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봄을 알리는 바람꽃을 만나고 왔다. 초입부터 노란 복수초가 만개하여 세상이 밝아진 느낌이 든다. 제일 먼저 만난 것은 꿩의바람꽃. 올해 처음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다. 꽃대를 올릴 때 꽃봉오리와 잎 모양이 꿩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한다.
이어 산길을 가다 보니 너도바람꽃이 눈에 띈다. 바람꽃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아네모스(anemos, 바람)에서 유래했다. 너도바람꽃의 유래는 바람꽃들 이름을 붙여주고 나니 숨어 있던 바람꽃이 “저도 바람꽃이에요”라고 튀어나왔단다. 그래서 ‘너도 바람꽃이나 해라’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정갈한 너도바람꽃에 한참 정신이 팔려 사진을 찍다 보니 만주바람꽃 한 무더기가 눈에 들어온다. 꽃 이름과 달리 실제 꽃은 앙징맞고 환하다. 꽃 이름은 대부분 발견 지역이나 외형에서 비롯된다. 만주바람꽃도 만주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북방계 식물이다.
이왕이면 얼레지도 피었으면 좋았으련만 봉오리만 맺혔고,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햇빛이 순간적으로 꽃잎을 살짝 핥듯 스칠 때 꽃도 환하게 웃는다. 그래서 야생화는 햇빛이 살아나는 오후에 가장 아름답다. 산을 올라갈 때 잔뜩 움츠렸던 꽃이 내려올 때 활짝 핀 모습을 보는 일도 큰 즐거움이다.
꽃을 보러 가면 자연스레 사진을 찍는다. 대개의 풍경 사진과 달리 꽃을 찍는 시간은 비교적 짧다. 더 나은 장면을 찾아 계속 이동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대로 된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오래 기다리는 게 미덕이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은 일출이나 일몰, 안개 낀 풍경 등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몇 시간 내지 며칠을 온전히 바치기도 한다. 반대로 꽃 사진은 길어야 몇 분이다. 그 몇 분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사진을 엉망으로 찍지 않는 한 꽃 사진은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는 같이 사는 이의 권유로 야생화와 나무, 나비와 새를 만났다. 자연을 공부한 이력으로 치면 나보다 한참 선배이다. 이들을 만난 뒤 내 삶의 결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 옆을 지나가는 나비가 무슨 나비인지, 야생화는 어디서 피는지, 후루룩 지나가는 새에게도 한 번 더 눈길이 가게 되었다.
여전히 배울 것은 많다. 나무와 새소리도 아직은 어렵다. 그래도 지나가던 새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삶을 알게 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겨울 산행은 삭막하지만 봄 산행은 아기자기한 야생화를 만나는 재미에 지칠 줄 모른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생명이 깨어나는 봄이면 나도 그 안에 스며든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도 봄소식이 들리면 심장이 벌렁거린다. 다른 약속을 잡는 것보다 꽃과 약속을 잡는 게 급하다. 당신도 골짜기와 들판에 숨죽이고 있던 꽃들이 세상을 향해 아우성칠 때 잠시 귀 기울여 보자. 겨우내 가벼워졌던 나무들이 순한 잎을 머금고 물결 치는 순간을 기다리며 주말에는 가까운 산이라도 가보자.
봄이 어느새 성큼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