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경력 5년 차. 최근에 배드민턴 모임 회식이 있었다. 묵은지 닭볶음탕이 무한의 맛을 제공했으나 주차 공간은 협소한 관계로 사장님께서 대신 주차를 해주셨다. 주차를 끝내시고 들어오신 사장님께서 나더러 후방카메라 없이 어떻게 주차를 하고 다니는 거냐 물으시며 나의 운전 실력을 극찬하셨다. 나의 올챙이 적부터 지금의 뒷다리가 나온 때까지의 이야기를 풀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러기엔 아직 내 정신이 너무나 맑았다. 그래서 여기에 살짝만 풀어본다. 참고로 이슬 대신 서리가 껴있는 새벽이라 오늘 역시 정신은 최고로 맑다.
때는 운전 경력 0.1년 차. 이마트 주차장에서 경미한 사고가 있었다. 내가 타고 다니던 차엔 후방 카메라도 없지만 그 흔한 측면 센서도 없었고, 무엇보다 나에게 차폭감이 전혀 없었다. 남편이 아이와 과일을 사러 간 사이 운전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미리 차를 빼둘 생각이었다. 전면 주차를 한 상태였어서 차를 뒤로 빼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차를 충분히 빼지 않은 채로 핸들을 출구의 반대쪽으로 꺾었다. 순간 ‘기기긱‘하는 소리에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생돈 40만 원을 날렸다.
시간은 흘러 운전 경력이 1년이 되었다. 코로나 시국이었고 복직을 했고 아이의 등하원을 내가 하던 시절이었다. 그날따라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칭얼대서 어르고 달래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지체됐다. 출근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 와중에 지금도 완벽하지 않은 전면 주차를 해야 했고, 여전히 차폭감이 없었던 나는 내 차를 옆 차에 너무 바짝 붙여 주차를 하고 말았다. 차에서 내려야 걸어서 사무실로 갈 것이 아닌가 말이다. 시간은 다 되어 가고 마음은 급해지다 못해 심란해졌다. 그 결과 스틱을 R에 두었다가 다시 D로 바꾸고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액셀을 밟고 말았다. 그대로 옆 차의 문짝을 향해 돌진했고, 정신을 차리고 브레이크를 다시 밟았을 땐 내 차 범퍼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너무 놀래서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일단 옆차 차주 분께 전화를 드렸고 다행히 안면이 있는 분이라 일면식 없는 차주의 노발대발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만히 않은 수리 비용은 피할 수 없었다. 이어서 보험사에 전화를 했고, 직원분의 굉장히 빠른 일처리로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쯤 내 차는 정비소에 맡겨졌다. 사무실로 올라가 자리에 앉으니 그제야 참고 있었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꺽꺽거리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적고 보니 올챙이 적이라고 하기보단 아직 알에서 세포분열도 하지 않은 채로 둥둥 떠 있었던 시절이라고 해야 맞지 않나 싶다. 지금도 후방카메라와 측면 센서는 없다. 그래도 한 방에 후면 주차와 전면 주차에 성공할 때가 10번 중 6번은 된다. 이 정도면 잘 컸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