 나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인포메이션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알펜루트의 출발지인 나가노를 나고야로 착각한 내 탓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내가 여행기에서 신나게 읽었던 것은 나가노였지만 정작 나는 나고야에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그렇지만 나가노와 나고야는 다른 철자만큼이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물론 나고야에서도 알펜루트를 가는 패스 티켓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처음에 사고자 하는 패스가 아니었다. 현실 속에서 내가 원하는 티켓은 도야마나 나가노에서 파는 것이었건만 정작 나는 나고야에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나고야와 나가노가 뒤섞여 있었다. 결국 나로서는 나고야에서 나가노로 가거나 도야마로 가는 방법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이런 망할!
오후에는 온전히 나고야에서의 시간이었다. 딱히 하루 남짓한 시간 동안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고야성으로 가기 위해 제일 급한 건 나고야 시내 1일권 구입이다. 일단 1일권을 끊고 나면 나고야에서의 하루 동안의 이동은 자유로워진다. 나고야에서는 500엔짜리 메구루 버스 1일권이 있다. 하지만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600엔짜리가 좀 더 사용이 편하다. 나고야 역 근처에서 one-day ticket(600엔짜리 1일권)을 끊고 나니 어느새 마음이 편해진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권을 가지면 든든해진다. 이것만 가지면 오늘 나는 나고야에서 자유다!
1일권을 가지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나고야성이었다. 나고야성은 지하철 메이조선을 타고 ‘시야쿠쇼마에’((市役所駅)역에서 하차하거나 나고야 관광 루트버스인 ‘메구루’를 타고 ‘나고야죠’에서 하차하면 된다. 지하철역에서 나온 상태에서 성을 보면서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꺾어 해자를 지나면 나고야성의 동문이 나온다. 관광객은 성의 정문과 동문, 두 군데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나고야성은 나고야 1일 교통패스(일일승차권)을 가지고 있으면 할인을 해준다. 개원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혼마루어전은 오후 4시까지 입장)이기 때문에 너무 늦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현재 나고야 성을 대표하는 천수각은 목조 복원을 진행하고 있어서 관광객이 올라갈 수는 없다. 동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니노마루 정원이 보인다. 처음 만들어진 이후 가레산스이(돌과 모래로 풍경을 표현하는 양식) 회유식 정원으로 바뀌어 전하는 곳이다. 정원 한켠에 아담한 찻집 하나가 있어 관광객을 맞는다. 이곳을 지나면 나고야성이 위용을 자랑한다.
나고야성은 오사카성과 더불어 일본 3대성에 속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1612년 당시 에도 막부의 장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성한 성으로도 유명하다. 1609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진영에 대한 방빕책으로 나고야성을 세우게 한다. 이후 나고야성은 고산케(도쿠가와의 3대 가문)의 필두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거성으로 변영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공습으로 혼마루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지만 1959년 현재의 나고야성이 재건되었다.
나고야성에는 덴슈카쿠의 용마루에 장식되어 있는 장식 기와인 긴샤치(kinshachi)가 유명하다. 상상의 동물로서 물을 부른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화재 방지를 위한 주술적인 목적을 가진 샤치는 얼굴이 호랑이와 비슷하고 등에는 가시가 돋친 상상의 물고기이다. 목조 건물의 특성상 화마를 조심해야 하고, 이를 예방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샤치는 우리 조상들이 경복궁에 해태를 설치한 것과 비슷한 의미라 할 수 있다.
도쿠가와 가문은 자신들의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남쪽(암컷)과 북쪽(수컷)에 장식기와인 샤치를 각각 설치했다. 소요된 금의 무게만 해도 에도시대 초기의 대형 금화로 환산하면 1940량이나 되었다고 한다. 동서양의 지배자들은 건축물을 세우면서 이를 상징할 수 있는 조형물을 설치하고자 한다. 이 정도 규모라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성에 설치했던 규모와 크기면에서 견줄 만하다. 오늘날 남쪽 암컷 긴샤치의 금무게는 43.39㎏, 북쪽의 암컷 긴샤치의 금무게는 44.69㎏에 댈한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저렇게 거대한 조형물이 어떻게 건물에 올라갈 수 있을까할 정도로 장대한 느낌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나고야성 입구를 그 중, 가장 내 눈길을 사로 잡은 건 혼마루어전(本丸御殿)이었다. 이곳 역시 161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것으로, 30개가 넘는 방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자금성의 높게 솟은 성벽이 베이징을 처음 방문하는 사신이나 이방인들과 오랑캐들에게 장엄한 면을 보임으로써 상대적인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내게 나고야성의 혼마루어전 또한 그랬다. 당시 막부를 찾았던 지방 토호나 방문객은 이곳에서 대기해야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과 달리 호화롭고 찬란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나고야는 아이치현에 속해 있다. 예로부터 ‘장사의 도시’ 오사카, ‘물산의 도시’ 나고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고야는 장인이 유명한 동네이다. 관광산업은 대표적인 무형성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무형성만으로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눈앞의 실체가 없으면 그들은 전설만을 믿지 않는다. 여행객이 유명한 관광지를 가는 것은 그들 나름의 기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현지인들은 대표 상품을 만들고 홍보와 마케팅을 한다. 현지에 가서 크게 실망한다는 인어공주상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실망할지라도 인어공주상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그걸 보러 사람들은 거기 간다. 세계 도시들이 예전의 문화재를 복원하고 재현하려는 시도는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밖에서 보는 혼마루어전과 실제 내부에서 보는 것은 상당히 달랐다. 밖에서는 간단한 건물 한 채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부는 건물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 당시 혼마루어전을 찾은 외지인이나 방문객은 장엄한 위용 앞에서 아마도 한없이 위축되고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했으리라. 나고야의 통치자가 이렇게 거대하고 장엄한 건물을 세운 이유는 명백하고 분명하다. 지배자들이 토목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세력과 부를 과시하고 그 위엄을 대내외적으로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이 법접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위정자는 절제된 공간 내에서 수평과 수직의 조화를 이룬 혼마루어전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술과 현란한 예술작품 앞에서 방문객은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을 넘어 상하와 주종관계로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재확인하고 충성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을 수도 있다. 벽면 전체를 금박으로 채운 규모는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아니 압도할 뿐만 아니라 고혹적인 그 색채에 빠져들어 숨조차 멎게 한다. 그만큼 화려한 금박과 섬세한 붓놀림, 규모 면면이 보여주는 장대함은 예전에 내가 알던 일본이 아니었다. 그 화려한 면면이란, 돌아보는 내내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물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물은 당시 원형 그대로가 아니다. 지금 건물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공습으로 소실된 이후 2009년에 복원한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도면이나 사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복원한 건물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혼마루어전 역시 당시의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혼마루어전은 조선 후기 신사유람단에 일본 전역이 열광했다는 식의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각 방의 규모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그림 면면도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여백의 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색채의 화려함은 눈부셨다. 특히 몇몇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예전에 민화를 그려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멋졌다.
내게는 나고야 성의 규모나 구조물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혼마루어전의 규모나 섬세함면에서 뛰어났기 때문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고야성 인근에는 전통음식을 주로 하는 긴샤치 요코촌(요시나오 존)을 만들어두었지만 실제 손님은 별로 없는 눈치였다.
나고야성 다음으로 찾은 곳은 우나후지였다. 하기시베쓰인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서면 된다. 4,000엔을 넘는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이곳은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우나후지가 호쿠리켄보다 더 맛있다는 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에서 내려 우나후지까지 찾아가는 길은 멀고 힘들었다. 단연코 가깝지는 않았다. 걷다 보니 어느새 구글 지도에서는 우나후지가 근처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순간 다 왔구나. 도착도 하기 전에 사람들이 올렸던 근사한 맛이 떠올라 입에서는 침이 고였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히 여행기에서 보았던 사진에는 대기 줄이 만만치 않았으나 가게 앞은 텅 비어 있었다. 알고 보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휴일날이었다. 맙소사. 정말 맙소사다. 힘이 쫙 빠졌다. 내가 워낙 낙담하다 보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은 안스러운지 사탕을 가져다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라면 이곳을 방문하기 전 꼭, 확인하시라. 휴일일 수 있으니.
다음으로 정한 목적지는 아츠타 호라이켄의 히츠마부시, 즉 장어덮밥이다. 장어덮밥이 뭐라고 이런 유난을 떠는건가, 가는 내내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 먹을 수 있다면 오늘 고생한 건 다 용서하겠다!”라고. 원래 가고자 했던 식당은 10층에 있었건만 문제는 어디에도 안내 표지가 없었다. 그렇게 유명한 식당이라면 요란하지는 않더라도 표지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라면 식당이 10층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 안에 작게 표시가 있어서 혼란스러울 수 있다.
식당 마감시간이 8시 30분이었기에 마음이 급했다. 비록 저녁시간을 약간 넘기기는 했으나 가게 앞 의자에는 몇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다. 이미 가게 안은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마침내 나온 식사. 슬쩍 보니 옆자리에 앉은 베이징에서 온 친구도 나와 마찬가지로 음식에 대해 경건하게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있었다. 우리 시대의 음식에 대해 바치는 통상적인 인사법이랄까!
가게에서 권하는 히츠마부시를 먹는 방법은 3가지였다. 일단 장어 자체를 맛보는 것, 둘째 소스를 찍어 먹는 법, 셋째는 파를 섞어서 만든 양념을 비벼서 먹는 방법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먹는 방법을 달리 소개함으로써 손님을 배려했다고 할 수 있다. 가게에서 그런 절차를 만들어두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이다. 각기 다른 맛을 맛볼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우선 양념을 발라 노릿노릿하게 구워진 장어는 눈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입안에 넣자 바삭하게 구워진 첫맛이 입맛을 사로잡았다. 잘 구워진 장어 고유의 맛이 입안 가득 번졌다. 우선 맛있다, 라는 생각이 아무 대책 없이 마구 들었다. 일단 저녁시간대를 지났으니 배가 고픈 시간대이고 새벽부터 나선 여행이라 힘들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맛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옆자리에 앉은 베이징에서 왔다는 친구도 맛있다는 말을 연신했다. 레귤러 사이즈를 시켰지만 언뜻 보기에도 음식의 양이 적지 않았다. 최근 들어 양이 줄어서인지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함께 제공되는 뜨거운 오차는 장어맛을 깔끔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내 생각에는 오차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서 궁금한 나머지 직원에게 의자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체 얼마나 기다리는지에 대한 답을 직원은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온몸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단적으로 제법 넓은 가게 앞 공간 전체를 손님들이 또아리처럼 길게 줄이 늘어선다는 말이었다. 직원이 말한 평소 밀릴 때 기다리는 줄의 길이는 내가 짐작했던 상상 이상이었다. 마치 여기서 음식을 먹으려면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였다. 도무지 상상은 가지 않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내 눈앞에 엄청난 수의 의자가 놓여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