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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자신을 만나는 법

by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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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시폭포를 찾아서


꽝시폭포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우리가 버스를 탄 시간이 11시 30분이었는데 처음 탄 승객은 8명이었다. 기사는 여기에 호텔에서 예약을 한 4명을 태웠고 중간에 다시 손님을 하나 태웠다. 이제 더는은 안 태울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마지막으로 손님 둘을 태움으로써 15명, 그렇게 만차가 되었다. 이렇게 곳곳을 돌아다니며 손님을 태우느라 든 시간만 해도 거의 30분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고객의 택배 주문까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막힌 프로의 솜씨였다.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라오스 기사들의 탁월한 장사 기질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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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표지판을 따라 오솔길을 오르면 군데군데 꽝시폭포가 만들어놓은 멋진 풍광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떻게 이 건기에도 이렇게 풍부한 수량을 자랑할 수 있는지 신기한 일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풍덩 빠져들고 싶을 정도로 푸른 에메랄드빛 물색이 근사하다. 일부 방문객은 아예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속에서 느긋하게 수영을 하기도 한다. 평소에도 물에 들어가는 이가 많은 모양인지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탈의실까지 마련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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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올라가 맞이한 꽝시폭포. 실제 눈앞에서 맞이하는 폭포의 규모는 엄청나게 컸다. 어림짐작으로도 100여 미터는 됨직한 높이에서 수직으로 내려꽂히는 물살이 장관이다. 위에 만년설이라도 있다면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린다고 하지만 산 자체가 이 정도 수량을 머금고 있다니 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중간에 만나는 소규모 계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산속에 엄청난 폭포가 숨어 있다니, 건기에도 이 정도이니 우기에는 그 위세가 더 대단할 것이다. 대신 지금의 파란 옥색 물빛 대신 흙탕물로 변해버린 모습을 봐야겠지만. 물론 그런 이는 없겠지만 중간에 한 번씩 만나는 작은 규모가 꽝시폭포의 전부라고 믿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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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으로 돌아와 여행자 거리의 코코넛 가든에서 출출한 배를 달랬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전날 여행자거리를 돌아볼 때,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식당이었다. 어제 저녁, 아들이 일부러 지나쳐오다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 가서 사진을 찍고 올 정도였다. 라오스 전통음식을 다루는 레스토랑이어서 그런지 가격대가 만만치 않았다. 식당에서는 특이하게도 버펄로 스테이크를 팔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여행지에서 비싼 음식점치고 마음에 드는 맛집은 없었다는 우리 가족의 씁쓸한 추억을 확인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모 방송인도 다녀갔던 집이었고, 정말 분위기는 끝내주었는데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식당은 맛이 있어야 한다. 유명하다고 함부로 덥석 들어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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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이 짙어 지면 슬슬 야시장이 열린다. 야시장을 찾는 또 다른 재미로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야시장 근처에 늘어선 포장마차에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코치를 비롯한 각종 튀김이 즐비하다. 옷가지와 자수 용품, 각종 기념품이 점거한 야시장 입구 근처에도 온갖 먹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먹자 시장이 있다. 이미 구워놓은 생선이나 고기를 고르면 잠시 후 지글지글한 소리와 함께 먹음직한 음식이 눈앞에 대령한다. 입가심으로 입구에서 파는 과일가게에서 좋아하는 과일을 골라 후식으로 먹으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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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밧, 세상의 느긋함을 잠시 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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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새벽부터 서둘렀다. 새벽에 이루어진다는 탁밧을 접하러 가기 위해서이다. 아내와 자전거를 빌려 탁밧이 이루어진다는 곳으로 길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여러 명이 옹기종기 앉아서 스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맨손인 우리를 보자 장사하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찹쌀밥이 든 바구니를 부랴부랴 건넨다. 탁밧은 사원에 거주하는 스님들에게 지역 주민들이 정성스럽게 공양을 바치는 의식이다. 아마 초기에는 굶주리는 이들을 돕기 위해 스님들이 시작했을 테고, 이어 마을 사람들도 동참한 일이겠지만 이제는 관광객들도 함께하는 주민 행사처럼 변했다.



보통은 조마베이커리 앞에서 시작하여 국립박물관까지 행렬이 이어지며, 호텔 직원에 의하면 동네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방식은 간단하다. 근처 사원에서 나온 스님들이 순례하듯이 지나가면 준비한 사람들이 음식 공양을 하는 방식이다. 마을 사람이라면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관광객이라면 인근에서 파는 찹쌀을 사서 공양할 수 있다. 도로에 줄지어 늘어앉은 사람들은 스님들이 지나가면 자신의 음식을 조금씩 떼어 바구니에 넣어준다. 그러면 스님들은 그 음식을 다시 옆에 앉은 지역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준다. 우리 옆에서도 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서 그 음식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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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밧에 대해서는 관광객용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다지만 그러면 어쩌랴. 우리는 이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비난하기로 따지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다소 보여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신이 받은 음식을 기꺼이 이웃과 나눈다는 그 마음만으로도 라오스 사람들이 어떻게 그 모진 격변의 세월을 견뎌왔는지 실감이 났다. 탁밧에 참여한 시간은 불과 몇십 분에 불과했지만 그 경건함만은 오래 남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줄지어 늘어선 스님들이 아침을 줍는다

덩달아 따라온 사람들도 아침의 정적을 받는다

스님이 받은 복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슬그머니 나눠 준다

스님의 하루 치 새벽 공양이

눈 맑은 아이의 비닐봉지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잠을 설치고 나온 아이의 아침이

새벽 댓바람부터 신산하다

- 새벽 탁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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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밧을 마친 후, 일출을 보기 위해 푸시산으로 향했다. 아직 어두워 어슴푸레한 계단을 눈으로 더듬어 올라가는데 입장료를 받는 곳이 나온다. 1인당 2만 킵. 라오스 물가를 고려하면 절대 적지 않은 금액이다. 정상에 올라가니 이미 몇 명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아쉽게도 구름 때문에 기대만큼 그림이 안 나온다. 하지만 아침 풍경의 라오스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 걸 위안으로 삼고 내친김에 여행자 거리를 지나쳐 좀 더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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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친김에 메콩강을 따라 자전거로 달려 보기로 했다. 라오스를 관통하는 메콩강은 라오스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젖줄이자 어머니 같은 강이다. 우리에게 섬진강만큼이나 메콩강은 느긋하며 편안하게 라오스 산하 곳곳을 흐르며 골고루 생명을 거두어 먹여 살린다. 어부는 메콩강에 그물을 드리워 물고기를 잡고 농부는 메콩강을 끌어다 농사를 짓는다. 강가에서 메콩강을 보고 있노라니 한가롭기 그지없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강변에 정박한 배를 정비하는 손놀림이 부산하다. 오늘도 누군가는 저 배를 타고 가족을 만나고 생계를 꾸리리라. 우연히 배를 얻어 탄 여행객은 가슴에 평생 라오스를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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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뜻밖에 아침시장을 만났다. 아침시장에서는 화려한 야시장과는 또 다른 건강한 시민들의 민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우연히 만난 시장 상인들의 모습과 장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활기찼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흘러넘쳤으며 시장을 지나오는 내내 건강히 잘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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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탁밧에 이어 자전거 산책과 숙소까지 옮긴 터라 다들 오후에는 푹 쉬기로 했다. 나는 막간을 이용해서 숙소에 인접한 국립박물관을 다녀오기로 했다. 입장료는 외국인은 만 킵, 자국민은 삼천 킵. 차별이 아니라 자국민에 대한 배려이리라. 이건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갔던 탓 루앙이나 왓 호깨까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하지만 이 또한 불교문화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왕궁을 국립박물관으로 바꾼 내력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대부분 전시품은 국왕이나 가족과 관련한 유물이었다. 해설사의 영어 설명을 들으며 잠시나마 라오스의 역사를 맛볼 수 있었다.



인생 일대의 일몰을 만나는 순간

저녁 석양 일몰 시간이 6시 47분이었기 때문에 그전에는 어떻게든 푸시산 정상에 올라야만 했다. 전날 방비엥에서 함께 왔던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에는 하늘이 온통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만약 인생 장면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침 구름 때문에 해를 제대로 못 보아서인지 저녁 일몰만은 꼭 봐야겠다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침과 달리 저녁에는 푸시산을 찾는 이가 제법 많았다. 출구에서 아침에 끊었던 입장료를 보여주니 오케이 무사통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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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착하니 아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람 수가 어마어마했다.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헛되지 않았는지 해는 하늘을 조금씩 물들이며 세상을 불태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을 보았더라면 누구라도 카메라건 핸드폰이건 찍을 만한 걸 가지고 있었더라면 저절로 손이 갔을 것이다. 산 왼쪽으로는 사람들이 밥을 짓는지 연기가 드문드문 피어오르고 오른쪽으로는 메콩강이 검붉게 물 들어가고 있었다. 강물을 따라 배 한 척이 세월을 낛듯 느긋하게 유영을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감동 그 자체였고,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한 폭의 시 같은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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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안타까웠던 일은 자신만의 사진을 찍기 위해 떡하니 사람들 전면에 나서서 특정 공간을 독점하는 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황홀한 일몰 대신 자신의 엉덩이를 봐야하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야유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각대까지 펼쳐가며 여유 있게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이제 곧 사라질 한 점의 빛을 향한 그의 욕망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했다. 몇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만의 욕심을 위해 그 긴 시간을 독점하면서 심지어 미안하다는 표정이나 인사도 없다니.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게 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 냄새 그리운 야시장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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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니 어김없이 오늘도 야시장은 열려 있다. 벌써 3일째 보는 야시장이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물건보다는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전날에도 우리는 야시장 순례에 나섰다. 방비엥 야시장이 작고 오밀조밀했다면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도매시장 같은 느낌, 그리고 비엔티안의 야시장은 도심의 시장 한구석을 보는 느낌이었다. 야시장을 다니다 보면 흥정하는 재미, 물건 사는 사람을 곁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참 신기하게도 야시장에만 있으면 한 시간, 두 시간이 훌쩍 간다. 우리는 장 마감시간에 닥쳐 여름철에 입으면 딱이라는 냉장고 바지와 치마를 9만 킵에 흥정하여 샀다. 10만 킵에 그냥 사지 그러냐는 내 말에 아내는 그래도 비싸게 사는 것이라고 되려 핀잔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엔티안 야시장에서는 우리가 깎아서 산 가격보다 훨씬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라오스 재래시장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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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에서 며칠째 눈 구경만 하다가 마지막 날이고 해서 뭔가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있었다. 스님 몇이 홀연히 사라지는 느낌의 그림이었는데 그동안 보았던 그림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이걸 사고난 후의 처치였다. 덜컥 산 후 집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둔다면 안 사느니 못할 터였다. 그림을 그린 화가 대신 가게를 보고 있던 아내가 20만 킵을 선뜻 18만 킵으로 깎아주었지만 끝내 결단을 못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대신 평소 눈독 들이던 마그넷을 사기로 했다. 현지 물건이나 기념품이야 다른 곳에 가서도 살 수 있지만 이런 마그넷은 현지가 아니면 사기 어렵다. 그런데 공산품을 생산할 여건이 부족해서인지 마그넷 가격이 다른 물건에 비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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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그넷을 사기로 마음먹은 가게 주인은 몇 번 지나갈 때 보았던 젊은 친구다. 몇 번 지나다 우연히 본 것인데 시간 날 때마다 마그넷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문제는 한눈에 보기에도 그림이 영 서툴러서 쉽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순박한 표정으로 가격을 깎아주는 것이 고맙기는 했지만 가짓수는 많은데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어렵사리 하나를 고르고 좀 골라 달라고 했더니 비슷한 풍으로 몇 개를 권한다. 어렵사리 두 개를 골라 나만의 추억을 간직하는 것으로 루앙프라방 야시장의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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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비엔티안 등대카페 사장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라오스 사람들이 다른 동남아에 비해서 순하고 착하기는 한데 조금은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딱 시키는 것만 하는 편이라서 일일이 이야기를 하면 미안하다면서도 또 잊어버려서 고민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내게는 국민성 자체가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로 들렸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삶, 자연에 순응하면서 딱 그만큼 만의 삶에 만족하는 라오스인들은 물질 자본의 풍요로움이 부럽기는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목숨을 걸고는 싶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전쟁을 치르면서 눈치 보기에 익숙해져서 그럴 거라고도 했지만 사람의 타고난 순박함이 어디 그런 걸로 가려지는 것이던가. 짐작하건대 만약 라오스인들이 자본의 맛을 보는 순간 그 순박한 웃음은 가식적으로 바뀔 것이며 사회는 더 삭막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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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야시장 마지막을 정리하는 모습조차 눈에 정겹게 들어왔다. 하루의 노곤함을 정리하고 빨리 집에 돌아가 쉬려는 듯 물건을 챙기는 손길이 빠르다. 빼곡하게 걸려 있던 물건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커다란 양철상자에 실어서 손수레로 옮기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연신 늘어서 있던 가게는 불과 10여 분만에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미 파장에 들어선지라 시장 안은 어수선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물건을 싸던 화가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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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 야시장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그림이 있었다

승려 몇이 빛 속으로 사라지는 풍경이었다

한번 무심히 스쳐 지나갔지만

생각이 나서 다시 돌아갔다

그림 가격은 20만 킵,

18만 킵까지 해준다는 아낙은

칭얼대는 아이를 도로 위에 누이고 있었다


옆에 물끄러미 앉아있던 화가인 남편은

수시로 기침을 해댔다

마음에 여유 한 점 없는 내가

이 그림을 가져도 좋을까

어떻게 가져가나 하는 생각을 하는 내내

한켠부터 야시장이 닫히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그림을

한 장씩 모으는 사내의 투박한 손이

잠깐 흔들렸다

적지 않은 이들이 왔다가 가지만

대부분은 가격만 물을 뿐이다

사는 이는 드물다


순한 눈매를 가진 아내와

여리디여린 아이의 한 끼를 위해

그는 오늘도 루앙프라방의 밤을 불태울지도 모른다

밤이 길어도 그는

묵묵히 메콩강을 그리고

숲으로 떠난 스님을 그리고

아직은 오지 않은 자신의 빛나는 내일을

마저 그릴 것이다

- 루앙프라방의 야시장 화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잠시 눈길이 팔렸던 대나무를 깎아 만든 핸드폰 케이스가 생각난다. 방비엥에서부터 아내가 은근히 탐을 냈는데 결국 못 샀다. 젊은 처자가 라오스의 풍경을 그리던 거라 사고 싶었는데 다음 여정이 있어 짐이 늘어난다고 미루다 보니 그걸로 끝이었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약간 모자라고 아쉬워야 더 그리워진다. 힘들고 고생했던 기억은 추억으로 바뀌고, 떠나기 전보다 팍팍했던 삶이 기다릴지라도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것 때문일 게다. 우리가 밤새 설레는 마음으로 또 다른 여행을 기다리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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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에서 마지막 날, 우리 모두는 잔돈까지 탈탈 털어서 남은 돈을 다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아내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여보, 지갑에 10만 킵이 들어있네. 어쩌지, 다시 가라는 신호인가봐!” 아내의 말마따나 조만간에 다시 한 번 더 라오스에 가야할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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