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해야 안다. 누구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수십 년이 흐른 후 우연히 짝사랑했던 여인에게 자신이 죽도록 사랑했노라고 남자가 고백했을 때 따라 나오는 대사이다. 남자는 수많은 시간을 혼자 짝사랑하며 지냈다. 그녀가 다니는 길목을 서성이며 우연히 만날 날을 기대하기도 했다. 물론 고백도 했다.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독백이었을 뿐이다. 여자는 말한다. 자신도 좋아했노라고. 그제야 남자는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이미 시간은 내편이 아니다. 그러게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
세상을 살다 보면 말을 하지 않아서 손해 보는 일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아니면 부끄러워서, 이유는 많지만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평생을 얼굴을 맞대고 산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속을 어찌 알겠는가? 길을 모르고 헤맬 때는 주변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지 않고 혼자 길을 찾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어느 모임에서 중년 여자들의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땀이 난다거나 얼굴이 붉어진다거나 잠을 못 이루는 등 갱년기와 관련한 여러 증상을 이야기했다. 그 중 한 명이 자신은 갱년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힘들어하는데 남편이 코를 골고 자고 있으면 한 대 때리고 싶어지더라는 말까지 했다. 심지어 자는 남편을 아내가 갑자기 때렸다. 자다가 영문도 모르고 일어난 남편에게 아내가 하는 말
물론 말을 한다고 해서 여자의 갱년기 증상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시간이 약이겠지만 그때까지의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남편과 나누었더라면 심리적 위안과 정서적인 안정이 어느 정도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다 해결되지는 않았겠지만 최소한 적어도 혼자 속앓이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하지 않은 말은 편할 수 있지만 결코 편한 게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한다. 반복해서 묻는다.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말이든 행동이든 나에게 그걸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당신 사랑은 믿을 수 있으나 그 사랑은 보이지 않기에 싸구려 반지건 꽃다발이건 돈뭉치건 좀 주면서 나를 확인시켜 달라는 것이다. 남자는 꼭 그걸 말로 해야만 하느냐,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당신에게 하는 행동,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데 그걸 강요하는 당신이 더 이상하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고자 하는 여자와 그 확인을 처음에는 받아주다가도 나중에는 지쳐버리는 남자 사이에는 냉기가 흐른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여자는 남자의 사랑에 목매달아 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해지는 느낌이 든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갔는데, 왜 이 남자 만나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고 고생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화가 치민다. 지금도 잘 차려 입고 밖에 나가면 나 좋다고 따라 나서는 남자가 얼만데 이러냐는 불평불만도 부글부글 끓는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남자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반면에 남자는 이제는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자꾸 그러다가는 당신 말처럼 내가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아니면 당신의 과거에 연연해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하고 싶어진다. 그러니 제발 나를 그만 놔두라고, 그러면 내 사랑은 당신에게 흐르는 물줄기 같아서 그대로 흘러갈 것이지만 지금처럼 당신이 나를 힘들게 하면 그 물줄기는 다른 곳으로 흐를 수 있다고. 똑똑한 사람이 왜 그걸 모르냐고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편으로 여자의 끊임없는 잔소리가 지긋지긋해지기도 한다.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시작했다. 여자도 남자를 모르고 시작했다. 연애할 동안 그들이 알았던 것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에 나오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었을 뿐이다. 누구도 그들에게 결혼 이후 현실에서 만날 진짜 남자와 여자를 말해준 이는 없었다. 아, 있기는 하다. 친구와 선배들이 결정적인 조언자이자 문제 해결사로 등장하기는 했다. 그들은 낚시꾼들이 자기들이 잡은 고기에 대해 과장을 섞어서 이야기하듯이, 자신의 경험에 과장을 섞음으로써 자신을 과시하고자 한다.
말싸움 끝에 가끔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한다.
여자는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다.
끊임없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렇게 많은 어휘를 알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또 가끔 가다 여자는 남자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자신은 기억조차 못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끌어와서 지금의 상황과 연결시키는 그 탁월한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니 미래가 끔찍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남자를 몰아세운다. 남자는 숨이 턱 막힌다.
남자는 어느 순간에 자신이 수사관 앞에 놓인 비열한 범인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수사관이 취조를 시작하면 남자의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어버린다. 어제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몇 년 전 이야기를 그토록 세세하게 기억하는 여자의 놀라운 능력이 경악스러울 뿐이다. 여자의 말만 듣고 있노라면 자신이 몰염치한 자이며 무능력자가 따로 없다. 그걸 묵묵히 견디어내는 일은 남자에게는 고행과 같다. 결국 남자가 폭발하고 여자는 이를 되받아친다. 처음 문제가 되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전쟁의 문이 열렸다.
정말 아파트의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를 실행하지는 않는다. 만약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매일 저녁 뉴스는 남자들의 투신 이야기로 도배될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선택한 자신의 판단에 후회하고, 세상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가정은 쉴 곳이 아니라 지옥처럼 느껴진다. 여자 역시 남자의 돌발행동에 자괴감이 든다. 이런 남자를 어디가 좋다고 따라 나섰던가, 내가 잠시 미쳤지,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 오면 두 사람은 상대방의 얼굴을 앞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해결책은 없지만 선택은 해야 한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법
엘리베이터의 좁은 공간에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난감함을 기억하는가? 인사를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어색한 그런 상황에서 달리 피할 방법도 없다. 시선처리는 더 고역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편하지 못하다. 그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층이 나올 때까지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해외여행을 처음으로 떠났던 91년도에 가장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게 인사였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오거나 길에서 만났을 때도 그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수시로 인사를 건넸다. 대충 하이, 굿모닝 이 정도였다. 하기는 그들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길에서 만난 이에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정치나 문화 이야기를 한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은 내게 밝은 미소와 함께 하이, 굿모닝처럼 짧은 인사를 건네고 빠르게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들은 인사만 건네고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렇게 며칠을 겪다 보니 내가 먼저 자연스럽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하이, 굿모닝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불과 일주일도 안 된 사이에 그들의 인사법이 나에게도 전염된 것이었다. 인사를 건네면서도 그들은 시종일관 웃는 표정이었다. 하기는 인사를 건네면서 인상을 찌푸리거나 험악한 얼굴은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어찌 되었거나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술술 일이 풀렸다.
아침에 간단한 인사가 그들 세계로 내가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그들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기 위해서 같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들을 알아갈 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떤가. 낯선 자리에서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 눈빛을 교환하는 것, 말을 섞는 것. 다 어렵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보이면 그 옆으로 가게 된다. 그게 더 편하다.
우리나라에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은 구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해외에서 한국어가 들릴 경우 반가운 마음이 든다. 가장 먼저 건네는 인사는 “어디에서 오셨어요?”나 “고향이 어디세요?”일 것이다. 만약 자신이 살던 동네나 고향이라면 그 다음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 지역이 자신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곳이라면 벌써 친구나 형제자매와 같은 동질감이 들기도 한다.
만약에 학교 동문이나 연고가 같게 되면 그 다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순간 갑자기 막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 봤다고, 지금 봤지 않은가. 그거면 족하다. 말이 통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거기다 연결고리까지 생겼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흐른다. 해외에서는 그렇게 반가운 게 한국사람인데 왜 한국에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가. 아마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험에 의하면, 다섯 사람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으로 연결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더 심하다. 특히 좁은 동네라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더 봐야 한다. 오죽하면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러니 말과 행동이 전부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다들 그렇게 믿는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자동차 광고만 해도 그렇다. 광고에서는 사람의 성공을 어느 차를 소유하고 있느냐로 평가한다. 우리나라에 소형차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편리함이나 경제적인 문제만 따진다면 경차만큼 효율적인 차는 없다. 고속도로비 할인에 주차장 할인도 가능하다. 물론 안전만을 따진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