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너무 오래 산을 가지 않다 보니 어떻게 산을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도 몸만은 내가 걸었던 산길, 그 계곡을 기억한다. 누군가에게는 산을 오르는 게 그다지 매력적인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살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 팍팍한 사람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산으로 향해야 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정말 산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낮은 산은 낮은 산대로, 높은 산은 높은 산대로 각기 다른 말을 한다. 나는 그 말을 사랑한다.
새벽 산을 오르면 차가운 공기가 나를 반겨준다. 계절이 달라진 탓이다. 약간 쌀쌀한 느낌도 있지만 걷다 보면 오히려 찬기운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마 집에서 창문을 열었더라면 그 차가운 기운에 화들짝 놀라 문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게 찬기운이란 살다 보면 낯선 이가 반가운 척을 하면서 다가올 때 경계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나는 별로 친하고 싶지 않지만 그는 나와 친해지기 위해 애쓸 때 오히려 저절로 마음이 닫히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산에서라면 그런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오히려 문을 조금 더 열어젖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깨어나지 않은 도시의 사람들과 달리 산은 이미 깨어 움직이고 있다. 약간 투박하면서도 진하게 밀려오는 숲 특유의 냄새는 어느새 내 코를 점령하고 있다. 이 냄새를 어떻게 표현할까, 오래 고민을 해보지만 딱히 적당한 표현 방법은 없다. 숲에서 나는 냄새는 어느 특정한 냄새만이 아니라 여러 냄새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기 때문이다. 거기 어디쯤에는 이제 막 싹을 틔운 식물이나 죽은 동물 시체의 냄새도 배어 있을 것이다. 그 냄새에는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고, 아직 빛이 바래지 않은 풋풋한 냄새와 시간을 머금어 오래 숙성된 냄새가 나기도 한다. 구간을 넘을 때마다 각기 다른 냄새가 말을 걸어온다.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되는 것은 맑은 공기이다. 한바탕 숨을 크게 들이쉬면 신선한 공기가 호흡기를 거쳐 내 몸 구석구석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잠깐 숨을 들이쉬었을 뿐인데도 폐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더 추워지면 이런 공기는 아찔한 느낌을 준다. 아침 갓 볶은 커피 향 같은 달달함은 없지만 밤새 묵혀 있던 야생의 냄새가 그리 싫지는 않다. 문득 아무도 없을 테니 ‘야! 이런 공기가 그리웠어!’라고 크게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을 거쳐 무릎, 그리고 온몸으로 찌릿찌릿하게 전해지는 대지의 기운을 느끼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야간산행도 그렇지만 새벽 산행이 주는 묘미는 다른 이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제법 이른 시간에도 산에 가보면 이미 산을 오르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렇지만 나 못지않은 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동질감이 느껴진다. 대체 그들이 잠을 자기는 할까 궁금해진다. 다가가서 언제 출발했는가를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산길에서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얼마다 당혹스러울까 해서 자제하기로 한다. 아마도 일찍 잠에 드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일에서 끝나자마자 산을 오르기도 한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면 그만큼 하루가 길다.
이쯤 되면 거의 중독 수준이다. 어떤 이들은 등산을 하면서 비가 오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폭설은 좀 다른 차원이지만 웬만해서는 악천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즐기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한국의 명산 100개를 등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주말이면 산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등정을 할 때마다 산 사진을 올리는 걸 보면 그런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회사의 이벤트일 수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 생각하면 인간의 욕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에게 도전 욕망을 불어넣는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약간의 이벤트 정도만으로도 발길을 산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만큼 산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오늘도 누군가는 산으로 발걸음을 향할 것이다.
내게는 산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K2이다. 이제까지 아무도 오르지 못한 산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누구도 오르지 않은 처녀 봉이라면 더 그렇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른 이의 이름은 선명하다.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1953년에 그가 에베레스트를 오른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이들이 에베레스트에 올랐지만 사람들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건 마치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억하지만 그 이후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이름을 얻기 위해 죽는 것쯤은 두렵지 않다. 여러 정황상 분명히 가면 안 되는 상황이거나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떤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발길을 멈추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산의 정상을 정복했느냐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일이다. 남들이 이미 갔던 길은 그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거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방식으로 산을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정상을 정복하거나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평생 산을 타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산악사에 남기는 일을 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산을 타는 이가 평범하게 사는 대신에 죽으면서까지 그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는 모험을 택하는 이유이다. 오늘 오르는 산행이 그런 산행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에 못지않을 수 있다. 유명하거나 높은 산을 오르는 것만이 산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새로운 의미이다. 어쩌면 오늘 우리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 산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평범하면서도 의미 있는 산행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