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부가 사는 법

by 산들


토요일, 미뤄두었던 차를 수리하기 위해 카센터를 찾았다. 10시부터 교육이 있어서 각자 차를 가지고 갔으면 했지만 아내는 내가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도착해보니 이미 대기해있는 차가 벌써 10대다. 접수요원 말로는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단다. 참, 곤란한 게 이렇게 막연하게 시간이 남을 때다. 교육에 늦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근처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을 먹고 오니 그제야 내 차례가 되었다. 심한 소음 때문이라는 내 말을 들은 기사는 먼저 육안으로 점검하기 시작했다. 차 떨림이 강한 소리를 내게 직접 들어보라고까지 청진기 비슷한 기계를 권하기도 했다. 우선 1차 점검한 기사 말로는 수리할 부분이 많단다. 표정을 보니 그것만이 아닌 듯싶다. 소음의 직접 원인인 콤프레셔 교체부터 소음기, 브레이크 패드까지. 비용도 적지 않게 나온단다. 만만하게 보다가 큰 코 다치게 생겼다.


공사할 양이 많다 보니 수리 시간도 많이 걸린단다. 2시간에서 2시간 반이 걸리는 대공사이다. 내심 걱정을 했지만 막상 견적이 나오고 보니 한숨이 나온다. 카센터 주변은 상가와 주택가 근처여서 산책을 다니거나 할 만한 곳이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수리가 마쳐질 때까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 곳을 찾는 일이다. 나는 근처 카페로 향했다.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니다 보니 낯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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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창 켠에 있는 책꽂이를 보니 여행서적이 제법 많다. 꽂혀 있는 책을 보니 여행지도 다양하다.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 여행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사람은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때 가장 즐겁다. 가족이 함께 한 뉴질랜드 여행, 유럽 여행, 시베리아 횡단 철도여행이 고무마 줄기처럼 술술 나왔다. 직접 만들었다는 화보집까지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


듣다 보니 내공이 상당했다. 한두 해 다녀본 솜씨가 아니다. 여행 고수의 풍미가 느껴졌다. 패키지와 달리 자유여행에는 많은 실수가 따른다. 그 실수가 여행을 더 편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인도한다. 코로나 때문에 이번에 한 달 동안 머물 예정으로 준비했던 말레이시아행이 무산되었단다. 국내도 그렇지만 해외에서 한 달 머무는 일에는 손이 많이 간다. 나 역시 필리핀에서 가족이 한 달 머무는 계획을 세울 때 고생 꽤나 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경우, 손을 써야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항공권, 숙박에 교통까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힘들지만 그 계획을 수정하거나 없던 일로 돌이키는 일에는 더 많은 고통이 뒤따른다. 이런 번거로움이야말로 많은 사람이 자유여행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 매력적으로 들렸던 이야기는 평소 부부가 함께 여행을 즐긴다는 사실이었다. 흔히, 친한 친구와도 여행을 떠나봐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평소에는 절친이다가도 여행지에서 뜻이 맞지 않거나 사소한 일에 속상해서 돌아오는 일이 많다는 의미이다. 잠깐잠깐씩 보는 것과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일이 그리 쉬울 리가 없다. 평소라면 웃어넘길 수 있는 일도 여행지에서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박힌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말도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는 게 여행이다. 의견 충돌은 다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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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얼굴을 봐도 데면데면하는 부부라면 여행지에서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하는 사실은 끔찍할 수 있다. 피곤할 때는 말 한마디도 곱게 나가지 않는 법이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이런 일은 자칫하면 여행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힘든 여행일수록 함께 하는 이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개의 부부들, 특히 중년 이상일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중년 남성의 위상은 집에서 개보다 서열이 낮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와 둘이 여행을 떠나는 일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아내는 다르다. 이제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친구나 아는 이들과의 즐거운 여행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중년은 부부 사이의 관계 역전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부부만의 여행이라니. 더군다나 아내분은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는 말이 부록처럼 따라붙었다. 둘이 같은 취미를 가져도 힘들 텐데, 한쪽이 별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과 같이 사는 아내의 푸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혼자 여행을 다니거나 아는 이들과 여행을 다니기 마련이다. 만약 어느 한쪽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따라나선다면 그거야말로 여행이 아니라 고행의 길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여행지에서는 힘든 일이 많은데 일부러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듣다 보니 비결이 있었다. 비법은 무조건 아내 말에 따르고 의견에 맞추어 준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단순했다. 아내가 먹기 싫다면 안 먹고, 안 가고 싶다면 안 가고. 이게 쉬운 것 같아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지기 싫어한다.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의 방식대로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 욕망이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는 원천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발원지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에게 맞추어주면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 아, 물론 100%는 아니다. 누구나에게 상황은 다르고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이 부부가 오랜 여행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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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은 문제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이왕 어렵게 왔으니 본전을 뽑자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며 욕심을 내는 마음이 무리수를 만든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게 하고 자신을 위기에 빠지게 한다. 여행을 떠난 목적은 사라지고, 조금 더 많은 곳을 보기 위해, 조금 더 많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만 남는다. 결국, 그에게는 어디에 다녀왔고 무엇을 먹었으며 어떤 액티비티를 했는가만이 남아버린다. 그의 여행은 남들에게 어디를 다녀왔고, 얼마나 호화스러운 여행을 했는가를 자랑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약간의 과장과 허세가 끼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여행일수록 나중에 수많은 사진을 보다 보면 그 사진을 찍었던 곳이 어디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기억조차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여행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 에서 그런 사진을 찍었나 싶기도 하다. 여행을 간 것은 자신이지만 그가 여행지에서 한 것은 부지런히 기념사진만 찍었기 때문이다. 사진만 남는다는 말에 몰입한 나머지 더 소중한 것을 망각한 경우이다. 만약 그가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벗어나 출발한 여행지에서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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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 묘한 날이다. 만약 차 수리가 일찍 끝났더라면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카페 중에 하필 거기를 찾은 것도 귀한 인연이다. 어쩌다 보니 카페를 열게 된 내력부터 그동안의 삶이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선물처럼 베푸신 넉넉한 푸껫 여행에서 부인이 화가라는 이야기와 자식들 이야기까지.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으로 ‘콩나물 전’이라는 전시회를 열기까지 했다고 한다. 부부는 그들 삶 속에서 진짜 여행을 만나고 만들어가고 있었다.


차 수리는 잘 끝났다. 예상보다 많은 수리비가 나왔지만 어찌된 일인지 마음은 무겁지 않았다. 아마 뜻밖의 만남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부부를 만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차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기고 난 다음에는 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꾸준한 유지와 관리 보수가 필요하다. 차가 쌩쌩 달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관리가 필요하듯이, 여행은 우리의 각박한 삶에서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돌이켜보면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올해 코로나가 생각 이상으로 오래 여행을 쉬게 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소소한 삶이 우리에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기도 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지인들과 함께 연다는 부부의 ‘콩나물 전’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화를 마치고 카페를 나오면서 마치 한 편의 근사한 여행기를 읽은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읽은 여행기는 1편일 뿐이다. 벌써부터 다음 편이 기대된다. 두 분의 멋진 여행이 계속 이어지기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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