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2시.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어제 아내는 지인들과 보석사에 다녀왔다. 나는 가을을 이렇게 보내는 게 아쉬워서 어디라도 같이 다녀올 생각으로 물었다.
“언제쯤 와?”
“금방 올 거야!”
아내의 대답은 짧고 명쾌했다. 나는 길어야 한두 시간을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내는 오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기다리다 TV 보며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해가 넘어가고 사방이 깜깜해졌는데도 아내는 오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딸아이가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아빠, 엄마의 금방은 5시간이야!”
“정말?”
“그걸 이제 알았어?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고 ‘금방 갈게’하면 그건 2시간이야!”
“그래. 그런 거였어!”
“엄마의 ‘집앞이야’는 30분이야.”
“30분짜리도 있어?”
“응, ‘거의 다 왔어. 집앞이야’는 30분이야.”
우리가 이야기하던 중에 늦게 합류한 아들은 견해가 좀 달랐다.
“엄마의 ‘거의 다 왔어’는 1시간이야!”
“아, 너는 조금 생각이 다르네.”
헷갈려하는 나를 위해 아들이 최종 정리를 해주었다.
“엄마가 오후에 나가면 저녁에 오고, 저녁에 나가면 10시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돼!”
나만 몰랐다. 아이들은 엄마의 화법에 이미 익숙해있었다. 나는 아이들 말을 들으면서 반성했다. 그동안 나는 아내의 말에 얼마나 무심했던가. 가끔 아내가 말이 안 통한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을 때 이미 알아차렸어야 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아내와 함께 해야할 시간에 그만큼 집에 없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아침에 나가면 새벽에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휴일에도 일한다며 사무실에 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며 아내는 얼마나 많이 적적했을까?
그제야 가끔 외출한 아내와 통화를 할 때, 금방 온다고 하던 아내가 한참이 지나서야 왔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도 2~3시간이 넘게 걸렸다. 20년이 넘게 같이 살면서도 내가 아는 ‘금방’과 아내의 ‘금방’은 이렇게 차이가 컸다. 그런데 그걸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깨달았다니. 아내에게 무심했던 내게 아이들은 자신들이 읽은 엄마의 화법을 전했다.
아내의 화법처럼 때로 어떤 지명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리니치’라는 도시가 있다. 사람들은 ‘그리니치’하면 천문대를 떠올리지만 영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엘리자세버 1세 여왕이 출생한 곳이다. 바로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어머니 앤 블린의 죽음을 딛고 서서 영국을 세계를 움직이는 대영제국으로 만든 게 바로 그녀이다.
언어적 표현만이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이 더 많은 의미를 담는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앨버트 메라비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의사 소통에서 사람들에게 공감과 신뢰를 주는 대상으로 몸짓, 표정, 태도 등의 비언어적 표현이 55%에 달했고, 목소리의 음색, 억양 등의 반언어적 표현이 38%에 달했으며, 언어적 메시지는 단 7%에 불과했다. 이론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다른 이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가까이 사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작년, 숲해설사과정을 다니면서 아내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수업은 저녁 무렵 시작해서 야간 10시까지 강행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이론과 실습으로 이어지는 그 빡빡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내는 무척 행복해했다. 그때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가까운 숲과 산으로 다니면서 표정에도 생기가 넘쳤다. 한번은 가까운 산으로 같이 등산을 갔는데, 나무 이름을 척척 알아맞히는 걸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는 비슷한 잎처럼 보이는 게 아내 눈에는 다르게 보였나 보다.
그런 아내의 권유로 나도 생태해설사 과정을 다녔다. 글자를 모르면 문맹으로 불린다. 꽃이름과 나무이름을 모르는 것도 문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찍이 안도현 시인은 <애기똥풀>이라는 시에서 서른 다섯에 ‘애기똥풀’ 이름을 모르고 살았던 자책을 하고 있다. 꽃이름을 아는 순간 그 꽃은 내 세계로 들어온다. 나무이름을 아는 순간 한 번 더 보게 된다. 한 마디로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도 <꽃>에서 그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 올해 만난 모임과의 인연으로 평생 가본 것보다 많이 수목원을 다녀왔다. 한번씩 수목원에 갈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게 많아진다.
어디선가
달달한 냄새가 난다
계수나무다
아름다운 노년은 계수나무다
팔팔한 계수나무는 냄새가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계수나무는 달달해진다
나도 나이를 먹으며
다른 이들에게
계수나무처럼 좀 더 달달해지면 좋겠다
- 계수나무의 깊이
나는 여전히 꽃이름도 모르는 게 많고, 나무를 봐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전과는 다르다. 계수나무가 시간이 지나면서 솜사탕처럼 달달한 향기를 뿜는다는 사실오 처음 알았다. 평생 살면서 수목원을 몇 번 가보지 않았던 내가 하루에 두군 데나 수목원을 가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세계가 나를 기다릴까. 벌써부터 아직 가지 않은 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