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 건 없어. 현생이나 잘 살자.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2025

by 주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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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MBTI가 N이라 그런지 살면서 '천국'이라는 공간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것도 꽤나 여러 번.



내가 상상했던 천국은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이었다. 늘 날씨가 화창하고,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아무때나 먹을 수 있고, 아프지도 않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지? 하는 생각.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하고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곳. 걱정 근심 따위는 필요 없는 곳.



하지만, 최근 본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의 천국은 조금 달랐다.



주인공인 해숙은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다가 먼저 간 남편을 천국에서도 다시 만난다. 죽은 후에 사후 세계에서는 천국에서 살고 싶은 나이를 정하고(절대 바꿀 수 없음)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을 정할 수 있었다. 서로를 골라야지만 같이 살 수 있다. 남편이 쌓인 시간만큼 더 예뻐진다는 말을 떠올린 주인공은 돌아가신 나이였던 80세의 얼굴로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여기서부터 갈등의 시작이었다. 막상 천국에 가니 다른 사람들은 리즈시절이라고 생각한 젊은 시절의 모습을 대부분 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남편 고낙준도 처음 만나던 그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마냥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살기 바라던 경치 좋은 곳에 돌담을 쌓은 멋진 주택과 텃밭, 갖고 싶던 흔들의자까지 준비되어있었지만 해숙은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한 나이를 선택하지 않았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남편의 어머니가 되어버린 것 같은 상황이 싫었다. 본인이 천국에 올 만큼 착한 일을 많이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불안하기도 했다. 천국에서는 여전히 남편과 함께 살며 갈등이 생겨 부부싸움을 했다. 시집살이를 심하게 했던 시어머니마저 천국에 와 계셔 재회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밥을 하고 차리며, 설거지하고, 이불빨래 등의 집안일도 여전히 해야했다. 욕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면 사각지대가 없는 CCTV 덕분에 지옥행이라는 벌을 주기도 했다. 현실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도가 조금 더 낮을 뿐이지.. 마치 현생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드라마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나는 천국이라는 설정이 재미있으면서도 저런 천국이라면 안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시무시한 지옥에 가고 싶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상상하던 천국과는 좀 달랐다. 인물들이 잠시 천국에 머물다 환생하는 걸 보면... 천국은 잠깐 스쳐가는 곳일 뿐이었다.



인물들의 얽힌 전생의 인연들의 수수께끼가 풀리고, 결말까지 다 보고 나서는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천국보다 아름다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천국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현생에서 풀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사과하고 하는 등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하나 둘 그런 갈등이 풀어지고 나면 천국을 떠나겠다며 환생을 택하곤 했다. 환생하여 다시 새로운 삶을 사는 것 또한 쉬운 삶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기다려 마음을 전하고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고 이 천국에서의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을 때 환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다시 새로운 삶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라마는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천국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 천국보다 아름다운 것은 살아있을 때의 삶이라고.


그러니 지금 자신이 가진 삶, 현생을 잘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현생을 함께 하는 가까운 가족이나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인연이 엮어 내 곁에 있는 줄 모르겠지만.



그리고 물론, 그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잘해야겠다 여겼다. 특히,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게 제일 좋다는 걸 확신했다. 최대한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를 위해 80세의 나이를 선택한 해숙이 천국에 가서 후회한 것처럼, 절대 바꿀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면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만약 나중에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들더라도 내가 그 상황에 다시 돌아갔을 때도 같은 선택을 내릴 만큼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면 후회는 덜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이 좌우되는 중요한 선택을 하고 난 후에, 남탓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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