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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눈꽃 Dec 06. 2021

직장인이 느끼는 통쾌함과 씁쓸함, 그 사이 어디쯤.

직장인들을 위한 판타지 히어로 드라마 <김과장>

사진 출처 : 드라마 <김과장> 공식 홈페이지
의인 : 의로운 사람.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단어다. 드라마 <김과장>에서는 김성룡 과장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입사하면서 우연히 의인으로 유명해지면서 시작한다. 남궁민 배우가 연기하는 김성룡이라는 인물은 돈에 관련되서는 타고난 천재적 감각이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 조폭이나 소상공인들의 장부를 관리해주는 척 하며 조금씩 삥땅치면서 사는 인물이다. 그의 꿈은 덴마크에 가서 사는 것. 이민을 위해 10억을 모으려고 열심히 삥땅을 치다가 유통관련 대기업인 TQ에서 경리부과장 경력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된다. 학력 다 필요없이 실기와 면접만으로 뽑는 유례없는 파격 채용공고에 '더 큰 물에서 삥땅 쳐서 덴마크로 가자!'하는 생각으로 지원했다가 덜컥 붙게 된다.


그렇게 입사하게 된 TQ그룹에서는 이미 이중장부와 회계를 속여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대표이하 임원들의 부조리 때문에 속이 썩은 강정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실기와 면접만으로 뽑은 이유도 그 업무를 몰래 해줄 만한 실력과 쓰고 버릴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던 것인데 그 자리에 김성룡 과장이 뽑힌 것이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회사 정문 앞에서 언땅에 미끄러져 차에 치일뻔한 사람을 구하게 되면서부터 '의인'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동안 의인처럼 살지 않았지만, '의인'이 되고 나서부터 자꾸 하는 일마다 의인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드라마에 짙게 깔린 코믹한 분위기 때문에 드라마의 첫 인상은 코믹한 오피스물이겠구나 지레 판단했다. 유치한 듯한 개그코드가 엔딩마다 배치되어 아주 심각한 장면에서 끝나는 것 같지만, 만화적 요소를 곁들이는 것이다.


초반 에피소드가 경리팀 사무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실제로 비서로 일하면서 경리 업무를 했어서 상사의 영수증 처리에 곤혹을 겪었던 일들이 공감됐다. 예를 들면, 회사 법인카드로 전혀 업무와 상관없는 곳에서 긁고는 경비처리 해달라며 생떼를 쓴다거나, 임원들은 예산보다 더 초과해서 쓰거나 개인카드 영수증을 들이미는 경우들이 그랬다. 경비처리 업무를 하는 직원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후에는 큼직하게 택배사 노조 시위, 사내 2대기실이라 칭하면서 실은 복도에 내놓은 책상으로 사람을 고문하는 일 등 실제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게 나오는 기업 윤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재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노조를 해산시키는 방식, 회계 감사 과정, 다양한 회사 내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풍자한다. 크고 작은 사건에 자꾸 끼어드는 김 과장을 복도에 놓인 책상에서 대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회장 아들도 팔을 아무렇지 않게 꺾어버리는 캐릭터다. 역시나 그런 부조리한 대우에 평범하게 대응하지 않고, 대기실을 없애려는 작전을 짠다.


드라마라서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정말 의인이 아닌 캐릭터임에도 '의인'이 될 수 밖에 없는 '똘끼'가 있는 캐릭터다. 사회문제를 이렇게 코믹스럽게 꼬집어 낼 수 있는 드라마기에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회 창의적으로 사측의 사람들을 빡치게(?) 만드는 김과장의 그 능글맞은 표정과 태도가 너무 통쾌했다. 자신에게 닥치는 고난을 심각하게 걱정하듯 받아들이지 않고 유쾌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자꾸 중독성이 생겼다. 직장인들에게는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를 보면서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풀렸을 것 같다. 


물론, 가볍게 비틀고 풍자하는 것이 유쾌함만은 남기는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 속에서 신나게 웃고, 나도 저렇게 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씁쓸함이 남는 날도 있었다. 실제로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당차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어쨌든 이건 드라마고, 현실에서는 이런 일에 김과장처럼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그의 옆에 있는 다른 직원들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인다. 직장인들에게는 일종의 판타지인 것 같기도 했다.


김과장처럼 의인이 될 용기는 없어도, 그 안에서 속절없이 당하는 직원이 '나'는 아니었으면 싶었다. 나서서 썩은 시스템을 바꾸고, 좀 더 나은 회사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어느 회사건 이런 인물이 있기를 바랐고, 정말 있다면 응원하고 싶다. 직장인들에게 있어 히어로는 김과장 같은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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