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by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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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들과 헤어져 집으로 가야 한다.

지금 아들은 전방부대에서 근무 중이다. 짧은 휴가를 나온 아들을 서울에서 만났다. 잠시 후면 나는 남쪽으로, 아들은 북쪽으로 향해야 한다. 만났을 때는 시간이 넉넉해 보이더니 헤어질 때가 되니 더 아쉽다.


10분 전만 해도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짠하다. 한겨울 전방은 얼마나 추울까. 옛날 야간 경계 설 때의 칼바람이 생각났다. 새벽에 보초를 서고 돌아와 내무반에서 옷을 벗을 때면 얼어있는 바람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최전방은 그 강도가 훨씬 더 세다.


아들은 군에서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마음은 놓이지 않는다. 부대 안은 공기부터 다르다. 내 기억 속 군대는 춥고 음습한 기운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그 공기를 아들도 매일 들이마실 것이다.


어느덧 아들의 군복무 기간도 끝나가고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박 3일 동안 아들과 함께 보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처음에는 근무하는 부대까지 같이 가려다가 근처 역까지라도 같이 가려고 했다. 확인해 보니 가는 데 1시간, 돌아올 때 1시간이 걸린다. 부대까지라면 왕복 네 시간, 근처역까지는 왕복 두 시간 거리였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이라도 먹여서 부대에 들여보내고 싶었다. 같이 간다고 하니 내가 다시 전주까지 가야 하는 걸 아는 아들은 손사래를 치며 막는다. 하기는 말년이라 곧 나올 테니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음 주에도 나올 테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련은 남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아들은 내 눈앞에서 떠나갔다.


헤어짐은 늘 그렇다. 시간이 남아 보일 때는 잠깐이고, 떠나는 순간이 다가오면 늘 마음은 급해진다. 그날 나는 알았다. 거리는 킬로미터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돌아보면 아들과는 참 많은 여행을 다녔다. 틈날 때마다 함께 돌아다닌 덕분에 아들과 같이 한 추억이 많다. 한편으로 딸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딸이 크기 전에 몇 번이라도 더 여행을 다녔어야 했는데 막상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가족끼리 길게 여행을 몇 차례 다녀온 덕분에 추억거리가 제법 많다. 어느 정도 크고 나니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일정 잡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아이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부터 더 그런 일이 잦아졌다. 나도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여행지의 낯선 도시에서는 생각이 늘 먼저 떠난다. 몸이 따라가기 전에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선다. 가끔 어떤 지명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련해질 때가 있고, 어떤 곳은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당시 그 공간의 추억이 고스란히 느껴질 때도 있다.


서울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내가 전주에서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먼저 시간을 계산한다. “3시간 반? 아니 4시간?” 그들에게 전주는 내가 달려온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가장 멀리서 온 사람’이 된다.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 데서 온 사람이었다. 아마도 멀리서 왔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좀 더 잘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나 보다. 일단 멀리서 왔다 생각이 들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와준 거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먼 공간이지만 가깝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그곳에 대해서 좋은 추억이 있다거나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강할 경우 그 공간은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물리적 거리로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지만 심리적인 거리를 생각해 보면 그리 멀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거의 평생을 전주에서 살아온 나는 가끔 사람들이 ‘전주’를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기를 기대해 본다. 먼 여행을 떠나고 돌아올 때 고속도로에서 내가 사는 도시 간판만 봐도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진다. 내가 그렇듯이 누군가가 지치고 답답한 날, 전주라는 이름을 한 번쯤 떠올렸으면 좋겠다. 푸근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허기질 때 더 생각나는 도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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