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명이가 아니라 애순에게 몰입하게 되는 날이 와 버렸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by 주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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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입소문으로 다들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로 들끓을 때 보지 않아서 스포하지 말라고 하고 꿋꿋히 참았다. 그러다 마지막화까지 업로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지런히 보기 시작했다. 몰아보기를 하는 걸 좋아해서 매회 기다리는 것을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드라마가 슬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면서 보던 나는 6화에서 K.O.를 당하고 말았다. 휘몰아치는 슬픔과 좌절, 무력감에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스포가 될지 모르겠지만, 셋째 동명이의 죽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진짜 엄마가 되었나보네,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전의 나라면 이렇게까지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었다. 임상춘 작가님의 드라마 <동백꽃필무렵>에서도 동백의 엄마 역이었던 이정은 배우님과 공효진이 나오는 장면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었다. 그때의 나는 늘 딸의 역할에서 공감하고 울었었다.


그런데 어느새 부모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고 자각한 순간이었다. 몇년 사이에 내 입장이 이렇게나 다르게 바뀌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17개월. 아직은 너무도 부모로서 부족하고 아는 것도 없는 초보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잃은 슬픔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난 슬픔을 상상하고 눈물을 흘리는 내가 그래도 부모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에서는 판타지같은 양관식 캐릭터를 제외한다면(물론 관식이같은 남자와 사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만..ㅎㅎ)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러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기가 쉬웠다.


금명이의 입장에서 짜증내고 힘들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그런 말을 듣는 부모의 입장도 그럼에도 물가에 내놓은 자식같은 안타까움이 이해가 된다.


객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딸아이를 보러 간 아빠 관식이 버스터미널에서 손을 흔드는 금명이 아기 금명이로 보이는 순간에서도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상황은 주로 내가 반대로 버스를 타고 떠나는 입장이긴했으나 우리 아빠도 내가 버스에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이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또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금명리를 위해 유학자금이든 뭐든 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인 능력이 되지 않을 때, 자신이 평생을 일궈 하나씩 마련해둔 집과 배들을 하나씩 내놓았다. 그 결정이 물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못할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엔 금명이의 입장에서만 드라마를 봤다면 이제는 내 상황이 바뀌니 나도 여러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4계절로 인생을 쭉 훑어보는 느낌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라 애순과 관식의 인생의 전반적인 이야기가 드라마가 된 것 같았다. 인생의 끝에서 파노라마로 쭉 자신의 인생을 훑어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보니, 특별할게 없어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도 일련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겠구나, 싶었다. 각자 다른 자신만의 파도와 돌풍을 만나 버티고 싸우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전체 인생으로 봤을 때 나의 계절은 언제일까. 봄은 지났고 초여름 정도가 되었을까, 아니면 여름이 지나고 가을쯤 되었을까. 계절이 뭐 중요하겠냐만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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