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버님이라는 말을 들었다.

by 산들

오늘 첫 모임에서 아버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라오스 여행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어르신 잘 모시라’는 이야기 이후 두 번째였다. 오늘 처음으로 개설된 팀에서 60대를 훌쩍 넘긴 연장자를 제외하고 나는 두번 째로 나이가 제일 많았다. 호칭이 애매하니 강사로서는 ‘아버님’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겠지만 나로서는 참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나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새 강좌에 가면 뒤보다는 앞에서 손꼽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나이 또래는 다 어디 갔는지, 내가 유별한 것인지 강좌에 가면 비슷한 연령층을 찾기 어렵다. 오늘만 해도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과정을 신청해서 듣는 데, 주위가 다 젊은 부류 일색이다. 그동안 부지런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내가 중년을 떠올리면 끔찍하던 그 나이에 나도 덜컥, 와버렸다. 참,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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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조금씩 쇠락의 길로 한 걸음 더 발길을 옮기고 있다. 내가 지금 시간을 붙잡기 위해, 내 삶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글을 쓰고 강의를 들으며 몸부림치는 것은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늦지 않은 시기에 이런 판단을 했다는 생각해보면 대견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나중에라도 그때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내게 맞는 길을 찾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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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글을 쓰면서도 진짜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썼던 대부분의 글은 나의 이력을 만들기 위해 썼던 글이 대부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원고 마감시간에 맞추기 위해 밤을 많이도 새웠다. 그러나 공을 들인 만큼 공허함이 컸고, 회의가 들 때도 적지 않았다. 남을 위한 글을 쓰는 작업의 공통점은 일단 고되고 씁쓸하다. 그들의 주문에 맞추어야 하고, 눈치를 봐야 하고 적지 않은 힘이 든다. 그러니 글을 쓸 때 신이 나지 않는다. 원고 마감이 되어야만 글 쓰기에 탄력이 붙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글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때는 내 영혼의 가장 깊숙이 잠자고 있던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내가 잊고 있던 감각과 만나는 일이며, 내가 아껴두고 싶었던 소중한 추억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끝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 시간이 끝나지 않고 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랄까. 이런 글을 쓸 때면 손은 피아노를 치듯이 경쾌하고 마음도 살짝 흥분이 된다(사실 나는 피아노를 치지 못하지만 컴퓨터 자판을 치는 내 손의 느낌은 피아노 연주자와 사뭇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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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하면서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어 두었던 나와 만나는 일은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설렌다. 매번 여행이 즐겁거나 행복할 수많은 없듯이, 내가 쓰는 글도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이전에 가보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길이라서 낯설고 신기하다. 그중 하나가 최근에 시작한 인스타그램에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과 몇 마디 단어나 문장을 떠올리며 시를 쓰는 작업이다.


재작년부터 오래 벼루어오던 꿈의 하나로 여행작가를 시작했다. 여행잡지에 연재를 하다 보니 한동안 느슨해졌던 여행가방을 손보는 일도 많아졌다. 명색이 여행작가라면 현지 여행을 하면서 글을 써야 하는데 코로나로 전 세계 여행길이 꽉 막힌 게 문제였다. 잡지 원고야 전에 다녀왔던 기억의 꾸러미를 더듬어 어떻게든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다 보니 심한 무력감에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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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인스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갔다 왔던 여행사진을 올리는 재미로 시작한 인스타였다. 이전에는 무심하게 보았던 인스타가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정기적으로 드나들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팔로워가 늘고 팔로우도 늘었다. 올해로 해외여행을 시작한 게 딱 30년이라서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에는 고수가 널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달았다. 나도 그랬지만 그들이 올리는 사진이 어쩌면 자신의 여행지에서의 추억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그 추억을 반추하면서 자신이 열심히 살아왔음을, 그리고 그 추억 속에 자신이 일정 부분 지분을 갖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 자랑을 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었다. 마음을 바꾸니 자연스럽게 팔로워가 된 친구의 사진첩을 이리저리 들춰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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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는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유려한 풍경을 가진 사진도 있고, 개인사가 녹아들어간 사진도 더러 있다. 순례길을 다니다가 내게 어떤 울림을 주는 사진을 발견하면 그 사진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장이 당시 느낌을 친절하게 해설해 놓은 사진이 있는가 하면 사정이 급해서인지 해시태크만 덜렁 남겨 놓은 사진도 있다.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사진을 읽다 보면 그가 사진에, 아니 그의 삶에 얼마나 애착을 지니고 살아왔는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사진이, 어떤 때는 사진에 해설처럼 붙어 있는 문장들이 말을 걸어온다. 오늘은 자기와 만나자고.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어느 젊은 여자가 도쿄의 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진이었다. 그래서 그 사진을 배경으로 한 편의 시를 쓴 후, 메시지로 인스타 주인에게 보냈다. 잠시 후, 영어로 번역해서 보내주면 좋겠다는 답장이 왔다. 나는 아, 이 사람이 영어권에 사는 사람인가 보다 싶어 바로 영어로 번역해서 보내주었다. 이후에 그 사진을 나중에 시집에 써도 좋겠냐고 물어보니, 글쎄 자신의 인스타에 있는 사진은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상에나 자신의 인스타에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건진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니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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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참 많은 이들의 사진을 만났다. 어떤 이는 골목을 걷도 있는 뒷모습의 사진에 ‘따뜻한 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 역시 그 골목을 걷고 있는 마을 주민이 되어 후다닥 시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주인에게 보냈다. 자신의 시를 보고 시를 써서 보내준 이는 처음이라서 감동이라는 주인의 들뜬 감정이 답과 함께 전해져 왔다. 그 이가 그때 그 골목에서 느낀 느낌은 사진을 보며 느꼈던 나와는 다른 성질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골목의 사진이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 이가 그 순간 느꼈던 사랑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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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멋진 풍경 사진이 아니다. 인스타에는 실로 현란한 기술의 힘을 빌어 저절로 억소리가 나게 하는 사진을 올리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진에는 별로 감흥이 오지 않는다. 그들이 올린 아름다운 풍경은 한두 번 눈길이 닿으면 그 신선했던 감각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오늘은 우리와 어울려 놀아보자고, 아니면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을 이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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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아침이면 인스타를 보면서 팔로워들이 올린 사진을 볼 것이다. 내가 올린 사진에 따라붙은 좋아요도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나만의 혼자 여행을 떠날 것이다. 운이 좋으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보다가 시 한 편이 훌쩍 내게로 올 수도 있다. 내일은 그런 행운이 조금 더 연장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 잠자리에 들기 전 첫 줄이 생각나서 쓰기 시작한 게 어느덧 새벽 3시를 훌쩍 넘겼다. 어쩐지 첫 줄이 생각날 때, 이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다. 그래도 글쓰기를 마친 후,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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