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의 생존자 되어 용기의 휘슬을 불고 변화의 계기 만들어 낼 것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통해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을 세상에 알리며, 대한민국 갑질 생존자의 아이콘이 된 박창진. 지난 9월 ‘불평등 해소와 차별 철폐’를 제1과제로 삼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 산하 특별위원회 위원장들이 선임되며, 박창진 위원장은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맡게 되었다. ‘노동자가 아닌 국민은 없기에, 모든 국민을 위한 이익을 대변하고 싶다’는 그의 활동을 기대하며,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의 첫 순서로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소개하는 그 두 번째 이야기.
‘생존자로서의 아이콘’을 남기고 싶어서다. 지금 사회에 있는 불공정, 불합리,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의 생존자로서의 아이콘. 보통 아이콘이라는 것은 유명인, 정치인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다수는 결코 유명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고.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을 때에는, 조직이나 사회를 해치는 존재로 인지되어 제거당하거나 억압을 당해왔었다. 그렇다 보니 나와 서지현 검사 등이 겪은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억압의 문제들은 계속 곪고 곪을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를 냈었던 사람들이 없었겠는가. 존재했으나 타의에 의해 제거되고, 생명력을 잃거나 숨어버릴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자로서의 아이콘’이 되고 싶다.
그래서 공론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처럼 대해졌던 일들이 그렇지 않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괜히 저렇게 되면 안 되겠구나. 그러니 나도 입을 닫아야지, 눈을 감아야지...’가 아니라 더 잘 살아남는 생존자의 모습을 보여주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현재가 그런 변화의 시점이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감내해야 할 희생과 고통은 여전하지만 헤쳐 나가고 있다.
똑같이 할 것 같다. 긴 시간이 지난 후 수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었다. 이 많은 박해와 어려움이 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마음속에 이 불공정함, 불합리함에 대한 송곳 같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송곳’이라는 드라마의 내용처럼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눈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온 불행의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에 좌절하지 않고, 그 결심을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그러했듯 사회적 구조, 제도가 공정하게 개인을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이어지는 2차 가해는 변함이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내게 상담한다면 쉽게 똑같이 하라고 하지는 못 할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그러하듯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 내부고발자에게 행해지는 2차 가해와 고통이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공정한 것도 아니며,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다, 앞으로의 저의 다짐일 수도 있다. 이제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되었는데, 이 명칭을 아까 마음에 든다고 말씀드렸었다. 이 명칭이 함축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가, ‘관심 밖에 있는, 조직에 결합되어 있지 못하고 권력의 변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없는 다수의 약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 그것이 노동권이든 인권이든.
그런 의미이기 때문에 의미를 더 확장해서 사회적 약자, 변두리의 사람들을 전부 대변해줄 수 있는 역할을 정당에서 가치적으로 실현하고 싶다. 또한 그것을 사회 전반의 사상이나 철학으로 뿌리내리도록 해 지난 5년간 내 자의식의 변화가 생긴 것처럼 국민들이 눈을 뜨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역할로 진화해 가는 것이 가지고 있는 목표다.
정확한 방법은 나도 모르겠다. 땅콩 회항 사건 이전에는 오히려 내가 그 상층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혐오할 수 있는 자리. 그 사건이 있었을 때 딱 20년 차가 되었을 때였는데 10년 동안 평직원으로 있다 나머지 반을 관리자, 팀장으로 일을 했다. 그렇다 보니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평가하여 차별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지고 나서 권력의 외부로 가는 입장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당했던 일이 폄하와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이다. 특히 조직은 저 같은 사람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앞장서서 그런 행동을 한다. 정말 신상을 탈탈 터는 행동까지 하면서, 갖은 루머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팀원을 했던 직원들을 불러 나에 대해 어떤 것이든 얘기를 하라고 한 후 그 얘기로 리포트를 작성하게 했다. 블라인드라는 앱을 통해 그런 것들이 나돌기도 했다. 대처방안은 모르겠지만, 깨달음은 있었다.
어느 순간 세뇌가 되어 나는 ‘차별의 대상이 안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공격을 하고, 권력의 힘으로 차별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면 가능한 사회라는 것, 차별이라는 것은 항상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차별에서 예외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늘 인지할 수 있는 의식적 흐름을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먼저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나도 당할 수 있으니, 그런 일에 앞장서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따르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국민들이 말을 잘 듣고 잘 따라오면 선택된 사람이라는 의식, 우리끼리의 계층을 나누고 차별화를 시키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 같다. 이전의 봉건사회처럼 계급이 있는 사회가 되었고, 계급을 통한 차별이 흥행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다수는 차별 속에 속해있으면서도 나는 그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현실을 보여줌으로 인해 행동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와 같은 사람이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이콘이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인식을 했을 때 행동의 변화가 오지 않을까? 내가 어떤 차별에 앞장서야겠다는 자각이 없이 차별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나만해도 이 사건이 있기 전을 생각해보면, 연예인의 사진을 보며 평가를 했던 거 같다. 그런데 내가 차별의 대상이 되어 보니 이러한 평가와 차별이 특수한 누군가가 아니라, 평범한 나도 당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느끼며 행동과 사상이 바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깨우침을 주는 일이 중요할 거 같다. 대처법은 그렇게 나오지 않을까?
사실 우리 사회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미명 하에 구성원들의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 ‘모두 한 가족’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너와 나는 공동체 안에서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러면 구성원들이 말을 잘 듣게 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손쉽게 이용을 하는데 사실 면밀히 보면 우린 다 다른데. 거기서 조금이라도 일탈이 이뤄지면 뭇매를 맞는다. 그때 똑같지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개인이 뭇매를 맞게 되는 일이 횡행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나와 같은 존재를 통해 자꾸 인식하다 보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의 잘못, 사회 전체의 생각의 잘못이었다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내가 아이가 없을 때는 아이를 데려온 사람에게 눈초리를 주는 사람일 수 있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경험한 이후에는 좀 더 그들에게 친절한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나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이 사실 어려움이 많고,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생각의 전환, 사고의 전환을 많이 이루고 싶다. 실제로 공감도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땅콩 회항이 일어나고 갑질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고 나서 저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경험도 했고, 그 경험을 얘기하시는 분도 많이 봤고. 나에게는 비참함의 끝이었던 일들이었지만 이를 통해 변화가 생겼고 우리 사회에 갑질이라는 것에 대해 공론화가 되었다. 이처럼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통해 하려는 사회의 소외된 일들에 대한 공론화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터닝포인트이자 제 자신을 성장시켜준 것.
땅콩이란 작은 것에서 시작해 많은 것들을 잃기도 했고, 심지어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절함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사회적 의미에서의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되었고, 살아남은 생존자로서의 선택을 하고 나서 그것이 미칠 수 있는 많은 선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땅콩이라는 것은 저에게 복합적 의미를 주게 되었다.
내가 깨달은 것을 개인의 경험으로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소명의식이나 운명론 같은 것까지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운명이나 숙명을 저버리지 않고 사회적 의미로 확장시켜 나가야겠구나 하는 활동성을 바로 그 땅콩이 준 것이다.
그 일이 활동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법제화라든지, 제대로 약자들의 의견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공정함이 아직 사회에 없다는 것, 그렇다면 정치적 역량에서 그것을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이 조금 있어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든 집행하는 사람이든 그것을 압박할 수 있는 어떤 힘을 가져야지만 바뀌는 것이지, 계속 나와 같은 사람이 낙오자가 되고 숨게 되면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기득권들에겐 자극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손실도 실망감도 많았던 일이었지만, 또 다른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첫째로는, 가장 가까이에서 극심한 고통을 나눴던 가족들. 당시 가족 중에는 암이라는 큰 질병까지 겪으면서도, 가족인 저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하신 분도 있었다.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두 번째로는 ‘나댄다’는 얘기를 들으면서까지 사회적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공감의 힘을 준 분. 바로 故 노회찬 의원님이다. 대한항공 물컵 갑질 사건이 있고, 집회를 할 때 허허벌판에 저뿐이었다. 대한항공에 직원들이 약 2만 명이 있는데, 심지어 어떤 날은 나 혼자 시위를 하고 있고, 뒤편에서는 천 명이 넘는 직원들이 회사를 위한 집회를 하고 있는 상황까지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준다는 게 우리 사회에서 쉽지가 않다. 특히 나와 같이 혐오자, 소수자, 제거대상, 문제아가 되었을 때는 아무도 같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정의로운 것, 아무 잘못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도 나에게 오는 불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사회 구조, 제도가 정의로움에 대해 박수를 쳐 주거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뒤에서는 응원을 하더라도 앞에서 손을 잡아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노회찬 의원님’으로 대표되는,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공감의 힘으로 나는 생존하게 되었고, 사회적 활동들도 하게 되었다. 이는 내게 너무 많은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 많은 분들이 과감하게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나에게 손해가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이런 행보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있을까요?(웃음) 사실 많은 낙관의 얘기도 많이 듣는 것 같긴 하다. 지난주 촛불집회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저를 어떤 분이 잡아당기시더라.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내‘가 당신 때문에 살았다. 너무 고마운 분인데 여기서 만나서 반갑다’고 하셔서 얘기를 듣게 됐다. 직장 내에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용기를 못 내고 ‘죽어야 증명이 되겠구나’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내가 생존자로 살아남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서 투쟁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예전보단 못 한 지위에 있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본다는 얘기를 하셨다.
내 인생 전체를 본다면 물론 본받지 않아야 할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일에 있어서는 ‘정말 내가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걸 통해 보자면 올 2월에 플라이 백이라는 책을 냈는데 책을 냈을 때 많은 음해 중의 하나가 인세를 통해 돈을 벌려고 한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인세로는 돈이 얼마 안 되는데(웃음). 부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책을 낸 가장 큰 계기가 이 책을 통해 미래에 이 사회로 나올 세대들을 위함이다. 나와 똑같이 사회의 99%에 속할 수밖에 없는 그 미래세대들이 사회 현상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앞장을 서고 투표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타인의 경험에 비추어 학습하기를 바란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노동운동, 정치행위를 한다는 것은 사회의 반역자인 것처럼 다루려는 교육을 암묵적으로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결국 우리의 삶이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노동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규제하고, 생활의 기저를 다루고 있는 모든 것이 제도와 정치이기에 도외시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앞으로 사회에 나와야 할 분들이 이미 굳어진 제도, 정치적, 노동 환경이 바뀔 수 없다고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현실에 발을 담그다 보면 우리 모두의 힘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기를 바란다. 나는 그 변화를 땅콩 회항 이후에 현실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충분히 우리가 같이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와, 실질적인 경험을 전해드리고 싶다. 인생의 후배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사회의 참여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 사회를 상당히 ‘다이내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부를 보면 휩쓸림으로 인한 역동성이 많고 개별적인, 각자의 용기와 투쟁적인 의식에 의해 역동성의 흐름이 생기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용기를 내고 생존을 선택했을 때 평가절하, 가치 절하가 많이 되었었다. 어떤 이슈, 가십거리가 많은 일에는 휩쓸림이 많이 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잘못된 휩쓸림의 흐름보다는 사회적 역동성을 가질 수 있는 곳에 힘을 쏟으면 좋지 않을까? 딱딱한 정치적 이슈나 의제 등에 대해 고리타분하게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실생활에서 나오는 현안 중 함께 할 가치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동력을 심어주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더 공정하고 정의롭고 인간 된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도 필요하겠지만, 정당 등에서 매체를 통한 이야기를 통해 그런 올바른 방향으로의 시각적 제시도 필요할 것 같다. 사회가 복잡하고, 사회의 문제들이 나와 당장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단편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행태의 지식 추구가 많이 되고 있다. 그래서 진지함을 겸비했으면 좋겠다. 그 속에 또 즐거움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형태로. 오늘 출연한 이 매체가 그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형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본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편안한 미소와 차분한 목소리 속에서도 단단한 내면을 느낄 수 있었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그가 겪은 일들은 한 개인이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아프고 힘든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누구나 좌절해 버릴 법한 부침 속에서도, 결국 무릎 꿇지 않고 근본적인 사회의 문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그의 단단한 의지를. 사회 변화를 위해 생존자로서의 아이콘이 되기를 자처하는 그를 보며 박창진 위원장과 함께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가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들에 기분 좋은 설렘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