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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Feb 11. 2024

죽지 않고 천 년을 사는 삶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면 가우디가 만든 구엘공원이 있다.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그의 후원자였던 구엘과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업은 바르셀로나 근교에 60채의 건물이 들어가는 대단위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사업은 망했고 3채만 분양되어 지어졌으며 구엘 역시 파산했다. 겉으로만 본다면야 완벽한 실패였다. 하지만 그가 만든 건축물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가신다. 



비록 지금은 구엘공원으로 불리지만 가우디의 빛나는 감각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계획대로 60채의 건물로 채워졌더라면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자연과 어우러진 몇 채의 건물은 한결 더 여유로워 보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의 천재성은 그가 남긴 건축물과 더불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엘광장 아래에 있던 3개의 분수였다. 가우디는 비가 내릴 때 빗물을 받아둠으로써 돌과 바위산이었던 공사 현장의 부족했던 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사람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구엘 광장의 <물방울의 운동장>에서 모인 빗물은 기둥의 흙과 자갈을 거쳐 정화되면서 쓸 수 있는 물로 탈바꿈한다. 그는 버려질 처지의 빗물을 저장소에 모아둠으로써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물이 넘치면 3개의 분수대에서 물이 흘러나오게 함으로써 물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우디는 100년 전에 오늘날 사용하는 자연친화적인 건축물을 이미 현실 속에 구현했던 것이다.  



가우디의 자연 사랑은 구엘공원에 사람과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면서 자연 상태의 나무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휘어진 길을 선택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인위적인 건축물이 아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늙어가는 나무 같은 건축물이었다. 100년을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카사비요트를 보고 있노라면 속도의 빠름보다는 느림의 진정성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공사현장에서 나온 돌을 이용하여 만든 축대를 보고 있노라면 입이 딱 벌어진다. 평범한 길마저도 그에게는 하나의 미학적인 조형물로 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구엘공원 벤치에 적용한 깨진 타일 조각으로 만드는 모자이크의 한 유형인 트랜카사디 기법도 기발할 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가 있다. 


그가 세상에 남긴 건축물을 보고 있노라면 이 엄청난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는 세상과의 금욕적인 삶을 택하는 대신, 자신의 천재성을 바르셀로나 곳곳에 남겨두었다. 이 모든 일이 장인의 마음과 손끝에서 어우러져 마침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평생 그는 신이 주신 곡선을 사랑했던 건축가였다. 그의 건축물 대부분은 곡선의 미학이 어우러진 최상의 조합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자연에서 만난 나무, 그 생명의 실체와 몬세라트산의 위용을 평생 가슴에 새기면서 자신의 건축물에 반영하였다. 그는 자신의 건축물 카사비요트, 카사밀라, 구엘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140년이 넘게 지어지고 있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꿈과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는 건축에 관한 한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았다. 친한 이들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인간에게 상처받고 무너져버린 그는 사그라다 파밀라아를 통해 자신에게 부여한 신의 소명을 담당하고자 하였다. 자신을 도구로 선택한 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수도자의 심정으로 그는 죽는 날까지 성당 건축에 매달렸다. 



비록 불운의 전차 사고로 생을 달리 하였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건축물은 인류의 자산으로 남아 우리 곁에서 성자와 같은 삶을 살았던 천재 건축가를 기리게 한다. 그의 천재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생기를 발한다는 점에서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있어 세상의 어느 부분은 더 환해지고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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