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때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노래가 거리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에게 10월의 마지막 날은 그냥 평범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하다못해 친구와 없던 약속이라도 만들거나 그도 안 되는 혼자 술잔이라도 기울여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노래 한 곡이 세상을 바꾼 셈이지요.
오후에 불현 듯, 아내가 보석사에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온 은행나무 사진 한 장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유명한 보석사 노란 은행나무 잎이 세상을 온통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부랴부랴 내비게이션으로 보석사를 찍어보니 대략 1시간 40분이 나왔습니다. 오후 들어 밀린 일을 하고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일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늦어졌습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다가 일단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생각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요.
처음에는 보석사로 갈까 하다가 근처에 있는 대둔산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한번씩 갔던 대둔산을 안 가본 지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둔산 단풍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그런데 대둔산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도로 양편에는 차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가족 단위 산행이 많아진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노라니 실감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시간이 늦다 보니 이미 조금씩 차들이 빠진 자리가 보인다는 점이 위안이 되더군요. 마치 이 빠진 말썽꾸러기 아이처럼 말이죠. 조금이라도 더 일찍 출발했다면 도로 양옆을 점령한 차에 압도당해서 포기하고 다시 돌아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운 좋게도 대둔산 입구 초입에 자리가 나서 차를 주차하고 나섰습니다. 하도 오랜만에 대둔산을 찾아서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따라서 가면서도 그동안 내가 알던 대둔산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곳이 감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입구부터 단감을 파는 이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대둔산 근처에 있는 고산은 곶감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마을 사람들이 감 작업에 매달리고, 집집마다 곶감을 주렁주렁 늘어뜨린 장관이 펼쳐집니다.
가파른 길을 보니 예전 생각이 잠시 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3,000미터급 네팔 산을 다녀왔던 체력은 다 어디로 갔는지 조금 오르는 것도 허덕댈 정도였습니다. 하기야 올해는 코로나 핑계로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완전 저질 체력이 된 셈이지요.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올라가야 하니 더 힘들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늦게 산행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사실 산행이 그렇게 힘든 건 아니었습니다. 코스가 복잡하지도 않았고요. 다만 내 몸이 그런 산행을 너무 오랜시간 잊고 살았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흙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던 나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정상까지 가뿐하게 달리다시피 산길을 올라가던 나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고만고만한 산을 오르는 데도 버거워하는 나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 사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해졌습니다.
대둔산은 조금씩 물이 든 단풍으로 산 전체가 불타고 있었습니다. 숲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어느 순간에 연한 새순이 올라 초록이 세상을 덮기 시작하면 산은 보기만 해도 젊음이 팍팍 느껴지는 청년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나뭇잎이 조금씩 세상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습니다. 단풍은 그 과정까지 한번에 갈 수 없으니 마음에 완충작용이라도 하라고 있는 셈이지요. 요즘은 쇠락하는 것들에 더 눈이 갑니다. 그래서 가을산을 오르다 보면 어쩌면 시간이 더 필요할지, 아니면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인지도 가늠이 잘 되지 않더군요. 우리가 사는 인생도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죠. 제게는 오늘이 그런 날이었답니다.
대둔산 정상이 350미터쯤 남은 상태에서 한 가족을 만났습니다. 남자아이 둘과 같이 온 부부였죠. 그들은 계속 올라갈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었죠.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사파의 판시판산에 오를 때였습니다. 오늘과 달리 그때는 모녀였죠. 비바람이 우비까지 무용지물로 만드는 터라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옆에서 바람을 잡았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안 간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고. 오늘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부부는 하기야 그렇다면서 계속 가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도 잘 따라주었죠. 정상 근처에서 아이 아빠가 그러더군요.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말 믿고 갑니다.' 사실 그 말은 그 가족에게만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정상까지 가는 게 힘들었던 저에게도 하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 가족과 20분 정도를 같이 올라가서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가족사진을 찍어주다 보니, 그렇게 다정할 수 없더군요. 나중에 언젠가 다시 올 수도 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가족에게는 더 특별한 날이지요. 아까 아내가 앞으로 10년 동안은 올 수 없을 거라고 하니, 남편이 아마 평생 못 올 수도 있다고 맞장구를 쳐주었거든요.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사이, 두 아이 중 하나가 다가와 오늘 고마웠다며 수줍은 얼굴로 사과즙을 건넸습니다. 그 순간 집에 두고온 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대둔산을 바로 내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노을이 산을 물들이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산에서 밤을 보낸 후, 일출까지 보고 싶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는 오늘, 그들 가족에게는 또 다른 추억이 생겼을 겁니다. 저도 대둔산을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이 떠오르겠지요. 이렇게 산은 누군가를 만나게 해주고 기억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밤입니다.
당신에게 가는 길이 멀어질수록
내 마음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당신에게 가까워질수록
내 그리움은 단풍잎처럼 더 짙어졌습니다
한참을 그리워하다가
그대를 만나는 날은
아침부터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가는 길이 참 달았습니다
삶이 먹먹할 때마다
당신에게 달려가던 그 길을 생각하겠습니다
내 삶에 바빠서 당신이 희미해질 때면
달려가던 그 수많은 계절을 떠올리겠습니다
혼자 맞이했을지도 모르는 계절이
오늘도 오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과 나의 계절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 설렘을 당신과 함께 합니다
-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