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에서,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이유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통해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을 세상에 알리며, 대한민국 갑질 생존자의 아이콘이 된 박창진. 처음 인사를 건네던 순간부터, 시종일관 온화한 미소와 따스한 말투로 상대방을 대하며 농담으로 분위기를 가볍게 풀어주기도 하는 그의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언론을 통해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그의 단단한 '투쟁가' 같은 모습과는 사뭇 이미지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지난 9월 ‘불평등 해소와 차별 철폐’를 제1 과제로 삼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산하 특별위원회 위원장들이 선임되며, 박창진 위원장은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맡게 되었다. ‘노동자가 아닌 국민은 없기에, 모든 국민을 위한 이익을 대변하고 싶다’는 그의 활동을 기대하며,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가제)의 첫 순서로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 노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보았다.
땅콩 회항으로 유명한, 대한항공에서 항공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창진. 아울러 대한항공 외에 민주노조인 직원노조를 이끌고 있는 지부장. 이번에는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혼자만의 투쟁을 하던 과정에서 대한항공 조직 내부에서 외부로 인권, 노동권의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었고 거기에서 나아가서 지금은 사회적 운동으로 참여해 보고자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의 투쟁 과정에서 많은 고비와 건강·정신적 문제가 있었지만 극복해가고 있다.
많이 좋아졌다. 물론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한꺼번에 몰아친 힘겨움이 건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정신세계나 자의식의 측면에서 더 윤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고 생각 중이다.
우선 명칭이 나에게 정말 적합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땅콩 회항 사건을 겪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회적 구조나 제도가 당연히 성실한 국민인 나를 보호하고 대변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혼자만의 투쟁을 해야 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조직 내에서 말 잘 듣는 국민일 때는 보호를 해주고 가치를 인정해주지만, 거기에 반기를 들거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입장이 됐을 때는 권력자에게 대드는 존재, 내치고 제거되어야 하는 존재로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성실한 국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살았는데 이것이 맞는 사회인가 하는 의문점을 갖게 됐다. 그 의문점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사회로 나와서 목소리를 내게 되는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 것이 반드시 개인의 투쟁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로 확장이 되어서 좀 더 포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정의당에서 제안을 주셨다. 그 제안이 내가 갖고 있는 가치와 철학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수락하게 됐다.
우리 사회에는 ‘만연해 있는 불공정’이란 것이 있다. 힘의 불균형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어떠한 능력에 의해서 생긴 불균형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가, 일부의 특권층에게만 권력이 편향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누리는 권력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중심에 설 수 없는 ‘다수들’은 이 사회에 존재감과 가치가 없는 구성원들인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부의 권력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사법부의 권력이든 그 권력의 가치와, 그들의 권력이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다수가 가진 가치가 동등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 그렇다면 약자들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도 경험해 봤지만 개인적 투쟁에서는 한계가 있다. 결국 그러한 것들은 제도권 안에서 조직화해서 펼칠 수 있을 때 영향력이 있다. 그래서 정의당, 정당정치 안에서 실현 가능성을 보고, 확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나는 노동운동에 이렇게 참여하기 전까지는 내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노동자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회사와 극한의 대립을 겪으면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라며 일심동체를 강조했던 회사라는 조직이 ‘우리는 계약 관계이니 언제든 손절할 수 있다’고 나오는 것을 경험하며 느꼈다. 그때 만일 나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조직, 혹은 노동조합이 있었거나 혹은 우리 사회의 법적인 제도가 나라는 개인을 잘 보호해 줄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광야에서 홀로 외치고 투쟁하지 않을 수 있었겠다는 것을.
이러한 점에서 지금 정의당이 내세우고 있는 정의, 사회에 대한 공정, 노동자, 인권 등의 가치들과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가치들이 교집합으로 만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정의당이라는 정당 체제 하에서 그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구조적으로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 예를 들어 '비정규직vs정규직' 문제가 있다. 물론 외국에도 비정규직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비정규직은 정말 말 그대로 계약관계다. 본인이 한 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그 이상, 이하의 일도 안 한다는 의미이지만, 우리나라는 비정규직의 경우 정규직과 똑같은 일, 그리고 소위 사회생활까지도 다 수행해야 하는데 급여만 차별하겠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손쉬운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을 법으로서 보장해 국민들이 강탈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
이 경우만 보더라도 정작 갈취로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은 빠져버리고 같은 약자, 같은 노동자들끼리 서로 싸움을 하게 만든다. 이게 우리 노동현장에서 크게 확장이 되어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서로 없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문제로까지 확장이 되어버린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대한항공을 상대로 “이건 잘못됐습니다. 조현아의 갑질은 월권행위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같은 동료들은 “너만 당해? 우리도 당했어.”라는 비판을 했다.
겉으로는 능력 사회라고 좋게 포장하지만 실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 문제의 근원이 되는 자본가들은 빠지고, 약자인 국민들을 분열시켜 자본가들은 책임에서 멀어지고, 이익만 쉽게 얻는 것이 노동현장에서 번번이 벌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단지 ‘노동’의 문제로 말하면 위화감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 ‘노동’이라고 하면 길거리에 나가서 데모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들 중에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 전업주부 역시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노동의 문제는 결국 사회의 문제고, 모두의 문제다.
개인적인 부침을 겪어보고 알게 된 것이 우리 사회에 실효성이 없는, 허울뿐인 제도와 법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갑질과 관련해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여태까지 없었을까? 있었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수조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재벌 오너에게 몇 백만 원의 벌금을 물린다고 하면 그건 실효성을 가진 제재의 수단이 될까? 물론 내가 상대했던 재벌 같은 경우엔 그 조차도 나오지 않았지만(웃음).
그런데 만약에 미국처럼 수조 원을, 내 재산의 반 이상을 토해내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옥시 사태가 벌어졌을 때만 봐도, 영국의 옥시 본사에서는 본인의 나라에서는 절대 문제가 된 그 제품을 쓰지 않지만, 한국에는 그런 법이 없기에 그 제품을 한국에선 썼다고 했다. 이처럼 결국 인간을, 이 사회를 양심적 행동으로만 규제할 수 있다는 데에는 한계점이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제도화, 법제화를 통해 규제하고, 생각의 전환이 올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갑질 사건, 땅콩 회항 사건 등으로 연계가 되어 정의당의 이정미 의원께서 발의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제정만 봐도 법 제정 이후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그 법이 생기고 나서 잘못된 어떤 행동을 하려다 자제하는 것을 많이 본다.’는 얘기. 그래서 저는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정당 활동을 통해 제도화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초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아시다시피 현재 많은 특수직들이 존재한다. 뭉뚱그려서 비정규직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직군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미디어’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어마어마한 권력기관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작가 직업군은 처음 생길 때부터 정규직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런 맹점을 권력층에서는 너무 잘 알고 있고, 거기에 대항했다가는 다음의 생존권을 담보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지적을 안 한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제일 먼저 국민들의 여론이나 정론을 반영하며 이슈화 시키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문제는 눈 감아 버리기에 그 누구보다 소외자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일 먼저 관심이 갔고 이 문제는 국민의 일이면서도, 관심의 바깥에 있는 일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첫행보로 삼았던 것이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 투쟁할 생각이다.
또, MBC 방송작가들의 문제로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다른 노동 문제들도 대두가 됐다. 현재의 MBC는 이전의 MBC와 달라졌고 지금 경영진에 계신 분들이 다시 오기까지 투쟁의 역사가 있었지 않은가. 그것은 촛불이라는 많은 민심들이 조금 더 밝은 사회, 정의로움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염원이 MBC에도 영향을 미쳤고, 경영진의 교체까지 온 계기가 됐다. 그런데 막상 그분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또 그 안에 차별이 생긴다. 그것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같은 다수의 약자들 사이에서도 분열과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좀 더 광범위한 공정함과 정의로움에 대한 대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MBC 방송작가 갑질 계약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힘을 보태고 싶다.
개인적으로 바뀐 사례를 많이 봤다. 좀 더 불공정이 없는 사회, 평등함이 좀 더 존중받고, 각자의 인권과 가치가 존중받는 많은 선진사례들을 봤기 때문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이미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 다수의 사람들이 눈을 떠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나와 같은 아이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일생에서 그것을 직접 느낀 사람이기에 그것을 사람들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을 거 같고, ‘박창진’이라는 1인이 생겼지만 이후에 ‘박창진 2’, ‘박창진 3’이 생겨날 수 있을 거 같다. 그것이 지금 이 가이 포크스(Guy Fawkes) 가면을 들고 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내가 투쟁 중인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하고 5년이 흘렀는데, 4년간의 투쟁은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내부의 그 누구도 지지 발언을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일가의 횡포가 만연했음에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1년 전 이 가면을 쓰고 대한항공 직원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물컵 갑질에 대해 최초의 내부고발을 한 직원이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용기를 갖게 됐는지 물었을 때, ‘박창진 사무장이 처음에 휘슬을 불었을 때 분명히 이 사회에서 제거된 상태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생존했고 용기를 보여줬다. 또 지속적으로 똑같은 목소리를 냄으로서 나에게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나의 토대가 되어 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확장해 나가자면 홍콩 시위에서도 보면 복면 금지법을 발의했지 않은가? 그중에 눈에 띄는 게 이 가이 포크스 가면이었다. 가면을 쓰고 나오는 투쟁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가면이라도 쓰고 내 불이익을 감내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다.
[박창진 위원장, "생존자로서의 아이콘을 남기고 싶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
[인터뷰] "생존자로서 아이콘이 되고 싶어요" | 박창진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 유튜브 영상 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