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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달선생 Jan 02. 2024

세 번의 실격도 이제 실패담이 아니랍니다

운전면허학원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주행연습만으로 시험을 본다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그래서 3 시험인 주행 시험을 보기 위해 남편과 함께 주말마다 4개의 코스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유리 쪽에 '''''이라고 대문짝만 한 게 적어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루에 짧게는 2시간, 길게는 4시간 동안 연습을 했는데 남편이 피드백해주는 것들을 들었음에도 바로바로 고쳐지지가 않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답답함을 느꼈던 남편과 잘하고 싶은데  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던  중에 누구 하나의 말에서 짜증이 묻어나면 연습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10 넘게 운전을 해온 조수석에 앉은 남편의 시선과 이제  핸들을 잡고 운전석에 앉은 나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운전'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생각보다 여러 가지 기능들을 익히고 단련해야 한다. 시동 하나를 켤 때도 START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기어가 P 위치에 가 있어야 하고 버튼을 누를 땐 반드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어야 한다. 액셀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구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시동을 켜고 출발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복잡계가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차선 도로 위에 나만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있겠냐만은 도로 위에는 N의 수십 배가 되는 차들이 각자의 속도로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차들의 수가 늘어나 도로가 점점 빽빽해질수록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갔다. 동시에 앞차의 브레이크 등이 켜지는지 살피면서 옆 차선에서 내가 있는 차선으로 다른 차가 들어오진 않는지 살피면서 신호등을 살피면서 나 역시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내비게이션에서 300m 앞에서 좌회전을 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안내를 듣자마자 긴가민가하면서 좌회전 깜빡이를 켠 나를 보고 남편이 바로 켜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 좌회전 차선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좌회전을 한다는 뜻이니 좌회전을 하기 직전에 켜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운전면허학원에서 주행연습을 할 때 제일 궁금했던 점이 이거였었다. 도. 대. 체 깜빡이를 언. 제. 부. 터 켜야 하는지 말이다. 물어보면 그때 그때마다 다르다고만 말하고 내가 500m 전에 깜빡이를 넣어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뭔가 이상하다 싶었었는데 남편의 피드백으로 해방감까지 느낀 나는 어느 때보다 여유롭게 좌회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회전을 할 땐 계속 문제가 생겼다. 어느 지점부터 어느 정도의 각도로 핸들을 꺾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아서 오른쪽에 있는 보도블록 위까지 차가 올라가기도 하고 왼쪽 차선으로 직진해서 오고 있는 자동차와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클락션 소리에서 분노를 느낄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것은 남편이 말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그때마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사실 우회전은 운전면허증을 따고 난 후에도 한동안 어려워서 혼자서 시행착오를 겪었었다.


시행착오는 여기서 끝냈으면 좋았으련만 대망의 차선 바꾸기가 남아있었다. 운전면허학원에서 주행연습을 할 땐 강사님이 타이밍을 보고 '자, 이제 깜빡이 넣고 옆차선으로 가세요.' 하고 먼저 말씀해 주셨는데(전편에 굉장히 과묵했다고 표현했었는데 알려주신 것도 있었네;;;) 남편과 연습을 할 때는 남편이 내가 물어보기 전까진 말을 해주지 않았다. 타이밍도 내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깊은 뜻은 백 번 알겠는데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는 차들과 부딪히지 않고 차선을 바꿀 타이밍은 백 번 가까이 연습을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깜빡이를 켜고 망설이고 있는 나를 기다려주는 차는 많진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있긴 있었다. 진짜 진심으로 고마워서 비상등으로 감사 인사는 빠짐없이 했었다.


드디어  번째 주행시험 . 4개의 코스  1개가 정해지면 정해진 시간 안에 속도나 신호 등을 위반하지 않고 출발 장소로 돌아오면 합격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작한  얼마 되지 않아  "실격입니다!"라는 기계음을 들어야 했다. 봄이 오고 있던 때였음에도 기계음은 그날의 날씨처럼 한없이 차가웠다.  번째 시험은 그래도  정도는 갔었는데 이유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또다시 실격을 당했다. 연이은  번째 시험에도 실격을 당했다. 그래도 이때 떨어진 이유는 정확히 기억한다. 정류장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던 버스를 보고 멈추는 것까진 잘했는데 그것에 집중한 나머지 버스가 출발한  바로 앞에 있던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 것을 보지 못하고 정지선을 쪼끔... 아주 ...  넘어갔다. "실격입니다!" 기계음이 울림과 동시에 차를 갓길에 주차하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시험 중에 실격이 되면 바로 강사님과 자리를 바꿔 앉아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때의 기분은 뭐랄까 최선을 다했던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차이고 돌아오는 기분과 비슷했다.(격한 말이 나올  같다... 심호흡하자... ... ... ... ...)


네 번째 주행시험 준비는 비가 오는 날까지 빠지지 않고 했더랬다. 그때쯤엔 길은 뭐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도로 위에서 어떤 상황을 마주할지 모르니 긴장이 되었다. 코스의 절반을 지나고 직전 시험에서 실격했던 버스 정류장도 무사히 지나고 우회전 한 번만이 남아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오른쪽 깜빡이를 넣었다. 코너링 좋고, 앞 차와 간격도 좋고, 드디어 출발 지점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강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차에서 내린 후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 남편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다. 남편의 축하를 받고선 동생에게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다. 이로써 세 번의 실격은 이제 나의 무용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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