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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네 피싱 빌리지, 해산물 888

by 산들

소박한 베트남 어촌 풍경, 피싱 빌리지

레드샌드듄을 뒤로 하고 가는 곳은 피싱 빌리지. 냄새와 깨끗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일부 여행객은 피하기도 한다는 게 바로 피싱 빌리지이다. 사실 이곳을 관광지로 만든 사람 생각에는 볼 만한 거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슬쩍 스치며 지나갈 뿐이다. 일부는 지프차 투어 코스에 포함되어 있지만 패스하기도 한다고 한다. 사실 여행객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생선을 산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처리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관광객의 행동을 무시하거나 관심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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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관광지 성격으로는 좀 힘들지만 시골 어부의 삶의 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여행지에서 그 동네의 진솔한 삶을 보기 위해서는 시장에 가라는 말이 있듯이, 해변을 끼고 있는 무이네 사람들에게 어촌의 삶은 일상이며 운명이다. 실제 그들은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고기를 낚는 어부, 생선을 손질하는 아낙, 물건을 판매하는 아낙 등이 모여서 피싱 빌리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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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바다는 생존의 배경이자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날씨가 맑고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지만 그걸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하루 풍랑이 일어 배가 뜨지 못하면 그날은 공치는 날이다.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이라면 그저 날씨탓을 하며 쉬겠지만 어부는 다시 어구를 손질하고 다음 출항을 준비해야 한다. 잠시 스치며 들렸다 지나가는 여행객으로는 도저히 체감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상인들이 여행객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것은 그 중에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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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무이네의 화이트 샌드듄과 옐로 샌드듄이 자연의 광대함과 모래사막의 척박함을 보여주였다면 피싱 빌리지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무한한 생명력을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바다 사람들에게는 바다 사람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베트남 어촌에 사는 이들이 매일매일 바다에서 만나는 펄펄 뛰는 생선과 싱싱함을 느끼게 하는 해산물이야말로 여기 사는 이들에게는 축복이자 은총이다. 어부는 그물을 손질하고 그 곁에서는 갓 잡은 생선을 손질하고 분류하는 손길이 부지런하다. 그들이야말로 건강한 땀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매일 아침 경험하고 있으니 얼마니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 아닌가. 이는 고기를 잡는 어부만이 아니라 생선을 손질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요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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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요정의 샘이다. 옐로 샌드듄에서 무이네 방향으로 도로를 달리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 서면 입구가 나온다. 만약 입구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위치이다. 입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해서 이곳이 맞나 싶게 의문이 든다. 입장료를 내는 곳도 없이 바로 계곡이 나오고, 그 계곡을 사람들이 걷고 있다. 여기가 바로 요정의 샘이다. 심지어 티켓을 파는 곳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부는 입장료를 받는 곳에서 다시 되돌아가 끊기도 한다. 1인당 입장료가 15,000동. 하지만 걷고 있다 보면 그 이상의 값어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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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서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바지를 걷거나 맨발 차림으로 계곡을 걷기 시작한다. 깊이가 불과 10센티 정도에 불과한 계곡물이 각별하게 와 닿는 것은 양쪽의 풍경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도 우기 무렵 물이 불면 제법 수위가 오르는 모양이다. 주변에는 수위가 높아질 때를 알리는 표식이 있다. 그렇다고 거창할 정도는 아니고 무릎 정도에 불과하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마치 외계의 한 행성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이질적이다. 아마도 이곳의 특이한 자연지형은 지질학적인 문제이겠지만 문외한이 보기에는 석회석의 영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천연동굴에서 흔히 보이는 그런 풍경이 이어진다. 처음에 신기했던 풍경도 비슷비슷한 지형이 반복되자 흥미가 덜하다. 앞에 가던 이들이 내려오기에 물어 보니 자신들도 가다가 그냥 내려온다 했다. 이들처럼 한참을 가도 끝까지 가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가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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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 간극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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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와 달리 동남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이런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기는 하다. 물론 시간을 가늠하는 척도야 시계지만 그와 무관하게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마음의 여유 때문일 것이다. 묘하게도 라오스나 말레이시아, 베트남, 네팔을 돌 때마다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마다 마음이 편안했던 이유가 있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바쁘게 뛰지 않아도 괜찮고, 조금은 나에게 시간을 더 주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넉넉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잔뜩 긴장을 해야 하는 유럽과 달리 동남아 여행을 할 때면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다. 아니 풀어지다 못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느긋해진다. 파리나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는 소매치기 걱정을 하느라 마음을 졸이고, 생각보다 비싼 음식값이며 여행경비 탓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동남아에서는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트랑의 짜아모아 식당 앞에 사진을 찍을 때 오토바이 날치기를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를 보기는 했지만 아하, 그렇구나 정도였다. 그것 때문에 바짝 날을 세워서 주변을 경계한다거나 조바심을 태울 일이 없었다. 그러니 여행이 넉넉할밖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베트남의 가성비는 살벌하기까지 했다. 예전에 삼십여 년 전 유럽여행을 다닐 때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거지처럼 지내다가도 헝가리에서 왕자처럼 지낸다는 말이었다. 그만큼 동구권에서는 경제적인 부담을 걱정하지 않고 풍족하게 생활해도 괜찮다는 말을 상징하는 말인 셈이다. 지금 내게 라오스나 베트남은 그때와 비슷하다. 여행에서 경비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다면 좋겠으나 여행자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이나 숙소에 호사를 부릴 수 있는 곳을 만나면 감사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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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맛집이 많은 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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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네에서는 신밧드 케밥집을 빼놓고 이야기 하기 힘들다. 케밥집인 신밧드는 그 규모가 크지 않다. 일하는 직원 역시 많지 않다. 그럼에도 테이블이 꽉 찬다. 우리가 갔을 때는 좀 이른 시간이어서 손님이 많지 않기에 이 집이 유명하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잠시 후 손님으로 꽉 찼다. 식사시간인 점심 무렵이면 줄을 서야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단체 손님도 보이는 걸로 보아 여행사에서도 자주 찾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님 중에는 러시아인도 가끔 보이지만 대부분은 한국 사람이다. 맛있는 집은 오래 기다리는 것도 다 용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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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외에도 무이네에는 수제 버거집이 제법 많다. 가격대는 착하지 않지만 맛은 훌륭한 편이다. 수제 버거에는 오랜 시간과 함께 신선한 재료를 쓴다는 자부심이 들어간다. 자신만의 맛을 고수하면서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긍지와 자부심이 느껴지는 주인장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맛이 기대된다. 따뜻한 버거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우려는 사라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역시 택하기를 잘 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무이네 맛집으로는 해산물집을 빼놓을 수 없다. 무이네에서 가장 유명한 해산물 식당으로는 888이 있다. 무이네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보케거리에는 해산물 전문식당이 여러 곳이 있었다. 그중 무이네 888은 많은 한국인이 후회하지 않을 곳으로 손꼽는 식당이기도 했다. 다른 식당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이 식당만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손님들은 귀신같이 맛있는 집을 안다. 맛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 우리말에도 식당은 손님이 많은 곳을 택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첫날 갔을 때는 영업이 끝나는 시간대여서 먹지는 못하고 근처 수제버거집에서 버거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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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가족과 부푼 기대를 안고 식당으로 향했다. 마침 저녁 시간이어서 그런지 식당은 왁자지껄한 손님들의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가게 앞 수족관에 있는 싱싱한 수산물을 구경하다가 옆을 보니 새우와 가리비를 굽고 있다. 양념 소스가 듬뿍 입혀진 채 구워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슬쩍 안을 보니 이미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지만 중국인과 러시아인도 군데군데 보였다. 참 희한한 게 같은 음식이라도 북적이는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더 맛있는 법이다. 식당이 바로 옆에 해안을 끼고 있어서 파도치는 소리를 배경 삼아 식사하는 재미도 남달랐다. 해변 쪽 식탁에 앉았던 우리에게 바닷물이 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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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네 해산물이 가성비가 좋다는 이야기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맛 역시 만족스러웠다. 나트랑에 비해 반값이라는 해산물은 신선할 뿐만 아니라 양념까지 입맛에 딱 맞았다. 가리비 한 접시가 4만 동(2,000원)에 불과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타이거 새우에 로브스타까지 이것저것 시켜서 4명이 배불리 먹었는데도 한 명만 채 2만 원이 안 나왔다. 그중 로브스타는 한 마리를 잘라 마늘 양념과 크림치즈로 나눠 구워 나온다. 가족들이 제일 손이 많이 가던 가리비만 해도 추가로 몇 번을 더 시켰을 정도였다. 그날의 포만감 때문인지 우리 가족은 다른 지역에 가서도 그 집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는 신선한 해산물이 그리울 때마다 종종 무이네의 해산물집 888을 떠올렸다. 그것이 마치 무이네의 전부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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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이네의 사막을 보기 위해 간다. 무이네의 선라이즈와 선셋 지프투어가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무이네까지 가서 사막만 보고 온다면 무이네의 절반만 보고 오는 셈이다. 감히 단언하건대 무이네의 진정한 맛은 바다에서 온다. 만약 당신이 카이트 서핑을 배우거나 즐길 수 있다면 무이네는 당신에게 천국으로 다가올 것이다. 당신이 무이네 해변에 한나절만 있어 보면 그 말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이네를 즐기는 당신만의 방법

무이네의 장점이자 단점은 해변을 중심으로 늘어선 리조트들이다. 해변을 빼곡하게 메운 리조트에 머문다면 바다를 보면서 무이네를 마음껏 느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렇지 않다면 해변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거나 눈치를 보면서 리조트를 가로 질러 해변으로 가야한다. 우리는 숙소는 해변에서 길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그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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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의 카페를 이용했다. 음료 한 잔만 시켜도 바다를 보면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썬베드를 이용할 수 있다. 그 느긋함을 이처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니 감사할 수밖에.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한나절을 카페에서 지냈다. 아내는 책을 읽고 아이들은 쎈베드에서 낮잠을 자거나 해변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방파제를 엿보기 위해 쉼없이 넘실거리는 파도와 그 넓은 바다를 무대로 자유를 만끽하는 카이트 서핑을 원없이 보았다. 일정이 짜여진 패키지 여행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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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으로 무이네를 즐기기도 했다. 해질 무렵 무작정 해변으로 향한 우리 부부는 해변 위 모래사장에 걸터앉아서 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표정을 가진 이들과 사랑스러운 이들이 거기 있었다. 내 안을 채우고 있던 욕망과 교만함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해지는 모습을 배경으로 그들이 자연과 하나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보았던 해지는 모습이 자연의 장엄함이었더라면 베트남 무이네에서의 석양은 따사로움 그 자체였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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